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침략자들이 (또!) 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온 놈들의 방식은 꽤나 독특합니다. 놈들은 침략에 앞서, 먼저 인간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그런 다음에 몽땅 다 빼앗으려고 하는 치밀함을 보입니다. 이를 위해 선발대를 보내, 인간의 언어 속에 있는 ‘개념’을 수집하고 다닙니다. 이를테면 가족, 자신, 자유, 소유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산책’입니다. 산책을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고, 그래야 더 많은 개념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NO.38]

산책이란, 좋은 것이다

2022년 11월 26일


침략하기 위해 산책을 한다. 어딘지 허술해 보이고 잉여롭게까지 느껴지는 설정입니다. 보통 침략이라는 게, 물론 해본적은 없지만 어쨌든 정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어떤 것일 텐데, 이를 위해 한가롭게 산책 따위를 한다는 게, 외계인들이 독특한 뇌 구조를 짐작해 보게 만드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덕분에 재밌습니다. 치열함과 한가로움의 아이러니한 결합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일들은, 바로 개념을 뺏는다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핵심은 외계인이 누군가로부터 어떤 개념을 얻게 될 때, 뺏긴 사람이 반대로 그 개념을 잃게 된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입니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잃게 된 사람은 이제 가족이란 무엇인가, 명절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소유라는 개념을 잃은 사람은 마치 무소유라는 메시지를 설파하는 현자처럼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외계인의 산책이 이어지고, 그 결과로 또 다른 새로운 개념을 잃는 희생자가 나타날 때마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엔 언뜻 감독의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잃게 된 개별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뚜렷한 공통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일(노동)’을 잃게 된 한 사장은 직장에서 마치 어린 아이처럼 노는 모습을 보이고, ‘소유’를 잃은 사람은 지금까지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전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하며 외계인에게 오히려 고마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잠깐 일이나 소유라는 개념을 잃은 해방된 나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근심 걱정 하나 없이 그저 내 앞에 펼쳐진 자연의 풍광과 냄새를 즐기는, 마치 강아지가 산책하는 것처럼 뛰노는 저의 모습을 말입니다.


영화 얘기하다 잠깐 딴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지난주 추천작으로 소개했던 프로그램 <고독한 훈련사>에 관해서입니다. 방송에서 계속해서 문제견을 지적하고 다그치는 것을 해왔던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이, 행복한 강아지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는 프로그램입니다. 보고 있으면 강형욱이 마치 외계인의 산책처럼, 행복한 개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개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강형욱은 지금까지 자신이 방송에서 보였던 훈육방식이 틀렸던 것은 아닌가, 정말 그것이 개들의 행복에 가까운 것이었었나 반추해 보게 됩니다. 이렇듯 느슨한 산책을 통해 행복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에서, <고독한 훈련사>와 <산책하는 침략자> 또한 느슨한 공통점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결국 인간의 행복 조건에 대해 말하는 영화인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행복의 조건에 관한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지는 않습니다.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는(희곡 원작이 있기는 합니다) 그저 이 상황을 만들어 놓기만 한 채, 이야기의 목줄을 완전히 풀어 놓고 그것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방관자적인 태도로 지켜볼 뿐입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점점 더 가벼워지고, 외계인들의 헐렁한 방식은 갈수록 비효율적으로 다가옵니다. 개념 같은 거 뺏을 수고를 할 필요 없이, 그냥 내일 당장 침공에 나서도 지구는 순식간에 함락당할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 역시 무방비 상태입니다. 지금이 위기 상황인 것을 느끼고 있는 캐릭터는 주인공 나루미 뿐이고, 심지어 저널리스트인 한 남자는 외계인들을 적극적으로 도우기까지 합니다.


영화는 말 그대로 산책 같습니다. 좋게 말해서 매우 자유롭습니다. 뚜렷한 목적지도, 방향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정된 도착 시간도 없으므로, 영화의 속도 또한 뒤죽박죽입니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귀엽습니다. 마치 아이들의 재롱잔치 같습니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메시지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영화에서 가장 귀여운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외계인은 산책 도중 한 성당에 들어갑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주제로 작은 행사가 진행되고 있고, 유아 성가대가 성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동안 개념을 수집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가고, 심지어 강아지에게까지 말을 걸어대던 외계인이, 여기선 아이들의 노래를 방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귀엽고 허술한 침략자가 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갑자기 외계인이 인류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섬뜩한 대사를 날립니다. “사랑이란 뭘까요?” 지구는 지금 ‘사랑’을 빼앗길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영화는 이 순간 크게 방향을 바꿉니다. 지금껏 개념을 잃게 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위주로 영화를 보았다면, 이제 어떤 개념을 알게 된 ‘외계인’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가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랑을 알게 된 외계인’은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요. 사랑을 알게 됐으니 이제 침략을 멈추는 것일까요? 외계인의 산책은 앞으로 계속될 것일까요. 이 대책 없는 소동의 해결책 역시 ‘사랑’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사랑이 전달되는 순간이 찾아오고, 침략도 멈춥니다. 나루미가 남편의 몸속에 들어온 외계인에게 사랑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통째로 외계인에게 넘겨 준 나루미. ’사랑을 준다’라는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을 담아낸 위대한 장면. 그런 나루미의 표정에선 아무것도 읽히지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침략이 멈춘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남편은 나루미의 곁에 평생 있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나루미가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어벤져스’적인 결말. 히어로의 사랑이 지구의 평화를 지켰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침략’이란 것이 제시됐을 때부터 예정된 결말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또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 지구가 안전해졌다는 것만큼 더 감동적인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랑이 지구를 넘어 외계에까지 수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계인 입장에서 지구 침략에 실패했으니 안 좋은 결과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사랑을 배운 그들은 이제 침략이 필요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행성을 빼앗는 것보다 오히려 값진 성과를 얻은 거라고 확신합니다.


마지막 조언 하나를 드리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가끔 화가 치밀어 올라 다른 사람의 기분 상태를 침략하려는 마음이 들 땐 이 영화를 떠올리세요. 아, 내 안의 사랑이 부족한 상태이구나. 다른 것들로부터 사랑을 조금 빌려 와야 하는 상태이구나. 그럴땐 산책길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강아지들, 그리고 자연에 담겨 있는 사랑을 잠시 빼앗는 목적으로 산책의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산책은 좋은 것이니까요.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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