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IMPACT LETTER
장애를 가진 사람이 노년기에 접어들면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까요?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다룬 연구는 많지만, 이들의 필요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많지 않습니다. 장애와 고령화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중, 삼중의 고충을 경험할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디자인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을 통해 소개해드렸던 농인 건축가 로버트 니콜스의 발표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는 국제청각장애인건축가협회 설립자이자 미국 연방정부 접근성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접근성 전문가 입니다. 니콜스는 최근 보스턴 건축가협회Boston Society for Architecture 발표회에서 <고령화와 디자인: 비장애인 고령자, 그리고 농인, 시청각장애인, 난청인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고령자를 포용하는 공간 디자인 원칙을 소개했습니다. 이번 발표에서는 특히 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고령자의 필요에 초점을 맞췄는데요. 농인, 시청각장애인, 난청인을 디자인이 곧 고령자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 발표 내용의 일부를 아래 소개해드립니다. 
  강성혜, 미션잇 리서처

로버트 니콜스는 발표 중에 메리 제인 그랜트Mary Jane Grant와 그녀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랜트는 코다CODA[1]이며, 인지저하증[2]을 앓고 있는 농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영상 속 그랜트는 농인의 접근성을 고려한 요양시설이 없어서 비장애인 고령자 시설에 농인 어머니를 모시게 된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양시설에 홀로 지내는 고령자는 마음이 적적할 때 옆사람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일 마저 어렵다. 면회오는 가족 외에는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요양시설로 거처를 옮기는 일은 누구에게나 큰 변화지만, 장애인 고령자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자연광과 인공조명의 활용
Natural and Artificial Lighting


채광이 좋은 공간에 있으면 기분이 자연스럽게 좋아집니다. 자연광은 세로토닌[3] 이라는 호르몬 수준을 조절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농인에게 자연광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빛이 없으면 입모양이나 수어를 제대로 볼 수 없어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소리 대신 시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조명은 공간 탐색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니콜스는 “비장애인이 층간 소음과 방음을 고민하듯, 농인은 빛과 조명을 고민한다”라고 합니다. 그만큼 빛은 농인의 삶과 맞닿아 있는 요소죠. 니콜스는 벽을 허물어 시각적인 개방감을 주거나, 햇빛이 충분히 들도록 천장에 채광창[4]을 내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때 열 전도율이 낮은 특수유리[5]를 사용하면 에너지 비용도 절감할 수 있죠. 하지만 빛이 너무 강하면 시력이 약해진 비장애인 고령자도, 수어나 구화를 사용하는 농인도 눈이 부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투명한 자외선 차단 가림막 등으로 빛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좋죠. 또 채광창을 낼 만큼 공간 확보가 어렵거나, 실내 온도가 높고 건조한 지역이라면 인공 조명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넓은 창문과 중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 빛은 공간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시력이 저하된 고령자나, 시각이 예민한 농인에게 빛은 곧 안전과 접근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Nichols Design Associates, Inc.
위 사진처럼 공간의 일부에만 자연광이 들어오거나, 실내 온도가 높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인공 조명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 ©Nichols Design Associates, Inc.
천장에 난 채광창을 통해 빛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 채광창을 설치하면 빛이 닿는 면적을 최대화하고 공간에 생기는 그림자를 최소화할 수 있다. 채광창을 내기 어려운 곳이라면 핀 조명 등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Nichols Design Associates, Inc.


시각적 경보 시스템 설치
Visual Alert Systems 


청력이 저하될수록 누구나 전화벨이나 화재 경보기 소리를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으로도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시각적 경보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꼭 위험 상황이 아니더라도, 방문객이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불빛이 깜빡인다면 인지저하증 환자에게도 유용한 장치가 되겠죠. 시각적 경보 시스템은 출입문 상단이나 부엌, 침대 근처에 설치해 실내 어디서든 화재나 초인종 소리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시각적 경보 시스템은 현관문뿐만 아니라 침대 근처, 벽, 부엌 상부장 아래 등 설치하여 위험 상황을 실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Nichols Design Associates, Inc.
개방적이면서 이동이 용이한 공간 구성
Physical Configurations

밀폐된 공간은 누구에게나 답답한 공간이지만,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에게는 위험한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청각과 시각이 동시에 차단되기 때문이죠. 또한 모퉁이 너머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해 서로 충돌할 수도 있고, 복도가 좁다면 나란히 걷거나 수어로 소통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요양시설의 복도는 충분한 너비로 설계하고, 모퉁이는 각진 형태보다 둥글게 구성하여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내부 공간을 통합하는 오픈 플랜 컨셉[8]도 편안하고 탁 트인 느낌을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둥글게 이어지는 넓은 복도와, 로비 간의 경계를 최소화한 오픈 플랜 컨셉. 누구나 쉽게 길을 찾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어서 휠체어 이용자나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고령자 모두에게 편안한 공간이다. ©Nichols Design Associates, Inc.


문과 벽의 소재, 사용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 

Doors and Walls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문과 벽도 고령자의 일상에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문과 벽은 목적에 맞게 목재, 투명 유리, 반투명 유리 등 다양한 소재로 설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묵직한 목재 문은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개인 공간에 적절합니다. 한편 반투명 유리문은 유리를 통해 누가 오는지 확인하고,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옆으로 비킬 수 있기 때문에 더 안전할 수 있죠. 문의 소재뿐만 아니라 무게도 요양시설 거주자의 필요를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힘이 약해 손잡이를 밀거나 당기기 어렵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스스로 문을 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면 인지력이 저하된 사람은 혼란을 느낄 수 있죠. 벽의 소재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 공간이나 엘리베이터 벽을 투명한 유리로 설치하면 벽 너머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의 접근성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인 거죠.

고령자가 지내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문은 소재뿐만 아니라 무게와 열고 닫히는 방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Nichols Design Associates, Inc.

소음 저감을 위한 소재 및 공간 구성 

Noise and Mechanical Systems


나이가 들수록 청력이 약해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나, 난청이나 이명도 심해진다는 사실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보청기나 인공와우[9]는 주변 잡음까지 증폭하여 전달합니다. 그러니 청력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환풍기나 난방 기구에서 나오는 소음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죠. 니콜스의 말에 따르면 생활 소음은 사회적 소외감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마다 어디선가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온다면 어떨까요. 대화를 중단하거나 소음이 들리지 않는 방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처럼 소음은 소통과 교류를 방해하고 고령자의 동선까지 제한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령자가 사용하는 공간에는 소리의 울림을 흡수하는 소재를 사용하거나, 불필요한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주석


[1] 코다CODA란 청각장애인 부모의 비장애인 자녀를 지칭하는 용어로,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이다.

[2] 인지저하증dementia은 ‘어리석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치매’라는 단어의 대체용어이다. 

[3] 세로토닌serotonin은 신경전달물질로 기분, 수면, 식욕, 공감 능력, 혈압 조절 등의 생리적 기능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울증, 불안, 강박증, 자폐증, 조울증 등과 같은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다.

[6] 채광창skylight는 천장에 설치된 창문이나 투광 장치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옥상이나 지붕에 설치되며, 자연광을 실내로 유입하고 시야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광을 활용하여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7] 저방사 유리low emission glass window란 열 전도율이 낮아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을 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유리이다. 특수 코팅으로 처리되어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열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겨울철에는 실내 열을 외부로 방출하지 않아 난방 비용을 절감할 수있다. 이러한 유리는 친환경적인 건물 설계와 에너지 절약을 목적으로 주로 사용된다.

[8] 오픈 플랜 컨셉open plan concept은 주로 건물 내부 디자인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벽으로 분리되지 않은 큰 공간을 만드는 디자인 컨셉을 말한다. 예를 들어 거실, 주방, 식당 등의 내부 공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할 수 있다. 개방적이고 쾌적한 느낌이 들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9] 인공 와우cochlear implant란 청력이 일부 남아있는 농인, 난청인 등이 사용하는 기술적인 보조기기이다. 주변 소리를 수집하고 증폭하여 귀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기계 소리와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주 회사 내부 프로젝트 사정으로 뉴스레터를 발송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는 2회 발행됩니다.
미션잇은 신체, 감각, 인지 활동 지원이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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