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덕에 식덕된 남자...
Mar 7, 2023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12
아마노 다카시의 유작 <물속의 숲>을 관리하는 모습.
(Photo credit by Filipe Oliveira) 

🐟 식물을 사랑하는 당신께

포루투갈 리스본에는 가로 40미터짜리 대형 수초 어항이 8년째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어항에는 물 16만 톤, 모래 12톤, 화산암 25톤, 나무줄기 78개가 들어가 있죠. 그리고 약 40여 종 1만 마리의 열대 민물고기와 46종의 수초가 완벽한 생태계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수초 어항으로는 세계 최대 크기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의 작가 아마노 다카시가 제작했습니다. 그는 2015년 전시 오픈식을 하고 4개월 뒤인 6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요. 작품 이름은 ‘물속의 숲(Forests underwater)’입니다. 지금도 8년 전 처음 제작된 모습 그대로 수초와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전시되고 있는데요. 일본 수초전문가들이 직접 파견되어 유지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식물을 키우게 된 계기를 거슬러가보면 아마노 다카시가 있습니다. 아마노 다카시를 알기 전엔 ‘어항’이 먼저 있었고요. 어항을 만나기 전엔 첫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금붕어 한 마리가 처음이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어항에서 숨을 할딱거리던 금붕어를 살리기 위해 좀더 큰 어항을 구입한 것이 시작이었죠. 금붕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어항을 꾸미다보니 수초를 키우게 되었고요. 수초를 키우면서 식물에 관심이 생긴 것이 결국 식물 유튜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수초로 예쁘게 어항을 꾸미고 싶어서 검색을 하다보니, 수초를 이용해서 어항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자연을 축소해서 물속에 담아놓은 거죠. 심지어 어항 안이 물속인지 천공의 섬 라퓨타인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작은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장대한 협곡 풍경이나 아마존의 우거진 밀림 속 풍경을 오로지 돌과 나뭇가지, 수초, 그리고 물고기만으로 재현해냈습니다. 


이런 작품을 수경예술(nature aquarium, 네이처 아쿠아리움)이라고 부릅니다. 자연의 풍경을 어항 속에 재현한다는 뜻이죠. 일본에서는 매년 대규모 수경예술 공모전이 열리고 전 세계에서 수천 점의 작품들이 몰려듭니다. 


공모전의 출품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어항을 찍은 고화질의 사진 한 장을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 전부죠. 심사위원들은 그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구도와 균형감은 물론이고 얼마나 창의적인 주제로 표현했는지를 봅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심사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물고기와 수초의 건강상태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기법과 신선한 구도로 만든 수초 어항이라고 해도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식물과 생물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죠. 이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전 세계의 아쿠아스케이퍼(aquascaper, 수경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릅니다)들은 몇 달 전부터 준비합니다. 완성도 높은 사진을 찍기까지 매일 어항물의 반을 환수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관엽식물의 최대 적이 해충이라면, 수초의 최대 적은 이끼거든요. 수초에 이끼가 끼면 출품은 물 건너갑니다. 심사의 기준인 수초의 건강상태는 바로 이끼가 있냐 없냐이기도 하니까요. 이끼는 물속에 영양이 과다하면 생기는데 물고기 배설물도 거기에 한몫합니다. 그 때문에 참여자들은 매일 물동이를 나르며 어항 환수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죠. 


이 공모전을 주최한 곳은 ADA라는 일본의 수족관용품 회사입니다. 바로 포루투갈 리스본에 40미터짜리 수초 어항을 유작으로 남긴 아마노 다카시가 세운 회사죠. 수경예술, 즉 네이처 아쿠아리움이라는 장르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생전 네이처 아쿠아리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건강한 생태계 안에서 유지된다.”


이 말 속에는 네이처 아쿠아리움의 철학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수경예술은 어항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수초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 안에서 수초와 물고기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얼핏 들으면 쉬울 것 같지만, 사실 어항 안에서 물고기와 수초를 모두 건강하게 키워내는 것은 물과 기름을 섞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물고기와 수초는 서로에게 필요한 산소와 영양을 공급해주지만, 필요한 만큼만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과하거나 부족하면 수초든 물고기든 병이 들게 되죠. 


아마노 다카시는 아마존강과 밀림의 자연을 찍는 사진작가였습니다. 지금은 대형마트 수족관 코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푸른 형광색 몸통 위에 붉은 띠가 있는 물고기 카디널 테트라의 야생 사진을 세계 최초로 찍은 사람이 아마노 다카시였죠. 그는 아마존강을 어항 속에 재현하면서도 수초와 물고기가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 수초 키우기란 마당에 꽃이나 나무를 심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어항 안에도 수초를 풍성하게 다채로운 색깔로 조화를 이루며 키우는 ‘더치 스타일(dutch style)’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런 사육 방식은 1930년대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죠. 그런데 아마노 다카시는 여기에 일본의 정원 디자인 철학을 접목시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듭니다. 돌이나 나뭇가지를 레이아웃의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또 수초도 이산화탄소가 필요하다는 걸 발견하고는 이산화탄소를 어항에 주입하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수초의 광합성에는 청색 파장이 유용하다는 걸 깨닫고는 메탈할리드 조명을 처음으로 수초용 조명으로 사용하게 되죠. 


ADA의 제품들은 고가이기도 하지만, 가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수족관용품계의 애플’이라고도 불리죠. 그는 “어항 속 풍경을 관상하는 데 장해가 되는 요소는 모두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ADA에서 어항의 프레임과 뚜껑까지 모두 제거한 ‘큐브가든’이라는 이름의 어항을 출시하기에 이릅니다. 지금은 수족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프레임 없는 ‘누드어항’의 시초지요.


사람들은 그가 만든 아름다운 수초 어항을 보고 한편으로는 의아해했습니다. 과연 저렇게 꾸며놓고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조만간 이끼로 뒤덮히거나 폭풍 성장한 수초가 애써 만든 레이아웃을 무용지물로 만들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노 다카시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수초 어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장이 느린 수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볼비티스나 아누비아스 나나, 크립토코리네와 같은 야생의 수초들을 적극적으로 레이아웃에 활용한 이유였습니다. 


네이처 아쿠아리움은 어항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인위적으로 조경하고 관상하는 장르였지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어항 속에 가장 자연스러운 풍경을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카디널 테트라가 마치 아마존강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것이었죠. 그런 자연을 어항 속으로 옮기는 일은 자연과 인간이 공생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공간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자연을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작품 ‘물속의 숲’을 제작한 후에, 가고시마의 어느 시골에서 자서전 집필과 위암 치료를 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되는데요. 그곳에 머무는 동안 카메라에 흑백필름을 넣고 활기 넘치는 거리 풍경을 찍었습니다. 그가 타계하고 한 달 뒤인 2015년 9월  자전 사진집이 출간되는데, 책의 제목은 <Origin of Creation(創造の原點, 창조의 원점)>이었습니다. 삶의 끝에 선 그는 아마 50년 전 10살 때 형의 카메라를 빌려 흑백사진을 찍었던 처음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날이 아마노 다카시의 ‘창조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피스토 드림

도쿄 스미다 아쿠아리움에 전시되어 있는 아마노 다카시의 2012년도 작품.
지금도 이 레이아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9년 물올랐'었었었'던 아쿠아스케이퍼 아피스토의 수초 어항 (120*45*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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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논스톱 식물집사 아피스토TV>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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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 오늘의 관련 영상
아마노 다카시 <Origin of Creation> 북리뷰 편  
  
2015년 아마노 다카시의 <Forests Underwater> 제작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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