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호. 가짜 열심의 마지노선

2월엔 마니브러리의 존재를 알리고자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공식 계정을 개설했어요😘 아~주 오래전에 만들고 방치한 독서 계정을 쓸고 닦아 정갈한 소개 글을 올렸답니다. 👉마니브러리 계정 보기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땐, 설렘과 불안이 공존해요.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다 생활이 뒷전으로 밀리기도 하지요. 이번에는 늦게라도 제 속도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깨가 무거운 월요일, 이들의 메시지로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요.

📅 𝙱𝚘𝚘𝚔 𝙲𝚊𝚕𝚎𝚗𝚍𝚊𝚛

이달의 독서달력

2023년 2월 3주차 독서달력입니다. 가족과 세계를 바꾸는 늠름한 딸의 이야기 『가녀장의 시대』(2022, 이야기장수), 생산과 소비, 욕망과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난 진짜 리추얼 『리추얼의 종말』(2021, 김영사), 돌봄 노동에 매몰된 여성의 정체성 『돌보는 마음』(2022, 민음사), 오빠가 아닌 나 자신의 성덕이 되기까지 『성덕일기』(2022, 이봄), 헐거운 일상에서 수집한 시간의 말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2023, 잠비) , 두 마케터가 말하는 놀듯이 일하는 즐거움 『일놀놀일』(2022, 웅진지식하우스) 까지 총 6권을 완독했습니다.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

📝 𝚂𝚝𝚛𝚊𝚢 𝚝𝚑𝚘𝚞𝚐𝚑𝚝𝚜

쉼표와 따옴표

열심히던 어떤 날의 풍경

JTBC 드라마 <대행사>를 즐겨보는 중입니다, 드라마는 VC 그룹 최초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기 위한 분투를 보여주는데요. 지방대 흙수저 출신에 뒷배도 없는 회사 생활은 순탄치 않습니다. 그런 고아인이 믿는 구석은 오로지 자기 능력입니다. 그녀의 가치관은 대사에도 묻어나는데요. 특히 1화에서 같은 팀 카피라이터에게 한 멘트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 말고 잘하는 일을 해야지.

되고 싶다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착각으로 바뀔 때가 종종 있지.

JTBC <대행사> 1화 中

이 말을 듣고 눈물이 터진 카피라이터가 꼭 저와 같았습니다.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특별한 재능도, 뛰어난 공부 머리도 타고나지 못한 제게 주어진 건 '노력'이 전부였어요. 되고 싶다는 착각에 갇혀 늦더라도 언젠가 보상이 따를 거라 믿으며, 그저 열심히만 살았던 자신이 조금 한심해졌죠.

저에게 열심은 보험이었어요. 훗날 도움이 될 거라며 수십 개를 들어놨지요.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은 이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열심은 못난 점을 상쇄하는 면죄부가 될 수 없어요. 왜 열심히 하려는지 목적을 따져봐야 하지요. 돌이켜보면 ‘왜’만 쏙 빠진 허울뿐인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무엇이든 하는 중인 ‘잘 사는 듯한’ 내게 심취한 채로요.

어쩌면 고아인은 ‘카피를 쓰는 스스로에 심취한 후배'에게 정신 차리라고 직구를 날린 건 아닐까요. 능력을 증명해 보여도 외면당해 봤기에 '무조건 잘하기'는 아주 중요했을 겁니다. 과정보다 결과가, 내실보다 외양이 중요할 때가 많은 직장은 냉혹한 전쟁터에 가까우니까요.

모르겠으면 냅다 열심부터 가불하는 습관을 고치려 합니다. 먼저 왜 하고 싶은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잘할 수 있는지 냉정히 따져본 후, 목적지까지 최단 거리로 달려가 보려고요. 치밀하고 치열하게, 투자자가 된 것처럼 계산기를 두들기면서요.

💬 𝙱𝚘𝚘𝚔 𝚌𝚘𝚖𝚖𝚎𝚗𝚝

이주의 독서리뷰

김신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 오늘 하루가 다 내 것이었으면......

시계를 보며 언제쯤 집에 가나 셈을 해보게 되는 오후 3시면, '딱 하루만 나를 위한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됩니다. 행복의 'ㅎ'을 찾는 재주를 가진 김신지 작가도 '내 시간'이 없었다고 고백해요. 작가는 내 시간을 팔아서 번 돈으로 다시 시간을 사길 반복(p.6)해도 찾지 못한 삶의 여백을 퇴사 후에야 되찾습니다. 비로소 삶의 성실한 주인이 된 그녀는 슴슴한 농도로 하루의 좋은 순간을 포착해내요.

1부 시작을 엄마 '인숙 씨'를 향한 편지로 채운 건, 반칙이 아닐까 싶어요. 사랑을 물려준 엄마에게 보답하듯 지면에는 사랑을 쏟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순간이 가득합니다. 첫눈에 반해 살았던 그리운 테라스 집, 반딧불을 만나러 가던 어두운 밤길, 엄마가 쓴 5년 일기장의 페이지까지. 뭉근하게 배어있는 세월의 덮개를 들추며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지요.

바통을 이어받은 2부에는 알람 없이 일어나는 하루하루가 담겼습니다. '다들 이렇게 살아'의 '다들'은 무사한 건지 자주 궁금(p. 160)했던 작가는 '다들' 집단을 벗어나 원하던 삶을 찾아가요. '시간이 되면 해야지'가 아닌 '시간을 내서 해야지'로 방향키를 맞추고 퇴킷 리스트를 실천하지요. 그 일환인 평일 생일을 맞아 신지도, 생일도, 평일도로 여행을 떠난 '신지 생일 평일 프로젝트'는 유쾌함이 넘쳐흘렀어요.

잃어버렸다 되찾은 것을 오래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잃었던 순간의 간절함을 잊지 않는 것.

그 간절함으로, 눌러 쓴 글씨처럼 또박또박 사는 것.

p. 255

우선순위에서 쉽게 지워지는 별거 아닌 일을 시도하는 건, '내가'란 주어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치의 성실을 애먼 데 낭비하면 씁쓸하기 그지없어요. 나중에, 언젠가, 조만간이란 말들로 미래를 기약만 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 상상력을 현실력으로 바꿔보아요. 당장은 어렵다면 가까워질 수 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발밑에 심어봐요.

김신지 작가님은 자아 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의 리추얼 메이커로도 활동 중입니다. 유튜브 '밑미 TV'의 [밑터뷰]에선 시간을 찾기 위해 퇴사한 이유부터 기록을 통한 행복의 모습까지 털어놓았어요.

밑미 TV 바로가기

* 출처: 밑미TV

📚 𝙻𝚒𝚋𝚛𝚊𝚛𝚢 𝙲𝚊𝚛𝚍

대출 희망합니다!

* 사진 출처: 교보문고

2월 3주차에 신청한 희망도서는 『끈기의 말들』, 『조용한 날들의 기록』, 『짝 없는 여자와 도시』, 『흰옷을 입은 여인』, 《릿터 40호: 취미와 특기》 입니다.

📗 강민선 『끈기의 말들』 (2023, 유유)

요즘 끈기에 고름이 생긴 터라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1인 출판사 '임시제본소'의 대표인 강민선은 꾸준히 읽고 쓰고 만들기를 멈추지 않아요. 저자가 말하는 끈기는 악착, 독기, 의욕같은 맹렬한 단어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래 골몰하고 정비하는 생활 습관에 가까워요. 그의 생생한 경험담에서 싹 틔운 조바심과 의심을 잠재우고 싶네요.

📗 김진영 『조용한 날들의 기록』 (2023, 한겨레출판)

죽음 앞의 정갈한 삶의 모습을 담은 『아침의 피아노』로 감동을 준 철학자 김진영의 미발표 산문집입니다. 암 선고를 받기 전 선생이 블로그, 페이스북, 개인 노트 등에 기록한 글 중 1348편을 모아 엮은 책이에요. 아침 시간의 사색과 저녁 시간의 산책, 골방에서의 책 읽기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 안에 자신의 생활을 투영시켰지요. 생활인으로서 우리가 늘 궁금해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 비비언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 (2023, 글항아리)

『사나운 애착』으로 어머니와 끈질기고 지독한 관계를 통렬하게 보여준 비비언 고닉. 그는 2번의 결혼과 이혼 후, 짝 없는 여자의 도시 '뉴욕'에서 사랑의 종말과 우정의 출몰을 경험해요. 도시에서 마주친 사람, 목격한 장면은 고닉이 혼자서 완전한 자기를 향해 걸음을 내딛게 도와주지요. 책장을 덮어도 고닉의 배회는 계속될 테지만, 길을 찾은 그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 길을 저도 따라갈 테니까요.

📗 크리스티앙 보뱅 『흰옷을 입은 여인』 (2023, 1984Books)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이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게 바치는 애정과 경의의 글입니다. 보뱅은 그녀와 관련된 철저한 자료 수집과 연구를 통해 디킨슨의 영혼을 되살립니다. 보뱅과 디킨슨, 두 사람의 말과 생각으로 뒤섞인 에피소드는 하나하나가 짧고 긴 여백을 선사하지요. 전작에서 아름답고 투명한 문장에 매료된 터라, 그가 좋아했던 시인의 우주는 어떨지 기대되네요.

📗 《릿터 40호: 취미와 특기》 (2023, 민음사 편집부)

자기소개서에 취미와 특기란이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평가대상이 될까 봐 솔직하게 기재한 적은 없던 것 같아요. 그럴듯한 취미를 지어내고, 개중에 잘하는 걸 특기라 명명하고 말았지요. 《릿터 40호: 취미와 특기》는 '언제부터 취미를 물었을까, 취미와 특기는 왜 구분되었을까, 취미와 특기가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란 거친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과연 눈치란 잣대를 치웠을 때, 우리의 진짜 취미와 특기는 무엇일까요?

* 도서 설명은 출판사 서평을 참고해 작성했어요.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

하루치의 삶에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할 것.

동시에 결코 오늘의 기쁨을 소홀히 하지 말 것.

김신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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