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가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방식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에디터 식스틴입니다.


최근 여러 대중매체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작품 전면에 드러내거나 작품 일부에 녹이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종종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이 포착되기도 합니다. 대중매체가 동시대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이고 교조적인 유토피아만을 전시할 수는 없지만 대중매체가 한 사회와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섬세한 연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적 요소이죠. 이번 레터에서는 드라마 ⟪슈룹⟫에 등장하는 성소수자 에피소드를 다루며, 과거 대중매체가 성소수자를 전시했던 방식을 짚어봅니다. 드라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오늘의 에디터 : 식스틴
감기 조심하세요!
오늘의 이야기
1. 드라마 ⟪슈룹⟫ 줄거리 (스포)
2. 성소수자 가족 구성원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슈룹⟫
3. 과거 대중매체에서 다뤄진 트랜스젠더 (1960년대)

💥 드라마 ⟪슈룹⟫ 줄거리 (스포)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호평 속에 막을 내리고 그 자리에 김혜수 주연의 드라마 ⟪슈룹⟫이 들어섰습니다. 드라마 ⟪슈룹⟫은 조선시대 궁중을 배경으로 중전과 여러 후궁이 자식의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극 중 김혜수는 중전으로 세자를 포함한 다섯 명의 자식을 둔 어머니로 등장합니다. 


드라마 ⟪슈룹⟫은 중전에 다음 국왕이 될 세자를 아들로 두고 있어 아무 걱정이 없을 것만 같던 김혜수가 맡은 화령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성품과 능력이 좋은 세자의 병세가 악화되고 급기야 세자가 쓰러지게 돼요. 궁궐에서는 남은 왕자 중 한 명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구상이 후궁 사이에 퍼지게 됩니다. 이것은 ‘택현’이라고 하는데 왕자 중 가장 현명한 이를 세자로 추대하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이 택현의 수혜를 받았죠. 그렇기에 중전의 아들이 아닌 후궁 소생의 다른 왕자가 세자로 추대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며 후궁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교육열을 높이고 궁궐 암투에 참전합니다. 

출처 : Unsplash

중전 화령의 나머지 네 아들은 다른 왕자들에 비해 교육에 관심이 덜할뿐더러 화령은 명문가 집안 출신도 아닙니다. 사실 중전의 자리에는 간택 후궁 중 한 명인 황귀인이 내정되어 있었죠. 극 중 황귀인은 궁궐의 실세, 영의정 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척을 견제한 선왕의 의지에 따라 화령이 중전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황귀인의 아들인 의성군이 세자의 위치를 견제하는 역할로 등장하고, 전대의 중전 윤 황후가 현재의 화령과 마찬가지로 병으로 세자를 잃고 택현으로 후궁의 자식에게 세자 자리를 넘겨주며 폐비로 전락한 걸 알게 됩니다. 나머지 자식들도 죽임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세자의 자리도 중전의 자리도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 중전은 네 아들의 교육열에 박차를 가합니다. (4화까지는 세자가 심각한 병세로 위기에 빠지지만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습니다) ⟪슈룹⟫의 4화까지의 내용입니다. 

출처 : tvN drama

😤 성소수자 가족 구성원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슈룹>

⟪슈룹⟫ 3화에서는 중전 김혜수의 자녀 중 한 명인 계성대군(배우 유선호)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중전에게는 택현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두 명의 자녀가 존재합니다. 바로 계성대군과 성남대군(배우 문상민)입니다. 하지만 계성대군에게는 택현에 오를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숨겨진 전각에서 아무도 모르게 여장하고 있던 계성대군의 모습을 중전이 보게 된 것입니다. 중전은 자리를 피해 궁궐의 외진 곳을 찾아 울음을 쏟게 되죠.


이후 계성대군이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중전을 찾아가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하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계성대군의 성 정체성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려 드라마 한 회를 성 정체성에 대해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지만 분명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 존재합니다.

출처 : tvN drama
드라마는 자식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부모 그리고 그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옳은'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쏟는 것처럼 보입니다. 극 중 계성대군의 성정체성이 중전과 그녀의 자식들을 위협할 반대세력에게 들킬 위험에 처하자 중전은 계성대군의 ‘안식처'인 전각을 불태우기에 이릅니다. 그녀의 선택은 자식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당사자에게 사라진 ‘안식처'는 존재의 부정으로 읽히고 계성대군은 어머니를 찾아가 울분을 토해냅니다. “창피하셨습니까?”라는 묻는 자식의 질문에 어머니는 자식을 데리고 궁을 빠져나와 한 화백 앞에 계성대군을 앉힙니다.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화백 앞에 앉은 계성대군.
출처 : tvN drama
어머니는 지금까지 자식이 느꼈을 존재함의 부정, 스스로 삼켜야 하는 비밀의 고통을 헤아리고 화백을 고용해 계성대군의 본래의 모습을 기록하게 하여 선물합니다. “(여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지는 않으셨습니까?”라는 자식의 질문에 “화가 나지 않았다"라고 답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성 정체성을 알게 된 부모가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위로처럼 읽힙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결국 이러한 대사로 마무리됩니다. “누구나 마음속엔 다른 걸 품기도 한다. 하지만 다 내보이며 살 수는 없어". 그러면서 답답할 때는 그림을 펼쳐 보라는 조언을 건냅니다. ⟪슈룹⟫이 건내고자 하는 위로가 결국 숨기며 살라는 조언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숨길 수 없습니다.
출처 : tvN drama

🎥 과거 대중매체에서 다뤄진 트랜스젠더 (1960년대)

물론, ⟪슈룹⟫이 성소수자 가족 구성원 이슈를 한 회차 전체에 걸쳐 다루었다는 점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과거 대중매체가 전시해왔던 방식과는 분명 차이가 있죠. 부모가 성소수자인 자녀와 절연한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벗어나 어머니가 자녀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화령의 모성애는 빛나는 장면이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기에 “다 보이며 살 수 없"다는 화령의 대사가 짐짓 이해할 법 싶으면서 한 회차 마무리는 결국 아직 바뀌지 않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대중매체는 트랜스젠더, 여장남자를 어떻게 소비했을까요? 지금의 ⟪슈룹⟫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죠. ⟪내 것이 더 좋아⟫(1979, 이형표)는 1960년대 유행했던 남장여자 코미디 장르의 영화 중 하나입니다. ⟪여자가 더 좋아⟫(1965, 심우섭)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역할의 배우 서영춘의 이 작품으로 코미디 스타가 되기까지 합니다. 이 성공으로 배우 서영춘은 ⟪내 것이 더 좋아⟫를 찍게 됩니다. ⟪내 것이 더 좋아⟫는 서울로 상경한 청년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가정의 아내 역할을 비밀리에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듯 1960년대 대중매체에서는 트랜스젠더, 남장여자를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하였죠. 

출처 : 영화 <여자가 더 좋아> 포스터

2014년에는 차승원 주연의 영화 ⟪하이힐⟫이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내 안의 그녀가 죽었다"라는 포스터 홍보문구. 초점을 잃고 무릎을 꿇고있는 차승원의 모습에서 연상할 수 있듯 느와르 장르의 액션물입니다. 미스테리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 형사 차승원이 트랜스젠더라는 설정이죠. 이 외에도 구교환 주연의 ⟪꿈의 제인⟫은 트랜스젠더 역의 구교환과 탈 가정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꿈의 제인⟫은 호평을 받은 독립영화 중 하나죠. 

출처 : 영화 <하이힐> 포스터
글로벌한 추세를 놓고 보더라도 앞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콘텐츠 소비가 개별화되고 팬덤이 분화되며 성소수자 콘텐츠를 바라는 시청자의 폭도 늘어났죠. 더군다나 유튜브를 통해 성소수자 BJ들을 쉽게 만나고 글로벌 콘텐츠를 익숙하게 소비하는 Z세대, 알파 세대. 쌍방향 소통이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제작자들이 더욱 면밀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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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너에게 가는 길

에디터 <식스틴>의 코멘트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이자 성소수자 자녀를 둔 어머니.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과 한국경쟁 심사위원특별언급상을 수상하였죠. ⟪슈룹⟫에서 다룬 트랜스젠더 자녀와 부모의 관계 그리고 지금의 한국 사회를 정면으로 관통하는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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