다들 무사하신가요?
마티는 폭우 피해가 있었습니다. 물류창고가 침수돼 책이 많이, 꽤 많이 상했습니다. 내일 창고에 가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다행히 창고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무사하다고 합니다.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만으로 올해 운을 몽땅 털어 쓴 듯합니다. 부디 모두 안전하시길.

『건축 생산 역사』 1, 2, 3권을 마감했습니다. 마침내.
왜 제목이 평범하게 '건축사'가 아니고 독특하게 '건축 생산 역사'일까요? 🔈모베가 설명합니다. 

20년 강의의 산실! 『건축 생산 역사』(전 3권) 8월 말 출간

🔈모베


건축사는 미술사의 막내입니다. 초기 건축사학자들은 미술사 서술의 전통 속에서 2천 년 건축의 역사를 가르고 양식을 분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세기만 하더라도 여전히 건축과 회화, 조각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건축의 역사는 미술의 역사처럼 쓰였습니다. 양식과 거장 예술가의 연대기로 말이죠. 


건축의 사정은 좀 더 복잡합니다. 온전히 예술로 볼 수 없는 측면이 무척 큽니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동원해야 하는 당대 최고의 공학기술, 다른 예술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필요한 자본과 시간, 공사 단계마다 다른 다양한 인력 등 건축은 창작되기보다 ‘생산’된다고 해도 좋습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건물 짓다 망한 왕이 수두룩하죠.) 예술가의 자아보다 사회나 정치, 산업 등과 어쩌면 더 깊이 연루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한창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는 『건축 생산 역사』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쓰인 '건축사' 책입니다. 저자는 놀랍게도(?)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박인석 교수님입니다. 전작 『아파트 한국사회』 『건축이 바꾼다』 등으로 짐작할 수 있듯, 박인석 교수님은 주거와 정책 문제에 관한 국내 최고 전문가입니다. 제6기 대통령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시기도 했고요.


그런데  명지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건축생산기술사’라는 다른 학교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과목을 가르치셨다고 해요. 건축의 역사를 생산과 기술, 구조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신지 20년이 훌쩍 넘은 거죠. 그래서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긴 시간 축적된 노하우와 내공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로마 여행에서 누구나 경탄하는 판테온을 두고 박인석 선생님은 로마 건축가들의 탁월성, 형태의 완벽한 아름다움보다 어떻게 43.2미터에 달하는 원형 내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는지, 무너지지 않게 6미터의 두꺼운 벽에 무엇을 넣었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갖은 수를 써가며 왜 저런 건물을 지으려 했는지를 묻습니다. 로마인들이 지키려고 했던 건축적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합니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서양 건축 역사에서 읽어야 할 것은 건축물의 형태 양식이나 구축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규범화된, 그 규범이 생산된 사건의 전말이다. 그것은 언제,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유럽 전체의, 서양 전체의, 그리고 세계 전체의 건축 규범으로 확산되었는가.” 


서양 건축사는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하고서 왜 이후에는 이 지역 건축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는 걸까요? 찬란한 건축 문화가 이후에도 있었는데 말이죠. 우리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해 가지는 시각은 언제 형성된 것일까요? 과연 그 옛날에도 고전주의가 확고한 규범으로 자리잡고 있었을까요? 1권은 이런 질문들로 시작합니다. 아, 책은 모두 3권입니다. 원고지 3000매, 사진 1200컷에 달하는 분량이어서 분권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1권은 대략 고딕까지 다룹니다. 2권은 고전주의에 집중합니다. 박인석 선생님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고전주의는 르네상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단언합니다. 이 만들어진 전통이 전유럽의 절대왕권으로 어떻게 스며들어갔는지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다룹니다. 중세와 르네상스는 건설 재료와 건물을 만드는 방법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형태는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나 재료와 기술은 똑같은데 전혀 다른 건물을 지었다고 상상해보자고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실제로 한국 건축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요. 이걸 따져 묻는 겁니다. 형태만 따로 떼어서 볼 수 없다는 거죠. 3권은 19세기 이후지만 주인공은 모더니즘 건축입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건축이 특정 계급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니까요. 이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무너졌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치를 완전히 저버릴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세세히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건축전공자들을 위한 책만은 아닙니다. 미술사나 문화사에 흥미를 느끼시는 분들은 다소 비어 있기 십상인 건축이란 퍼즐이 딱딱 제자리에 맞아 들어가는 쾌감을 느끼실 거에요. 8월 말 제작 완료를 목표로 한창 마감 중입니다. 두고두고 읽을 서양 건축사 책이 드디어 나옵니다. 기대해주세요.


건축 생산 역사_최종.pdf 코멘터리  
🌱죽순

『건축 생산 역사』 편집을 언제 시작했는지도 까마득합니다. 아마 작년 말일 거예요. 3월엔 마감하자, 5월엔 끝내자, 7월이 마지노다! ... 여하튼 8월엔 끝나 다행입니다. 편집 후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예고편 코멘터리를 보냅니다. 이 책의 핵심 장면들을 엄선했습니다.

『건축 생산 역사』 1
고대에서 중세까지, 고대의 단절과 고딕 전통의 형성 

이 페이지는 건축 생산 역사』가 어떻게 기술되고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70쪽 한 면에서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특징과 당시 건축물의 성격, 기원전 400-500년경 건축 재료였던 ‘석재’가 어떤 모양과 규모의 건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그 생산기술의 측면까지를 아우르죠. 어떤 건축물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뿅 하고 지어지지 않고, 그래서 이 책은 건축물만 따로 떼어내 양식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제목이 그냥 ‘건축사’가 아니라 건축 ‘생산’ 역사인 이유입니다. 

지도 얘기를 없네요. 마티 디자이너 🦈조스바가 그렸습니다. 하루 2개가 최대 생산량이었죠. 지루해서 죽을 같다며 고개를 저었던 그에게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사회학도 🌱죽순의 기력을 갉아먹은 부분입니다. 하중, 횡압, 압축력, 인장력이 무엇인가! 다행히 그림이 있어 한시름 놓았더랬죠. 임지수 일러스트레이터의 세심한 작업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건축의 핵심인 구조공학적 측면을 짚어주는 점이야말로 건축 생산 역사』 장점이에요. 돌로 쌓은 지붕이 무너지는 이유, 궁금하시죠?

고딕 성당 평면도가 정말 신기했어요. 칸마다 교차하는 대각선이 천장 모양이더라고요. 지금 보시는 4분할된 건데요, 6분할도 있고 우산살 모양도 있거든요.  다 평면도에 그려져 있더라고요. 스포일러라 보여드릴 없어서 아쉬워요.😭

『건축 생산 역사』 2
르네상스에서 혁명기까지, 만들어진 전통 고전주의의 성립과 붕괴  

피렌체 대성당 돔이 어마무시하게 크다는 알았는데, ‘헤링본방식으로 조적됐다는 재밌었어요. 마루 이렇게이렇게👐 모양 내는 그게, 사실 600 안에 숨겨진 기술이었다니! 교정 보다가지인-짜로?” 하고 혼잣말 터졌잖아요. 근데 원래도 혼잣말이 많아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했다는 .

성당들이 하나같이 십자가 평면이더라고요. 그런데 십자가도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식 사방 길이가 똑같아 똥똥하고, ‘로마식 세로가 가로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모양이에요. 일괄십자가 통일할 뻔했는데, 이제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소녀시대 노래가 절로 떠오르는 사진이었어요.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노노노노노"🎵. 건축 책의 백미라고도 있는 도판이 1200 컷 실렸습니다.

『건축 생산 역사』 3
19세기 말에서 오늘까지, 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 모더니즘 건축의 항로

드디어 가고 옵니다. 구부리고 휘어 형태를 만들기 쉬운 재료인 철은 곡선을 표현하는 제격이었죠. 새로운 형태를 두고여성적이라고 표현한 책도 많은데요, 건축 생산 역사』에서는 당연히여성적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집합주택(단지)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하네요. 도시계획, 신도시 개발, 주거단지 건설에 대해서는 건축양식사 다루는 책에서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편이에요. 건축을생산이라고 박인석 선생님은 3권에서 부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책의 차별점 하나!😉

휴가 때 읽을 책
앨리에서 개정판을 냈지만, 제 손에 있는 것은 🔈모베가 떨군 구판. 테드 창이면 하루에 다 읽겠죠? 책을 더 찾아봐야겠는데요.  

🦈 조스바 - 『여행자의 책』
꽉 찬 여행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드러누워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기 좋습니다. 여행에 관한 사색으로 가득합니다. 집에서 읽어도 여행 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빈곤에 대한 교과서를 준비했어요. 정의, 개념, 통계, 제도. 서구 연구자들의 맥락을 정리해보려고요. 왜냐면, 가슴을 녹이면서 머리를 얼리는 냉혹한 원고가 지금 제 손에 들어와 있거든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 뜨거운 원고를 품어 보려 합니다. "이런 풍요의 시대에 가난은 개인이 초래한 질병"이라고 조언한 투자전문가 존 리에게 선물할까 해요.  

대단히 강렬한 도입부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나머지도 얼른 읽고 싶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애매하고 유보적인 태도 따위는 집어던지고, 단호하게 “현대 자본주의의 합리성”이라고 말합니다. 700쪽이 훌쩍 넘지만 “에세이”이니 백사장에서 선글라스 끼고 읽을 만하지 않을까요.
이번 주 마티의 각주 어떠셨나요?
좋았어요🙂               아쉬워요🤔
책 좋아하는 친구에게
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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