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말라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물을 안 줘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안 줘봤는데요. 오늘은 제가 어찌해서 그런 인성 논란이 생길 정도의 일을 저질렀는지, 당시의 심경에 대해 고백을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끝까지 들어보시고 한번 판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풋살을 하다가 생긴 일입니다. 저는 요즘 일주일에 1~2회 정도 풋살을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번은 원래 알던 사람들과 하는 것이고, 나머지 한 번은 풋살 소셜 플랫폼을 통해 처음 보는 사람들과 팀을 맺어 공을 차는 것입니다.


위에 말한 사건은 당연히 처음 보는 사람과의 풋살장에서 벌어졌습니다. 저는 그곳에 갈 때마다 늘 정해진 양의 마실 것을 가져갑니다. 혼자 마시기에 부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겨서 버리지도 않을 정도의 정량이 여러 번의 운동 경험을 통해 세팅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날도 딱 그만큼의 마실 것을 준비해 갔었습니다. 그렇게 한 두 경기를 뛴 다음 쉬면서 달콤한 물을 마시고 있었죠. 그런데 그때 한 참가자분께서 제게 다가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것이었고, 그걸 제가 거절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진짜 목이 말라서 그런데 혹시 물 조금만 마실 수 있을까요?”


물론 제가 그 사람에게 나이스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다만 저는 처음 보는 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르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모를 사람이라 그랬다기보다는, 예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홀로 운동을 하러 올 때 자신의 마실 것은 자기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라고 보기도 하고, 정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정도로 목이 마르다면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편의점에 빠르게 다녀오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이따 본인이 편의점에 가서 새로 사 온다고 할 수도 있었던 것이구요.


뭐 따져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저 역시 제가 다소 친절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물을 나눠드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합당하다고 믿고 있지만, 친절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백 번이고 인정을 합니다. 그분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물을 나누지 않은 일이, 두 번째 풋살장이 아닌 첫 번째 풋살장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어땠을까요? 말하자면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불친절했던 것이 아니라, 친한 사람에게 나이스하지 않았다면? 아니 정말 친한 사람에게 갑자기 그렇게 했다면? 오늘 얘기하고 싶은 영화는 그런 상황을 더 극단적으로 풀어나간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라는 영화입니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두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파우릭과 콜름. 파우릭은 40대 정도로 보이고, 콜름은 60대 정도로 보입니다. 이는 사실 배우의 나이이기도 합니다. 76년 생의 콜린 패럴과 55년생 브렌던 글리슨이 두 인물을 연기합니다. 파우릭과 콜름은 꽤 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절친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어제까지 절친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 콜름은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포합니다. “난 네가 싫어졌어.” 파우릭은 어떻게 먼 나라 한국의 유명 대중가요를 알고 있는지, 이 말이 가사인 노래의 제목을 떠올립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어제까지 저 좋아했잖아요.”


<이니셰린의 밴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일랜드의 외딴섬에서 펼쳐지는 두 남자의 우정 싸움만으로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주로 절교를 통보받은 파우릭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포인트는 ‘그래서 콜름은 왜 파우릭이 싫어진 건데?!’입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그 사연을 되도록 기발하고 재밌는 플러스 감동과 메시지까지 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사연에 큰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콜름은 그저 ‘위대해지고 싶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우릭아, 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음악을 만들고 싶어. 그럼으로써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나는 이제 너와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나 하고 맥주나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겨워. 아무런 의미가 느껴지지 않아. 너가 나이스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난 나이스한 사람보단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거야.

  


콜름의 이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의 방식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현실적인 영화라기보다는, 가상의 공간에 친구들을 가둬놓고 실험을 하는 것 같은 영화입니다. 누구나 친구와 절교하는 경험을 하기는 하지만, 콜름과 파우릭의 예처럼 이렇게 극단적이고 인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일은 드물기 마련이니까요. 이 영화는 이렇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의 절친으로부터 불현듯 당신을 싫어한다는 고백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당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이런 일을 겪는다면 당신은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앞으로 누구와 더 친하게 지낼 것인가. 파우릭? 콜름? 아니면 둘 다도 아닌 다른 친구? 그 친구는 어떤 친구인가…


그런데 당신은 어떤 친구이신가요? 아니 어떤 친구가 되고 싶으신가요? 당신이 이제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친구가 (갈매기 눈썹을 만들며) 우울한 표정을 한 채 나타나 당신에게 다시 친구를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너와의 우정이 정말로 고프다고 한다면, 우정에 진심으로 목말라한다면, 당신은 그 친구에게 시원한 우정 한 모금을 다시 건네실 수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모르는 사람에게 그토록 매정하게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은 저와는 친구를 할 수 있으신가요?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씨네21에 기고한 <가오갤3> 비평 글이 웹사이트에 공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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