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방에는 한 뼘의 빛이 겨우 들어옵니다. 북향이기 때문입니다. 아침나절 해가 잠깐 들어왔다가 사라지지요. 식물들은 순식간에 달아나는 해를 쫒다가 결국 거북목이 되어버립니다. 창가는 비좁고 식물은 많으니 이곳은 언제나 새로 들어온 식물들의 차지입니다.
몇 달 전에 들인 알로카시아 프라이덱(Alocasia Fridek)도 창가에서 신입내기의 특권을 누리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 식물도 북향의 빛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거북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애초에 이 식물을 비좁은 창가보다는 책상자리에서 잘 보이는 선반 위에 놓고 싶었습니다. 인테리어 효과로도 딱이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 다 결국 창가에서 식물을 가져와 선반 위에 두기로 합니다. 화분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았습니 다. 역시 품격이 느껴지는 벨벳 질감의 잎!
‘이 자리가 딱이네. 여태 창가 구석탱이에서 뭐하고 있었니?’
볕 좋은 창가가 ‘구석탱이’로 전락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한참을 들여다보며 흡족해하고 있으려니 불편한 마음이 들어와 앉습니다. 식물이 선반 위에서 금세라도 이파리를 떨굴 것처럼 퍼렇게 질려 있습니다. 식물이 저에게 말합니다.
‘거북목이 되어도 좋으니 해를 볼 수 있는 북향으로 가고 싶다.’
식물은 생각하지 않고 꾸역꾸역 내 욕심만 채우는 건 아닌지. 식물등을 달아줄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썩 내키지 않습니다. 결국 원래 식물이 있던 창가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그 대신 식물을 창가로 보내기 전에 식물의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리고 식물에게 답했지요.
‘창가는 네가 자리잡은 곳이니 이제는 북향이 네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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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내가 원하는 자리에 놓아야 할까, 식물이 원하 는 자리에 놓아야 할까?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어도 대부분 “식물이 원하는 자리”라고 대답합니다. 당 연해 보이는 이 답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종종 내가 원하는 자리에 식물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거든요. 이 무슨 요망한 일인지. ‘저 자리에 딱 식물이 있으면 안성맞춤인데?’ 하는 생각. 요괴가 나타나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바꿔버리는 순간이지요. 빈 자리를 보면 식물을 올려두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궁금증은 식물 키우기 FAQ의 단골 주제입니다.
Q. 식물은 인테리어로 훌륭한 소품 아닌가요? 플랜츠+인테리어, 플랜테리어라는 말도 있잖아요? 왜 내가 놓고 싶은 자리에 놓으면 안 되지요?
A. 식물은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 맞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에 식물을 놓고 싶다면 그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식물을 놓으세요.
수학공식 같은 정답이지만 세상의 일이란 숫자만 대입한 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물도 잎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잘 자랍니다. 자주 들여다보고 상태를 봐주면 그만큼 건강해집니다.
아피스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