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님, 썬데이 파더스 클럽 시즌 1의 마지막 레터를 보냅니다. 이번 레터에는 아빠들의 2년간의 소회를 담았습니다. 100번째 레터의 파더스 노트를 적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네요.

아빠들의 작별인사, 들어보시겠어요?

정우의 작별인사

무려 20년하고도 몇 년 더 전 고등학교 화장실. 처음 보는 친구가 무슨 음악을 듣고 있냐고 물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 말을 거네? 시간이 한참 흘러 아이 셋과 함께 허덕이고 있을 때 그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육아하는 아빠들끼리 돌아가며 레터를 쓸 생각인데 혹시 같이할 생각이 있냐고. 아이들을 재우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채 줌 미팅에 입장했다. 그렇게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멤버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만있어 보자. 5명이니까 5주에 한 번, 글은 한 달 하고도 한 주에 한 번씩만 쓰면 되겠네. 할만하겠는데?'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인 월급날은 더디 오는데, 내가 글 쓸 차례는 그보다 더 자주 오는 것만 같았다. 매주 다른 아빠들의 글을 재미있게 읽고 나면 벌써 내 차례였다. 월급은 작고 귀여운지라 부담스러웠던 적이 없는데 글 쓰는 차례는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5주에 한 번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때마다 막막했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어 아이들 사진을 본다. 중간중간 생각을 끄적여둔 메모장도 열어본다. 키보드를 치기 시작하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시작할 때의 막막함이 무색하게 금세 분량이 채워졌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 5명이 글을 쓰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이름으로 책이 출판되었다. 그 책을 토대로 북토크라는 것도 해볼 수 있었다. 실재하는 줄 몰랐던 독자들을 실제로 만나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 갖가지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간혹 사회의 통념에 저항(?)하는 5인조 느낌으로 이미지를 기획하려는 매체의 야욕(??)은 아빠 5명이 지닌 놀라울 정도의 평범함에 적절한 톤으로 조절되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아빠들이 제대로 모이지도 못했다. 매체 인터뷰나 북토크 등 이벤트가 있을 때만 얼굴을 봐서 아빠들의 얼굴을본 건몇 번 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육아와 글쓰기를 통해 5명의 아빠들, 그리고 매주 정성스럽게 댓글을 달아주는 독자들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연대 의식이 형성되었다. 흔히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이는 비단 키워지는 아이뿐만 아니라 함께 키우는 행위를 하는 아빠 입장에서도 유효하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은 나에게 '온 마을'이 되어 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산 것치고는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 수시로 안도한다. 진학, 입대, 취업 그리고 결혼과 육아. 이제는 거기에 썬데이 파더스 클럽까지. 늦었지만 부족한 나를 멤버로 받아준 4명의 아빠들과 두서 없는 나의 글에 따뜻한 관심을 가져준 독자 모두 그리고 (매우 매우 늦었지만) 이십몇 년 전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말을 걸어준 친구, 손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규성의 작별인사

오만 구천구백칠십구. 지금까지 내가 쓴 레터의 글자 수를 다시 세어보니 지난 주말 식당에서 긁은 카드값이 떠오른다. 스물 한 글자만 더 썼으면 6만 글자(아무 의미 없음)를 채웠을 텐데라는 생각과 2년 동안 무슨 쓸데없는 말을 이렇게 많이 썼나 란 생각이 동시에 머리를 스친다. 육아휴직을 하며 '뭐라도 하면 좋지'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던 일이 이름난 대중 매체에 소개되고, ISBN 바코드를 가진 책으로 나오고, 가구 브랜드와 의미 있는 협업까지 한 뒤 100이라는 근사한 숫자로 시즌을 갈무리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나 한 명이 아닌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인기를 얻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경제적 계약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쓰지 않아도 되었으며 오롯이 내 개인적인 기억, 느낌, 불안, 상념들을 국어가 허용하는 문법 속에서 풀어놓으면 되었다. 여기에 매일 하루 치만큼 성장하며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아이는 끊임없이 내 마음에 불꽃을 만들어 주었고, 급감하는 출산율과 출생률, 육아를 둘러싼 각종 사회적 갈등과 비합리적인 관습, 후진적 제도와 시스템은 글쓰기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마른 장작을 제공해주었다. 경험이 풍부한 다른 아빠들의 세련된 글쓰기는 나의 투박한 글과 협소한 시각이 뉴스레터의 정체성으로 확산하는 사태를 막아주었고 구독자 수와 피드백을 의식해 소위 ‘어그로’성 콘텐츠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호사를 가져다주었다. (일주일 내내 피드백 링크를 100번 정도 들락날락 거리며 일희일비했던 건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싶은 비밀이다.)

열 일곱 편의 레터 모두 불행한 현실을 직면하며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시즌을 마무리하며 지난 글을 다시 읽어보니 결국 행복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뛰어든 어떤 두 사람으로 인한 행복, 그 두 사람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일상, 그 행복을 막는 각종 사회적 걸림돌에 대한 나의 분풀이. 마지막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과 사적인 이야기를 읽어 준 문해력 높은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바쁜 산전/산후 세계 속에서 기꺼이 한 번 더 버튼을 눌러 공감과 위로의 답글을 남겨준 육아동지들, 나와 다른 세계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고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정말 고맙습니다. You’re Always Right.

정민의 작별인사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식 참석을 위해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새로운 시작에 설레는 학생들 마음, 처음 학부모가 되는 부모님들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서, 학창 시절에 새 학기 시작할 때마다 느끼던 예전 감정이 살짝 되살아났다. 아, 3월은 그런 계절이었지. 뭔가 새로운 시작에 두근대기도 하지만, 동시에 살짝 두려운 마음이 일기도 하던 날들이 계속되던 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으로 하루 하루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져가던 달.

2022년 2월 6일 일요일 밤 9시에 처음 시작한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 마지막 100회차를 앞두고 있다. ‘썬파클’과 함께 했던 지난 2년간의 여정은 매 순간이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2년이 마치 두 달처럼 느껴질 만큼, 뭔가 익숙해질 틈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꼬박꼬박 일요일 밤마다 함께 뉴스레터를 써 보내는 것도, 다른 아빠들과 함께 글을 쓰고 독자들이 보낸 답장을 나누는 경험도 모두 그러했다. 처음 시작할 때 꾸준히 쓴 레터들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 책으로 엮일 수도 있겠다 정도의 생각 정도는 어렴풋이 있었지만, 각종 뉴스와 매체, 심지어 한국을 넘어 NHK와 워싱턴 포스트에까지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이야기가 실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옛 중국 시인 두보는 봄을 때맞춰 반가운 비가 내리는 시절(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이라 노래했다. 다섯 아빠들과 함께 육아라는 주제로 돌아가며 레터를 쓰던, 그리고 천칠백명이 넘는 독자들과 같이 육아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지난 2년의 시간은 내게도 좋은 시절, 인생의 봄으로 기억될 것만 같다. 100번의 썬파클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들 역시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할 여정에서 적잖은 버팀목이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끝이 없는 시작이 있을까. 입학식이 있으면 언젠간 졸업식도 온다. 썬파클 시즌 1을 마무리하는 마음이 꼭 그렇다. 그간 쌓인 정이 커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100회차 레터를 통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아이가 아무리 사랑스럽고 육아가 아무리 좋더라도 육퇴를 해야 할 때는 칼같이 해야 하지 않겠나.

어찌 보면 우리들에겐 시즌 1 종료는 또다른,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다. 뭐니뭐니해도 3월은 ‘마무리’보단 ‘시작’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달이니까.

현의 작별인사

‘썬데이파더스클럽’이란 이름으로 보낸 두 번째 레터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송이가 태어난 지 10개월이 지났고, 육아휴직을 한 달 반 앞둔 무렵이다. “내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대신 아이의 시간을 기록해 봐야겠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땐 왜 그리 비장했을까. 내 시간을 당분간 잃을까 봐 두려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시간을 기록’하고자 나만의 시간을 얻곤 했다. 뉴스레터 마감 때마다 배우자이자 육아 동지에게 신세를 졌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 그리고 머쓱하지만, 아이 이야기로 시작하여 매번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했고 이런 고민, 저런 고민도 툭툭 던져 놓았다. 내가 무얼 적든 이미 그걸 경험한 인생 선배이자 육아 선배인 구독자들이 있었다. 다정한 말로 공감과 위로를 전하거나, 때로는 따끔한 충고로 정신 바짝 들게 해 준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앞으로 육아일기를 더 쓸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될까. 비록 시즌 1은 끝나지만, 틈틈이 아이의 시간을 기록하려고 한다. 그나마 ‘썬데이 파더스 클럽’ 전후로 스스로에게 뿌듯한 변화가 생겼다면, 더 이상 내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거나 내 시간을 잃는다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아이의 시간을 더불어 살 수 있어 하루하루가 찬란하고 감사하다.

요즘은 아이가 나를 찾을 때마다 “네, 손님”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성이 손 씨이기도 하고, 아내와 나의 인생에 잠시 머물다 떠날 귀한 손님임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 역시 내게는 귀한 손님이다. 오실 때나 가실 때나, 손님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다. 늘 고맙습니다.

혁진의 작별인사

정말입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이와의 기억을 글로 담기 위해, 하지만 차마 혼자서는 꾸준히 할 자신이 없어 정민님과 현님을 만나 함께 써보자고 했던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흔아홉번의 레터를 보냈고 총 277개의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1권의 책이 나왔고 우리의 아이들은 훌쩍 자랐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았습니다. 20대에는 파리에서 6개월간 인턴 생활을 하기도 했고 마케팅 공부를 한답시고 여러개의 동아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닌덕에 카톡에 등록된 사람은 2천명이 훌쩍 넘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라 믿었고 늘 새롭고 의미있는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서를 낳아보니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야 말로 내가 그렇게 그리고 찾던 행복하고 의미있는 경험이구나'라는 걸요. 우리 부부가 낳은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제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이자 행복이자 권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치이자 행복이자 권리를 누리게 해준 우리 가족이야 말로 내가 평생 지켜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매일 깨닫고 있습니다.

저희 다섯명의 레터에는 웃음과 눈물과 기쁨과 슬픔 그리고 말로 형언하지 못할 감정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것들의 근원에는 가족, 더 정확히는 아이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아이를 만나고 키우며 얻게 되는 복잡 미묘하고 다양한 감정들이야 말로, 삭막하고 경직된 어른의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유일한 재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1,700명이 넘는 구독자 분들과 100주를 함께 했던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첫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내려 합니다. (매 주말마다 레터를 보내야 하는 남편을 기다려 준 아내 그린과 아들 이서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조금은 길지도, 어쩌면 생각보다 짧을지도 모를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인터미션이 시작됩니다. 시즌 2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길. 그때까지 여러분 곁의 더 많은 아이들을 사랑해주시길 바라봅니다.

님, 그 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요.

Fathers’ Update

지난 레터(99화 다녀왔습니다)를 읽고 구독자께서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할게요. 그 동안 저희에게 달고 쓴 피드백을 보내주신 모든 독자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제안/피드백/질문이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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