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세이


033. 2021/11/7 일요

안녕하세요, 00님.
완벽한 11월의 가을이네요.

저는 오늘 낙엽이 아름답게 떨어지는 정동길을 걷고,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십개월의 미래> 영화를 보고 왔어요.
남궁선 감독님과 남궁인 작가님의 시네토크가 있었는데요,
이런 말을 하시더라구요.


"과거는 머물러 있고,
현재는 치열하며,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의 레터와 맞아 떨어지는, 
마음에 와닿는 말이어서
00님에게도 전하고 싶었어요.

저는 이틀 전에 생일이었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또 SNS를 통해 많은 축하를 받았어요.
덕분에 기쁘고, 더욱 행복했답니다. 감사해요.

_

00님의 생일은 언제인가요?
저는 늘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생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혹시 00님도 그러시다면
언젠가 00님 생일날, 
다시 이 글을 꺼내 읽어보시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너무 흔하게 쓰이다 못해 괜시리 묘하게 들리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문장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뭐랄까요.
누구든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니까요.
사랑이 있기를 바랄 뿐이예요.

언젠가의 누군가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당신은 가치있는 사람이고,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니 꼭 행복했으면 한다고.
여전히 나는 다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런 편지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보내지 못했네요.

저도 그런 말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마음을 담아, 3일에 걸쳐 쓴 글을 보냅니다.

봉현

Happy birthday for my happiness


11월 5일.

보통의 하루가 저 숫자로 특별해지는 날. 
내 생일이다.

10년 전 스페인 산티아고 성당 뒤에 앉아 노을을 보던 날은 꿈 같았고, 8년 전 사랑하는 사람이 끓여준 밍밍한 미역국은 세상에서 제일 따뜻했으며 6년 전 친구의 웨딩 촬영을 하러 간 제주에서는 깜짝 선물에 신이 났고, 4년 전 단골 바에서는 친구들이 준비한 깜짝 케이크에 감동했으며 2년 전에는 엄마가 비밀리에 보내준 꽃다발과 편지에 엉엉 울고, 1년 전엔 가을 숲과 인천 바다를 친구들과 함께 아이처럼 뛰어다녔다.

그리고 올해. 혼자 생일을 보냈다.


올해는 정말, 쉽지 않았지- 정도로 얼버무리고 싶지만, 사실은 굉장히 힘들었다.
고백하자면 올해 몇번이나 죽고싶다고 생각했다.
괴롭고 아프고 외로웠다. 나를 향한 수백가지 의문과 관계에 대한 두려움, 도저히 알 수 없는 세상의 벽.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고,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행복한 순간은 조금도 없었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눈물이 났다. 차라리 계속 잠들어있다면 좋을텐데, 그대로 깨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일어나 봤자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왜 계속 살아있어야 하는걸까. 한강을 걷다가 저기서 빠지면 죽을까, 찻길을 건너다 사고가 나면 아플까, 약은 몇 알 정도 먹으면 죽는 걸까.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실행에 옮길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이, 그저 살아있었다. 적극적으로 죽음에 임하기는 커녕, 일상 생활을 하는 것도 버거웠기에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울다가 잠들고, 티비를 보다가 갑자기 울고, 밥을 먹다가 울고. 아무 이유없이 울고 멍하니 있기를 반복했다.

모든 것에 지쳤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즐겁고 기쁜 마음도 모두 사라졌다. 이전엔 도망치듯 떠났던 여행마저도 갈 수 없는 세상이었고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사랑했던 사람의 소식은 영영 알길이 없고, 다른 사랑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들과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은 건 나였으며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 모습은 우울했고 내 성취는 초라했다. 삶이 싫었다.

느껴졌다. 몇십년을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기대도 기댐도, 계획도, 희망도 없던 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렀고, 어느 시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천천히 나아졌다.


그리고 11월의 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건강해보여, 행복해보여.
예쁘고 멋지구나. 좋아보인다.
다행이야.

생일 축하해. 정말로.


요즘의 나는 소소한 순간의 행복까지 세심하게 느낄 수 있다. 진심으로 웃을 수 있고 잘 자고 잘 먹는다. 흘러가는 계절을 만끽하며 하늘을 자주 본다. 혼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의 하루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다시 나로써 살아갈 힘이 있다.

무엇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던 걸까. 어떤 사건의 계기도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니었다. 나를 다시 괜찮은 사람으로 만든 건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 외로워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아파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다. 차근차근 집을 돌보고 건강을 챙기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무리없이 만나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주 보고, 별것 아닌 순간들을 꾸준히 기록했다. 다이어리에 묻은 우울의 얼룩들은 단단한 의지가 담긴 단어들로 바뀌었다.

절망대신 희망을,
고독대신 자립을,
과거대신 현재를.

그리고 다음 단어는 노력과 성장,미래이길 바라며 글을 쓴다.

내가 세운 앞으로의 계획들은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해야 할 막막함마저 기대된다. 힘들겠지만 즐거울 것이고, 어렵겠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찰랑찰랑 넘쳐서, 하루하루가 아쉽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까지 느껴진다. 요즘의 나를 보면,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난다. 지난 시간의 내가 안쓰러워서, 그리고 마음이 아파서.

그래서 이번 생일은 혼자 있고 싶었다. 오직 나만을 위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짐을 쌌다. 트래블 백에 잠옷과 안대, 여분의 옷을 개어 차곡차곡 담고 세안용품과 화장품을 챙겼다. 책과 일기장, 노트북까지 가방에 묵직하게 담았다. 여행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서서 엄마가 보내준 돈으로 꽃을 사고, 아빠가 보내준 돈으로 케이크를 샀다. 걸어서 이십분 거리의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꼭 책상이 있는 방으로 부탁드린다고 하자, 생일을 축하한다며 룸 업그레이드를 해주셨다.

방은 완벽했다. 킹사이즈 침대의 하얀 침구, 머리맡에 배치된 널찍한 책상과 편안한 의자. 적당한 조도의 조명과 아늑한 온도. 블루투스 스피커와 가습기까지. 깔끔한 욕실과 차분한 컬러의 벽지, 군더더기 없는 멋진 물건들로 채워진 호텔 방.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그렇게 혼자 호텔 방 책상에 앉아, 케이크에 초를 불고 차를 마시고, 초밥을 주문해서 저녁을 먹고,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썼다. 너무 행복했다. 졸려서 하품이 나오는데도 자고 싶지가 않았다.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커다란 침대에 대자로 누웠고, 깊은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방에 돌아와 한시간정도 낮잠을 잔 뒤, 조금 더 글을 쓰다가 정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하면서- 혼자의 생일을 끝냈다.


완벽한 하루였다. 
이제껏 보낸 생일 중 가장 특별한 날이었다.

그만큼 짧게 느껴졌다. 하루 더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완벽한 순간들은 찰나의 것이기에,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 하며 호텔을 나왔다. 이런 사치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지. 허튼 데 쓰지말고 좋은 시간을 사야지. 가끔 나를 위해 상을 줘야지. 그런 결심을 하며.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선물 받은 35번째 생일.


다시 한번 생각했다. 몇십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 모른다는 것을.

똑같은 생각에 한없이 절망하던 지난 나와 달리 지금의 나는 말할 수 있다.
그거 정말 멋지고 설레는 거 아니냐고.

삶은 당연히 알 수 없는 거였다. 어떤 삶을 살지,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될지, 앞으로 뭘 경험하고 뭘 하게 될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기대하며 살아도 좋을 거 같다.
당장 내일 삶이 끝난다 해도, 오늘의 나는 알 수 없을테니.


살다보면 다시 또, 죽고 싶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만약 내 의지로 죽음을 결정하는 날이 정말로 온다면,
생이 지겹도록 끔찍해서가 아니라, 도저히 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완벽하게 행복하고, 이쯤이면 충분히 멋지고 좋은 삶을 살았으니
이젠 죽어도 괜찮겠다. 정말로 내 삶은 행복했다.
세상은 아름다웠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태어나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기를.

내가 태어난 날은 '삶'을 선물받은 날이었다고.
그 선물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있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Happy' Birthday, to me.



다시 한 번 1년 잘 살아내서,
내년에 또 다시 
축하 인사를 전할 수 있기를.

00님,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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