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으로 돌아온 이방인이 경험한 역문화 충격!

에디터의 그림 에세이

첫 번째 방에서
이방인이 되다

두 번째 방 뉴욕에서 첫 번째 방인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고 자란 모국으로 돌아온 나는 마치 작은 방 안에 몸을 구겨 넣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었다.


글 / 그림 김은지


첫 번째 방인 한국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불편한 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방인 뉴욕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 이웃들, 직장과 학교는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14시간의 비행 뒤 공항에 도착하자 조금 울컥했다. 첫 번째 방이 낯설었고, 이곳도 내가 낯설었다. 귀국이라는 말이 당연했지만 어색했다. 7년의 시간 동안 두 번째 방을 나의 집으로 만들어 왔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었다.


중학생 때 타이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친구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다시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갔더니, 역문화 충격(Reverse Culture Shock)을 겪었어. 처음 이민 왔을 때는 타이완이 그렇게 그립더니,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라고 하면서 그 말이 무엇인지 나도 곧 알게 될 것이라 했다.


분명 당연한 것들이 첫 번째 방에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소꿉친구, 가족, 모국어까지. 모든 게 갖춰진 편안한 방 안에만 있으면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편리하고 빠른 시스템을 갖춘 곳이기도 하니 싫을 이유는 거의 없지만, 친구의 예상대로 나 또한 ‘역문화 충격’이란 것을 겪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불효자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자식이 감히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그런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는 느낌이다. “한국 좋지?”라는 질문에 “네, 좋죠.”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좋아하지 않으면 “어딜 감히!” 하며 나를 고향에서마저 내쫓을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오니까 뭐가 가장 달라요?”라는 말에 나는 “모든 게 다 작아졌어요.”라고 답했다. 천정 높이도, 옷들도, 신발도, 사람들도, 모두 다 작아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작은 방 안에 나를 접어 넣고선 애써 웃으며 파티의 분위기에 맞추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에 있든 나이고, 주변 환경이 달라졌을 뿐인데.

긍정 회로를 돌리며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들던 공장은 드디어 파업을 선언했다. 좋아하는 척하지 말라고. 구두 가게에 들어가서 250 이상의 사이즈는 없으니 주문 제작 해야 된다는 말을 수없이 듣거나, 하루에도 십 수 번씩 재난 알림 문자가 와서 잘 쉬고 있는 불안감을 언제나 바짝 긴장하게 깨워놓는다거나, 다른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거나, 버스가 급출발해서 우당탕 뒷좌석으로 달려간다거나, 어딜 가든 포교하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그 외에 크고 작은, 당연하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내가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했다. 두 번째 방에 적응해 갈 때 나 자신에게 가장 자주 던졌던 그 질문이 첫 번째 방으로 돌아온 나에게 고스란히 날아왔다.


겉모습을 똑같이 맞추는 것도 힘든데, 속으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걸 읽히지 않는 건 더 쉽지 않았다.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또한 이방인이라고 한다면, 나는 어딘가에 있는 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방에 돌아온 나는 마치 뉴욕에 막 도착했던 7년 전처럼 말수가 적어졌다. 마치 낯선 나라에 와서 이제 적응을 시작하는 이방인처럼 성격이 바뀌었다. 해외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그 나라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지만, 고향은 비판하는 의견에는 조금씩 죄책감이 따라온다. 오랜 정체성의 고민 끝에 여러 겹의 껍질을 깨고 나와, 나 다운 나를 끌어내고 낯선 곳에 적응을 했는데, 다시 또 다른 낯선 곳에 떨어진 이방인이 되었음을 나는 애써 부인하고 있었다.


두 번째 방과의 연결감을 유지하려고 해도 물리적 거리와 12시간 시차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마침 연말에 뉴욕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났다. 두 번째 방에 다시 갈 수 있었던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내심 어떤 낯섦과 어색함을 느끼길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 방에서의 나는 편안한 안정감을 느꼈다. 결론적으로 나는 바뀌었고, 고향은 어색하고, 먼 곳에 존재하는 ‘나의 집’이 그립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은 무척 살아가기 편리한 곳이지만, 은근한 긴장감을 느낀다. '외국과 비교해도 한국이 최고다!'라는 의견에 동조하긴 어렵다. 미국에서 태어난 나의 친구들은 한 번의 방문 뒤에 한국에서 살길 원해 학교를 등록했고,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다시 뉴욕에서 돌아가 일하며 살길 원한다. 두 번째 방에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절대적으로 어느 한쪽이 나아서가 아닌, 그곳에서의 삶이 편리하지 않더라도,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이더라도, 꺾기 힘든 독특한 귀소 본능 같은 것이었다.


세상은 넓고, 어떤 곳에서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집을 발견하게 될지, 아니면 황무지 땅에 뿌리를 내려, 작은 벽돌부터 쌓아 올릴지는 모르는 일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따른 결과를 온전히 안고 가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글쓴이 소개  김은지 에디터

뉴욕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여러 경험을 쌓으며 나의 일이 무엇인지 찾고 있습니다. 동네 구석구석과 도시를 여행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21년 겨울부터 투룸매거진 에디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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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취향
투룸매거진 에디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함께하고 있는
김은지 에디터의 최신 투룸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인터뷰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일>
세계 보건 기구(WHO) 직장인 김주원

누구든 이주민이 될 수 있는 시대. 세계 이곳저곳에는 전쟁, 빈곤, 전염병의 파도 아래 목소리가 묻혀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리게 하는 일, 상상만 하던 사회 정의가 세상에 실천되는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지요. 제네바의 세계 보건 기구 WHO에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 주원과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