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입니다.
September 5, 2023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26
너의 고향은 북향이야  
식물방에는 한 뼘의 빛이 겨우 들어옵니다. 북향이기 때문입니다. 아침나절 해가 잠깐 들어왔다가 사라지지요. 식물들은 순식간에 달아나는 해를 쫒다가 결국 거북목이 되어버립니다. 창가는 비좁고 식물은 많으니 이곳은 언제나 새로 들어온 식물들의 차지입니다.

몇 달 전에 들인 알로카시아 프라이덱(Alocasia Fridek)도 창가에서 신입내기의 특권을 누리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 식물도 북향의 빛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거북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애초에 이 식물을 비좁은 창가보다는 책상자리에서 잘 보이는 선반 위에 놓고 싶었습니다. 인테리어 효과로도 딱이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 다 결국 창가에서 식물을 가져와 선반 위에 두기로 합니다. 화분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았습니 다. 역시 품격이 느껴지는 벨벳 질감의 잎!

‘이 자리가 딱이네. 여태 창가 구석탱이에서 뭐하고 있었니?’

볕 좋은 창가가 ‘구석탱이’로 전락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한참을 들여다보며 흡족해하고 있으려니 불편한 마음이 들어와 앉습니다. 식물이 선반 위에서 금세라도 이파리를 떨굴 것처럼 퍼렇게 질려 있습니다. 식물이 저에게 말합니다.

‘거북목이 되어도 좋으니 해를 볼 수 있는 북향으로 가고 싶다.’

식물은 생각하지 않고 꾸역꾸역 내 욕심만 채우는 건 아닌지. 식물등을 달아줄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썩 내키지 않습니다. 결국 원래 식물이 있던 창가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그 대신 식물을 창가로 보내기 전에 식물의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리고 식물에게 답했지요.

‘창가는 네가 자리잡은 곳이니 이제는 북향이 네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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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내가 원하는 자리에 놓아야 할까, 식물이 원하 는 자리에 놓아야 할까?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어도 대부분 “식물이 원하는 자리”라고 대답합니다. 당 연해 보이는 이 답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종종 내가 원하는 자리에 식물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거든요. 이 무슨 요망한 일인지. ‘저 자리에 딱 식물이 있으면 안성맞춤인데?’ 하는 생각. 요괴가 나타나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바꿔버리는 순간이지요. 빈 자리를 보면 식물을 올려두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궁금증은 식물 키우기 FAQ의 단골 주제입니다.

Q. 식물은 인테리어로 훌륭한 소품 아닌가요? 플랜츠+인테리어, 플랜테리어라는 말도 있잖아요? 왜 내가 놓고 싶은 자리에 놓으면 안 되지요?

A. 식물은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 맞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에 식물을 놓고 싶다면 그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식물을 놓으세요.

수학공식 같은 정답이지만 세상의 일이란 숫자만 대입한 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물도 잎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잘 자랍니다. 자주 들여다보고 상태를 봐주면 그만큼 건강해집니다.

아피스토 드림.
📙 아피스토 식물 에세이 <처음 식물> 출간 예고
북펀딩 한정판
정식 출간판  
<아피스토의 풀-레터>를 연재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가네요. 
한 번의 빠짐 없이 2주에 한 번 식물 레터를 보내드릴 수 있었던 데는 구독자 여러분의 격려와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1년 간 <아피스토의 풀-레터>에서 연재했던 이야기들을 좀더 다듬고 보강하여 <처음 식물>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로 출간합니다. 

2023년 9월 8일(금)부터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한 달간 북펀딩을 진행하고요. 10월 중순 출간 예정입니다. 북펀딩을 통해 도서를 구입하시는 분들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포스터형 북커버 한정판과 후원자 리스트를 인쇄하여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북펀딩이 오픈하면 다음주 화요일 번외편 레터를 발송하여 참여 방법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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