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4
이재용 사면, 문 대통령이 결단해야
오늘은 좀 조심스러운 주제를 갖고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 문제입니다. 손경식 경총 회장 같은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사석에서 만난 여야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사면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비록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벌을 받은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트럼프보다 더하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이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는 와중이기도 합니다. 급기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나섰습니다. 그는 12일 열린 하노버메세에 참석,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해 시스템반도체에 총 36억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시스템반도체 기술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한국 반도체산업을 이끄는 이 부회장을 풀어주라는 얘기만은 아닙니다. ‘법 앞의 평등’은 헌법의 중요한 가치이고, 충분한 공감대 없는 사면은 자칫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사회갈등적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동안 대통령 결단으로 이뤄져온 ‘기업인 사면’의 원칙에 이 부회장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입니다. 국가원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행사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사면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과거 국가발전이나 경제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느냐를 참작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해 남은 형벌을 면제해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공감대가 있거나 비록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부담을 끌어안는 정치적 결단으로 가능합니다.

두 번째 기준은 형벌을 받고 있는 사람의 재능과 역할이 국가와 사회에 얼마나 긴요하냐입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이건희 삼성 회장을 사면해준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이 회장이 글로벌 경영과 스포츠 외교를 통해 친분을 쌓은 해외 IOC 위원들을 상대로 득표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올림픽 유치는 상당히 어려웠을 겁니다.

이 기준을 이 부회장에게 적용하면 기업가로서 갖고 있는 능력과 자질을 살펴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수출과 고용을 통해 국민경제에 기여하고 이미 국가안보의 단계로 격상한 반도체 같은 국가기간산업을 유지•발전시켜 나가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느냐를 검토하는 것이죠. 두말할 것도 없이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입니다. 삼성은 한국 산업의 전후방을 책임지는 대들보이고 이 부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 기간 중에 기업인으로서 특별한 경영실패를 하거나 전략적 실수를 범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는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메모리반도체 산업 장악력을 더 키웠고 파운드리 사업도 성장궤도에 올렸습니다. 스마트폰 사업도 막강 애플에 유일하게 맞설 수 있도록 체질을 강화했습니다. 우리 경제의 성장과 발전은 삼성 같은 기업과 이재용 같은 기업인들의 분투 속에서 지속 가능합니다.

현대 경영은 진격을 멈추는 순간 바로 응징을 당합니다. 삼성 같은 기업이 국제경쟁에서 뒤처진다면 해당 산업 경쟁력도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 궤멸이 핀란드 전자산업 생태계를 일거에 무너뜨린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요즘 삼성이 현대자동차나 SK LG와 달리 미래지향적인 경영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 부회장의 부재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 부회장을 형기가 끝나는 내년 8월까지 감옥에 가둬야 할 실익은 아주 작습니다. 반성과 성찰의 뜻을 수차례 밝혔고 경영구조와 노사정책도 개방형으로 전환했습니다. 사면을 하지 않음으로써 지킬 수 있는 법익이 없지 않겠지만, 본연의 기업활동에 전념토록 함으로써 국가경제 전체가 거둬들일 이익이 훨씬 크다고 봅니다. 게다가 흉악범도 아닙니다.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있거나 억울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습니다.

또 다른 고려요인이 있다면 이 부회장이 과연 최서원 씨에게 말을 사주라고 지시 내지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상식적으로 큰 기업 오너는 이런 리스크를 지지 않습니다. 외부 사안에 대한 처리 방향을 보고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그거 문제 없겠느냐”입니다. 형사처벌을 받을 확률이 단 1%에 불과하더라도 절대 그 길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오너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들도 다 그렇게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 반도체 전기자동차 등 주요 전략산업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대기업 CEO들을 청와대로 초청한다고 합니다. 반도체 패권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첨단 기술에 대한 지원과 함께 우리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을 기대합니다. A1, 5면에 반도체산업에 총력을 경주하는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과 청와대 관련기사를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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