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소풍』 시안에서 아르바나 서체를 처음 봤을 때 마티 편집부는 꾹 눌러쓴 삐침과 예스러운 모양새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이 서체를 표지뿐 아니라 본문에도 적극 채용한 이기준 디자이너의 디자인 후기로 각주* 70호를 시작합니다.  

언제나처럼 서체부터

🔮 이기준 디자이너


‘박물관’이라는 다소 고풍스러운 소재와 ‘소풍’이라는 경쾌한 행보의 만남은 이번에도 역시 폰트 간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납작펜과 스카펠 나이프의 특성을 담고 글꼴 디자이너(이노을)의 손글씨 느낌을 더해 그렸다는 아르바나가 박물관과 잘 어울린다고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어쩌면 니은 받침의 날카로운듯 부드러운 곡선이 기와지붕의 처마를 닮아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르바나의 파트너로 고른 라이카 역시 납작펜과 가는 펜의 특성을 섞어 만들었다는데요, 특히 구두점 형태의 어울림에 반했습니다.  


내지에 야심차게 마련한 요소는 꼭지 머리마다 넣은 연표입니다. 박물관이 개관한 해부터 흐른 시간을 물리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연도를 나열해 보니 한줌밖에 되지 않더군요. 수십 년 시간이 두 페이지에 다 들어가고도 남으니 세월의 무상함이 눈앞에 펼쳐진 듯 기분이 묘했습니다.


면주에는 박물관 위치도를 간략하게 넣었습니다. 안내판처럼요. 이건 장식이니 귀엽게 봐 주세요. 각 꼭지 말미에 소개되는 박물관의 대표 유물은 형태와 무게감을 고려해 유연하게 배치했고, 부록으로 실은 저자의 소풍 동선은 다채로운 김밥 속 재료처럼, 배낭 속의 간식처럼 알록달록하게 담았습니다. 


표지에는 책의 현판인 제목을 아르바나로 대문짝만하게 걸었는데요, 모양이 워낙 박물관스러워 글자 혼자 일을 다 한 셈입니다. 소풍 기분을 낼 겸 유물 더미에서 발견한 난지도 소풍 사진을 장난스레 넣었습니다.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된 '두건을 쓴 나한'. 사진: 죽순🌱

출장을 여행으로, 춘천박물관

🌱 죽순


『현대 건축』 5판 교정지를 째려보다가 눈이 시려 휴대전화 앨범을 열어봅니다. 작년 여름부터 올해 초 겨울까지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들이 빼곡하네요. 솔직히 처음에는 박물관 책을 만드는데 박물관에 안 가보는 것은 직무 태만이니까 ‘출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첫 번째 목적지를 춘천박물관으로 정했죠. 약간 피곤한 몸을 끌고 KTX를 탔는데, 출장 기분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여행 기분 충만.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내내 반복 재생하며 춘천역까지 달렸어요. 가평역에서 일군의 젊은이가 우르르 내리고, 정작 춘천에서 내리는 사람은 얼마 없더라고요.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박물관…이 아니라 서점을 먼저 갔습니다.😎 광장서적에서 책 구경을 실컷 하고 이번엔 택시를 타고 박물관으로 이동했어요. 광장서적에서 박물관까지 버스로 50분짜리 노선밖에 없었던 기억이;;


이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춘천박물관 로비에서 국악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고 있었어요. 태평소 소리가 박물관 전체에 쨍쨍하게 울려 퍼지고, 어쩐지 몸에 덩기덕 쿵더러러 쿵기덕 쿵더러러러 박자가 흐르더라고요. 일부러 찾아서 보고 싶어도 못 볼 공연이다 싶어서 아이들 틈에 앉아 몸을 흔들며 공연을 즐겼습니다.


춘천박물관의 스타는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이에요. 『박물관 소풍』에 자세히 소개된 이 나한상들은 서울, 경주, 호주까지 순회 공연을 마치고 춘천박물관의 브랜드관에 정착했습니다. 투박하지만 옅은 웃음을 띤 얼굴에서 평안이 느껴집니다. 동글동글 모난 곳이 하나도 없어서 뾰족뾰족한 제 마음을 돌아보게 하더라고요. 아쉽게도 박물관 안내문에는 오백나한의 발굴과 의미에 대해 그다지 설명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김서울 작가님에게 책에 써주십사 적극 청했답니다.✌️


창령사 오백나한상이 유난히 귀염상이에요. 검색해보니 웃음이 일그러진 익살스러운 나한상도 있고 다소 엄숙한 표정에 고행의 흔적이 몸통(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윈) 새겨진 나한상도 있더라고요. 춘천박물관에 전시된 나한상 중에 저의 원픽은두건을 나한상’(위 사진)이에요. 여러분도 춘천박물관에서 자신만의 나한상을 찾아보세요!

❝ 줄의 꼬리를 찾아서: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V.15
🦈 조스바
‘서울일러스트페어’는 2015년에 시작해 올 여름이 벌써 15번째입니다. 저도 초창기부터 여러 번 다녀온 행사예요. 코로나 기간에 주춤했던 모든 페어가 엄청난 활기를 띠고 있어 도서전 다음으로 ‘서일페’도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엄청난 인파 때문에 항상 마음을 먹고 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상당한 난관이 있었어요. 운 좋게 초대권을 받아서 사전등록까지 완료했는데, 티켓박스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어요. 이 거대한 줄의 꼬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줄을 따라 한참을 걸었어요. 족히 10분 넘게 걸은 것 같아요. 마침내 줄의 끝을 표시한 깃발을 발견했습니다. 입장까지 40분 이상은 걸린다는 문구도 함께.. 정말 40분을 기다려 티켓박스에서 표를 받았습니다. 거기에서 입장 팔찌를 받고 바로 입장했어요.


전시장 안에도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파도처럼 떠밀려 가듯 부스를 관람했습니다. 인기가 많은 부스는 번호표를 나눠주시더라고요. 부스 앞에 손님이 쌓이면 길을 막게 되기도 하고, 손님을 응대할 사람도 부족하니 선택한 방법인 것 같았어요. 이렇게 인기가 많은 곳은 트럭으로 상품을 싣고 온다더라고요. 초창기엔 이제 시작하는 일러스트 작가님들 혹은 학생 작가님들도 많이 보였는데, 이번엔 모두가 프로, 기업처럼 보였습니다. 다양한 상품 구성과 물량, 파티션에 달아둔 간판과 로고,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 모든 게 예사롭지 않았어요. 제가 마지막 날에 가서 그런지 ‘sold out’이 잔뜩 붙어 있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사는 물건이 많았답니다.


서일페 관람객 다수가 성인이에요. 일러스트의 그림체를 보면 아이들도 참 좋아하겠다 싶은데 말예요. 캐릭터, 열쇠고리와 같은 것들이 Y2K 열풍의 연장선인가 싶기도 하고요. 이곳에 다녀간 친구들이 쓴 돈의 액수를 듣고 대기줄을 보고 놀랐던 것보다 더 놀라버렸습니다. 몇십만 원은 금방 쓴다고 하더라고요. 엽서는 몇천 원, 키링은 만 원대 인데 대체 얼마나 많이 산 걸까요? (큰 인형들은 큰 금액이지만..) 이 시장이 정말 대단하구나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서일페’를 여러번 와 봤는데 올해처럼 대단한 인파는 처음이었어요. 실내 마스크 해제와 확진자의 격리 의무 해제 이후라 더 폭발한 것 같아요. 다음 페어는 겨울인데 보통 크리스마스를 걸쳐서 한답니다. 주말에 가시려거든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해요.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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