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OUND Vol.84 〈걷는 듯 흐르는 영화〉 김종관—영화 감독

스크린 속에 담긴 계절

입추가 지나고 길었던 장마도 이제 끝을 보이는 듯해요. 한 계절을 떠나보내고 다른 계절을 맞이 하는 이 시기엔 늘 아쉬움과 설레는 마음이 공존합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를 거닐다 보면 왠지 잔잔한 계절의 여운을 남기는 영화들이 떠올라요. 바로 김종관 감독의 영화가 그런데요. 그의 이름을 알린 영화 최악의 하루(2016)는 여름을, 아무도 없는 곳(2021)은 가을을, 하코다테에서 안녕(2019)은 겨울을 가늠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봄은 그의 영화 중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요?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AROUND》 84호에 실린 김종관 감독의 영화 이야기와 더불어 그의 단편 영화, 그만의 단상이 담긴 도서를 소개합니다. 우리 함께 글과 영화를 사유하며, 흘러가는 이 계절을 가만히 붙잡아 보아요.

08.18. Another Story Here―책 너머 이야기

AROUND Vol.84 산책자(A Walker)

걷는 듯 흐르는 영화 김종관—영화 감독


09.01. What We Like―취향을 나누는 마음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을 소개해요.


09.15. A Piece Of AROUND―그때, 우리 주변 이야기

오늘 다시 보아도 좋을, 그때의 이야기를 소개해요.

걷는 듯 흐르는 영화

김종관—영화 감독

어느 맑은 오후, 서촌의 오래된 카페에서 김종관 감독을 만났다. 원래 약속 장소에 자리가 마땅치 않아, 새로 찾아 들어간 카페는 그의 영화 최악의 하루에 나왔던 공간이었다.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자리에 앉아 영화와 산책, 걸으며 담아냈던 그의 영화 속 곳곳을 함께 돌아보았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말이 느리고 걸음은 쓸쓸하다. 온화한 보폭, 조금씩 늘어지는 산책자의 시간처럼 그의 영화는 흐른다.


에디터 김지수 사진 김종관

듣는 사람의 산책

〈아무도 없는 곳〉

더 테이블(2016)을 촬영하다가 떠올린 이야기예요. 하루 동안 한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여러 대화를 담은 영화인데요. 주고받는 대화지만 한 사람이 듣는 구성이면 어떨까, 듣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내면이 변하는 결말을 상상하며 창석을 떠올렸어요. 영화에는 여러 공간이 등장하는데 평소 제 공간적 취향이 묻어나 있기도 해요. 모두 익숙한 곳들이었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조금 달랐고요.


(중략) 많은 사람들이 어둠을 두려워하는데 저는 반대로 어둠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을 어둠이 감춰주고 안아준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호흡이 긴 원신원컷을 찍는 동안 빛이 점점 어두워지는 순간을 기록했죠. 제가 느낀 어둠의 부드러운 이면을 그 장면에 담아내려 했어요. 창작을 위해 산책을 하지는 않지만 종종 걸으며 느끼는 것들을 영화 속에 담곤 해요. 걷다 보면 거리에 흩어진 다양한 공간의 변화와 마주할 때가 있잖아요. 산책으로 미묘한 주변의 변화를 읽는 것처럼 영화 속 공간을 표현하는 방식을 달리하는 거예요.”

헤어짐 속의 산책
〈하코다테에서 안녕〉

하코다테를 소개하는 영화예요. 예산이 적은 프로젝트라 친한 스태프들과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하고 싶어서 하코다테로 출발했어요. 떠나기 전에 그 동네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죠. 


(중략) 눈과 노란색의 대비가 아름답게 담긴 영화인데, 영화를 찍다 보면 ‘우연’을 오롯이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할 때가 있어요. 이 영화엔 그 우연을 잘 녹인 장면이 있죠. 길에서 우연히 노란색 우산을 발견해서 기차 건널목에 우산을 펼쳐 놓고 촬영했는데요. 바람에 우산이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춤추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이더라고요. 그때 이 장면이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는 나쁜 우연도 많지만 그것들마저 안으로 끌고 와 좋은 우연으로 만들어야 할 때가 있죠. 하코다테에서 안녕(2019)은 길 속에서 좋은 우연과 나쁜 우연을 발견한 영화예요.”

솔직한 오늘의 산책
〈최악의 하루〉

“은희는 온종일 거리를 걷는데 변하는 상황에 따라 걷는 속도와 모양이 달라져요. 화나서 걷고 슬퍼서 걷고 도망가기 위해서 걷고 쫓아가려고 걷고 그냥 산책을 하기 위해서 걷기도 하고요. 


(중략) 당시에 창피했던 수치스러운 감정도 영화 속에 표현되면 재미있는 요소가 되는 경향이 있어요. 은희는 오늘 최악의 하루를 보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다, 나중엔 별거 아닌 하루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영화 속 길들을 이야기와 대비하듯 산뜻하게 표현한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오늘은 어쨌든 흘러가 버리는 하루이며 우리는 그렇게 무수한 실수와 이불 킥을 할 만한 사연들을 겪으면서 결국엔 나아가는 거예요.”

가만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일

김종관 감독의 단편 영화에는 단순한 마음, 찰나의 감정이 담겨 있어요. 오직 그때만이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순간들이기도 하죠. 그래서 더욱 오래 기억해 곱씹고 싶은 영화들입니다. 저는 가끔 무료해질 때 그의 짧은 영화들을 틀어 놓고,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곤 해요. 그렇게 평범한 순간을 영화와 함께 지나다 보면 이 작은 일상이 아주 특별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서로 다른 봄의 모습을 간직한 영화 두 편과 함께 그가 쓰고 적은 마음을 담은 도서를 선별해 소개해 드릴게요. 느리고 진득한 매력이 있는 이 감독이 만들어낸 것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뭘 느낄 수 있을까요?

서툴고 설레는 봄의 사랑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햇살이 비추는 학교 안. 폴라로이드 사진과 얼음이 담긴 컵, 유미의 작은 손. 그에게 폴라로이드를 가르쳐 주는 정민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누군가를 처음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그대로 일렁인 듯 유미의 얼굴은 화면 가득히 흔들린다. 여린 설렘을 몰고 오는 봄을 닮은 영화.

이른 봄, 새벽의 어스름을 담은

유품(2014)

누군가 남긴 흔적의 조각을 기록하듯 장면이 펼쳐진다. 오래된 공중전화, 고인물에 떨어진 낡은 우산, 버려진 운동화, 허물어 가는 건물들. “길에서 죽은 한 남자의 그림들이 남아있다. 그의 그림을 면밀히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의 역사는 그만큼 살아 있을 것이다.” 낮고 진중한 목소리가 남기는 말. 서늘하지만 곧 아침의 빛을 몰고 오는 어느 봄처럼, 고요히 아름다운 영화.

어떤 존재, 골목

《골목 바이 골목》 그책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서촌 일대의 골목들. 산책을 좋아하는 김종관 감독이 걸으며 발견하고 느낀 마음들이 담겼다. 담담한 자기 고백을 시작으로 길 위에서 만든 작은 기억들까지. 그와 함께 걷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흘러가버릴지도 모를

《사라지고 있습니까》 | 우듬지

순간을 기록한 필름 사진과 함께 실린 에세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있는 일상이 그에게도 일어난다. 김종관 감독만의 상상이 더해져 평범한 일상들은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끝에는 우리가 가질 새로운 단상이 기다린다.

종이가 전하는 마음

〈Speaking with Paper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스 출신의 아티스트, 요한나 타가다 호프백Johanna Tagada Hoffbeck의 전시 소식을 전해요. ‘일상의 예술적 실천’이라는 탐구 방식으로 회화, 일러스트, 조각, 사진, 글쓰기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경계 없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작가인데요. 여름 한 달간 그와 준비한 전시 프로젝트가 글월 연희점에서 시작해 성수점으로 옮겨, 각 공간에서 2주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하는 그는 ‘종이'를 통해 시각적인 언어를 만들고 우리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선사하고 있어요. 글월은 한지로 작업한 콜라주 작품 일곱 점을 비롯해 종이의 즐거움을 전달할 양장 스케치북과 편지 세트를 제작했으니, 전시 관람과 함께 편지 세트에 주목해 주세요. 곧 발행될 《AROUND》 85호에도 그의 작품이 소개될 예정이니 모두들 기대해 주시길 바라요.

어느새 10주년을 맞이한 어라운드는 그동안 애정을 보내주신 독자분들과 함께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다 궁금해졌어요. 님은 그간 어라운드가 선보인 소식들 중에 어떤 콘텐츠가 가장 마음에 남았나요? 인터뷰 기사도 좋고 에세이도 좋아요. 님의 의견을 자유롭게 보내주세요. 독자분들의 목소리에 집중해 더 좋은 소식으로 보답할 수 있게 노력할게요. 다음 뉴스레터는 어라운드 직원들의 취향 이야기를 소개하는 ‘What We Like’ 콘텐츠가 발행됩니다. 이번엔 어떤 주제로 취향 소개가 이어질까요? 그럼, 다다음 주 목요일 아침 8시에 만나요. 안녕!

'산책자(A Walker)’를 주제로 한 《AROUND》 84호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이미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매거진 《AROUND》에서 편집팀 경력 에디터를 찾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NEWS를 확인해 주세요. 프로필 링크 트리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어라운드의 시선이 담긴 콘텐츠를 손안에 놓고 살펴보면 어떨까요?
온라인 이용권을 구독하여 ‘AROUND Club’ 회원이 되어주세요.
• 어라운드가 건네는 인사이트 간편 기록
• 오래 기억하고 싶은 기사 스크랩
• 지면에 실리지 않은 비하인드 컷 감상
• 지난 뉴스레터 콘텐츠 모아보기
• 커피 한 잔 가격으로 모든 콘텐츠 감상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책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나누어 당신의 일상이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독자와의 대화를 기대하며 답장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주변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2022 AROUND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