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시는 『남자들의 방』이 궁금해요. 어떤 책인가요?
즐거움이 어떻게 성별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지, 특정한 성별(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특정한 성별(여성)의 수고와 위험, 노동이 어떻게 당연하게 여겨지는지에 대한 질문을 나누고 싶어 만들어진 책이에요.
2. 『남자들의 방』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부설 성매매피해상담소 이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성매매와 연관된 사람들, 사건들을 만나면서 ‘유흥업소’에 자연스레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일하기 전에는 몰랐던, 우리 주변에 당연하게 산재한 룸살롱, 노래방, 단란주점에서 성매매가 알선되더라고요. 술 파는 유흥업소를 성매매 피해 상담을 하면서 제일 자주 마주쳤는데 또 이 유흥업소 대부분은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합법 업소라는 거예요. 업주들은 “나는 성매매와 상관없다, 그냥 술 팔고 아가씨 접대만 하게 한 거다” 이 말 한마디로 손쉽게 책임을 회피해요. 그러나, 제가 여성들에게 듣다 보면 성매매 알선을 하든 안 하든 이 업주들이 당당하게 말하는 “아가씨 접대” 자체가 무척 폭력적이고 차별이 난무하는 과정인 거죠. ‘성매매만 안 하면 괜찮은 걸까?’ ‘대체 합법과 불법 뭘까?’ ‘접대는 왜 이렇게 당연하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논문을 쓰고 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3. 책의 1장을 보면서 버닝썬 게이트를 다시 한번 마주하던 와중, 빅뱅 멤버 출신 승리의 최근 기사를 보았어요. 2심서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라는 말과 함께 1년 6개월로 감형된 사실을 보며 분노가 차올랐는데요. 클럽 역시 ‘여성혐오’의 장이며 ‘남자들의 방’인 유흥산업에 속해있지만 대놓고 여성의 상품화를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요. 여성착취의 관점에서 클럽과 유흥업소의 공통점과 차이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어떤 클럽이 남성 손님을 돈줄로 보고 여성 손님을 '수질 관리'를 위한 상품으로 간주하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면 그 클럽은 유흥업소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상품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모든 클럽이 그러리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버닝썬이 무리 없이 소비자 대중에게 받아들여졌던 배경에는 이미 그 시스템을 다른 클럽에서 맛봤고, 익숙해졌던 부분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클럽뿐 아니라 클럽을 둘러싼 한국 사회가 여성을 상품화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외모로 평가하는 등의 차별에 너그럽기 때문에 더욱 무탈하게 받아들여졌겠지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른 문화권의 소비자들이 이런 클럽의 운영법을 차별과 인권침해로 해석하는 반면, 한국의 소비자들은 그 차별을 수용하고 차별적 기준에 맞춰 클럽을 소비하는 모습을 보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차별을 문제로 제기하기 보다는 소비할 수 있으면 장땡인 감각은 클럽, 유흥업소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차이점도 이것저것 있을 텐데요. 여성 상품화의 관점에서만 짚자면, 클럽에서의 상품화 과정은 그래도 그나마 상호 조율이나 동의의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다면, 유흥업소에서의 상품화 과정은 여성의 거절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이겠어요. “이 일을 하겠다고 동의했어? 그렇다면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과 폭력도 감수하겠다는 거지?” 식의 행동은 여성을 고용하지 않은 클럽에서는 웬만해서는 보기 어렵지요. 안타깝게도 유흥업소에서는 빈번합니다만, 버닝썬은 클럽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무마했기 때문에 대중적 분노를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해요.
4. 클럽뿐 아니라 사회를 경악하게 만든 N번방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책에서도 짚어주시고요. 저 역시 가히 상상도 안 되는 26만 명이라는 유료 회원과 관전자의 숫자에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요. 책의 제목이 ‘남자’의 방이 아닌 ‘남자들’의 방인 것처럼 ‘집단성’에 주목하고 계신 것 같아요. 성 구매 남성의 집단성은 어떠한 연유로 일어나는 것일까요?
제가 책에 인용하기도 했지만, 허윤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되는 과정에는 무수하지만 받아들여질 만큼은 소소한 집단적인 '못된 짓'이 개입하죠. 같이 노상방뇨를 하거나, 같이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같이 욕하거나, 같이 담배를 피우거나, 같이 '야동'을 보거나. 그 연장선상에 성 구매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냥 같이 즐거울 수 있는 '못된 놀이', 유희인 거예요. 제가 뭐라 형언하기가 어려워서 ‘못된 놀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남성이 집단적으로 향유하는 놀이의 특징 중에는 힘 부리기, 위세 떨기, 되게 강한 사람인 척하기 같은 성격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너를(99% 이상 나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자) 괴롭혀도 괜찮잖아~” 이런 식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단톡방에서 동의받지 않은 사진이나 영상물 올리고 집단적으로 희롱하고 욕하는 게 그냥 같이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인 것처럼 여겨 하듯이 성 구매도 놀이 정도로 여겨져 온 게 현실이지요.
저는 잘 모르지만, 휘청거리는 식민지 남성성 속에서 한국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남성연대를 구축하는 과정이 중요했을 수도 있겠고요. 한편으로는 그냥 집단적으로 놀고는 싶은데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을 때 가까워서 쉽게 갈 수 있고, 우리들끼리 힘 겨룰 필요 없이 타자인 여자를 통해 강한 척 위세 떨 수 있고, 다들 그러고 노는 것 같은 성 구매를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요?
5. 1장 속 글의 소제목 중에는 <‘1차’의 성정치>가 있어요. ‘1차’란 ‘2차’로 가기 위한 필수 관문 같은데요.
‘1차’ 즉,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연기하는 ‘접대’의 과정은 책 3장의 ‘아가씨되기’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여성 종사자들이 수행하는 것들이 그간 ‘쉽고 본인도 즐기며 돈 버는 일’이라는 한정된 수사로 정의됐던 것을 ‘아가씨노동’이라고 명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명명의 이유에 관해 책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레터 구독자분들께도 이 부분을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유흥업소에서 여성들이 수행하는 일의 핵심이 ‘아가씨’라는 위치성이라고 봤어요.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경험하는 위험, 폭력, 차별이 그저 ‘일’로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험, 폭력, 차별받아도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잖아요. 보통은 이런 상황을 문제 삼을 때 사회적 낙인을 중요한 이유로 언급하곤 하는데요. 저는 낙인에 더해, 이 일의 속성 자체가 위험, 폭력, 차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 같아요.
아무렇게나 대하고 폭력과 차별을 내 멋대로 자행할 수 있는 그 힘을 소비하려고 유흥업소에 오는구나. 그래도 되는 사람, 차별과 폭력이 가해져도 나에게 끝까지 종속적이고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과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유흥업소에 오는데, 왜 그 사람이 ‘여자’여야 할까? 왜 그냥 약한 사람이 아니라 ‘여자’여야 하지?
성 구매자를 비롯한 성범죄자에 대한 대표적인 사회적 편견이 ‘외롭고, 힘없고, 남자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잖아요? 유흥업소 손님 중 몇몇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기도 한단 말이죠. 집에 가면 마누라도 내 말을 안 들어주고, 상사한테 오늘 찍혀서 너무 힘들었고, 그런 말을 너희는 들어주니까 내가 여기에 오고···. 그래, 다 좋다 이거예요. 그런데 왜 그 힘든 이야기를 꼭 ‘젊고 예쁜’ 여자가 ‘일’로써 들어줘야 하냐는 거죠.
기존의 노동 개념으로 이런 특징들을 짚어내기 어렵던 와중에 논문 심사 위원이었던 김주희 선생님이 인터뷰 참여자들이 자신을 ‘아가씨’라고 지칭하는 것 같던데 그 단어를 사용해서 노동의 특수한 성격을 드러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비가시화되어 온 여성들의 노동을 가시화하는 맥락 위에 유흥업소 종사자의 노동을 위치시키되, 그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의 차별적인 속성 자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는 저의 문제의식이 ‘아가씨노동’이라는 명명으로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6. 책 출간까지의 기쁨 혹은 고뇌가 들어가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첫 책이다 보니 모든 과정이 기쁨이자 고뇌였습니다. 가장 큰 기쁨은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분들이 책의 출간을 함께 축하하고 응원해주신 것이었어요. 그분들의 경험을 목격하고 같이 해석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이 책은 사실상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분들이 만든 책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표지에 관한 부분은 처음 디자인을 보고 직관적으로 딱 '룸살롱이다 오오!' 싶었고요. 제 친구는 쓰레기통과 술잔, 물잔의 디테일에 감탄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남자들의 방'의 내용과 대조적으로 너무 아름답게 구현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셨다고도 하더라고요.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문에 적힌 대문자 N과 살짝 열린 문의 모양새였어요. 대문자 N을 경유해 N번방 역시 '남자들의 방'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유흥업소 뿐 아니라 남자들의 방을 탐문하러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디자이너분께 존경을 보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은데, 아직 정리가 잘 안 됩니다. 독자분들과 책을 경유해 만나면서, 좀 더 정리해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7. 마지막으로 이 책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너무나 일상적임에도 불구하고, 공론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지 못했던 성매매와 유흥업소 접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독자분들과 같이 나누고 고민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유흥업소를 비롯한 ‘남자들의 방’의 특수성에 천착한 책이지만,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는데요. 우리 모두의 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의 문제로 읽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