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b 6.0 프로젝트 X 조예은
『핑거팁 메모리』, 2022

2. 기계팔

[ON AIR]


질문 1.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영상 속에서는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사뭇 다른 모습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 잘 지냈습니다. 


- 아, 네……. 그럼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보겠습니다. 충격적인 라이브방송 이후로 행방이 묘연하셨어요.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셨나요? 

***

절단기는 실수하지 않는다. 오른팔이 잘린 소라는 비로소 평안을 되찾았다. 판석 공장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로 피를 흘렸지만 기적처럼 죽지 않았으며, 66시간의 수술을 거쳐 살아남았다. 의식을 되찾은 소라가 눈뜬 곳은 자신의 방 침대 위도, 대학병원의 회복실도 아닌 폐쇄 정신 병동 101호였다. 그곳에서 소라는 하루 종일 잠을 자도 나쁜 꿈을 꾸지 않았으며 환각을 보지도, 환청을 듣지도 않았고 밥도 잘 먹었다. (물론, 잘린 쪽이 오른팔이었으므로, 한동안은 간호사가 밥을 떠먹여 주어야 했다. 간호사는 기이할 만큼 친절했다. 소라가 아무리 반찬 투정을 부리고 진통제를 달라고 징징거려도 미간 한번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 아홉 평짜리 독실, 쇠창살과 모기장이 달린 창, 1인용 침대와 간이 책상이 소라에게 부여된 새로운 세상의 전부였다. 더 이상 아무도 끔찍한 기억을 주렁주렁 매단 채 소라를 찾아오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소라는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병원은 치료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 버려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것을. 


그야말로 천국처럼 다정한 고요였다. 


그곳에서 소라는 행복했다. 바깥세상에서 아무렇게나 떠드는 말들도 그곳엔 닿지 않았다. 입원한 지 일 년이 지나 스무 살 생일을 넘겼을 땐 병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일 년 만에 밖으로 나온 소라는 온몸으로 햇살을 맞으며, 두 발로 꼿꼿이 섰다.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절단한 오른팔은 완전히 아물었다. 절단 사고를 당한 환자에게 나타난다는 환상통조차 없었다. 소라는 '나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능력의 발현으로 인한 끔찍한 기억들은 모두 그저 병에 불과했다고. 지금 자신은 완치되었다고. 

광활한 초원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병원은 꼭 그림 같았으며, 소라는 자신 역시 그림의 일부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복잡하게 거짓말을 하는 인간들의 세계가 아니라, 보이는 게 전부인 평면의 세계. 평화롭고 안온한 하루하루였다. 그 안에서 소라는 친구들도 사귀었다. 목소리를 잃어버려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된 인어공주, 자신이 AI라고 믿는 남자, 눈이 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애꾸눈 해적이었다.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었지만, 말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원장이 목소리를 주었다고 했다. 

자신이 AI라고 믿는 남자는 의족을 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AI로 만든 게 원장이라고 믿었다.

애꾸눈 해적은 왼쪽 눈이 없었지만 볼 수 있었다. 

그의 눈구멍에는 기계 눈이 자리했다. 생일날 원장이 선물해 준 것이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병원의 대부분이 기계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기계 심장, 기계 폐, 기계 턱과 기계 어깨를. 그들은 원장을 천사라고 불렀다. 하얀 천사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주었다고. 혼자 남은 나에게 차가운 팔과 다리와 눈과 목소리를, 심장과 온기를 돌려주었다고. 소라는 아직 원장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병원의 꼭대기 층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원장에 대해 묻는 소라를 향해 애꾸눈이 말했다. 


"기다리렴. 너에게도 곧 새 팔이 생길 거란다."

질문 2. 잠깐만요, 그렇다면 그 정신병원에서 싸이코 원장이 불법 신체 개조 수술을 진행했다는 말인가요? 보호자의 동의 없이?


- 동의할 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를 포함해서요. 목소리를 잃은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고 다리를 잃은 사람에게 다리를 주는 게 뭐가 나쁘죠? 


- 이해가 되질 않네요. 질문을 바꾸죠. 당신은 오른팔을 스스로 잘랐어요. 다시 새 팔을 붙인 이유가 뭔가요?


- 저는, 제 능력이 손끝에서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손목을 잘랐죠. 저주에 감염된 부위는 이미 잘려 나갔으니, 안심했습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다 나았다고 생각했어요. 극단적인 방법이었지만 그로 인해 저는 완치되었다고요. 착각하고 방심했던 거죠. 기계 신체를 단 병원의 모두는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뤘어요. 누군가 만들어 붙인 게 아니라 근육이 죽은 곳에 새살 대신 전선이 자라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웠죠. 저는 그 자연스러움에 홀렸고, 언제부턴가 손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한 손으로는 친구들과 카드 게임을 하기가 힘드니까요. 


- 카드 게임이 소라 씨 결심의 시작이었군요. 


- 아뇨. 그건 아닙니다. 제가 이런 선택을 하고자 한건 좀 더 후의 일이에요.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병원은 사라졌죠. 사람들은 제게 말해요. 그런 병원은 애초에 없었으며 네 고장 난 머리가 만들어낸 가짜라고. 우습지 않나요? 내가 읽어주는 기억은 철석같이 믿고 화내던 이들이 제 기억을 의심한다는 게?


- 전 소라 씨를 믿어요. 그럼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시겠어요?

소라가 원장을 만난 건 그해에 가장 많은 눈이 내린 날이었다. 누군가 자정이 넘은 시간, 산타클로스처럼 소라의 방문을 두드렸다. 하얀 수염 대신 긴 백발을 늘어뜨린 여자가 서 있었다. 원장은 소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새 팔을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 가장 튼튼하고 편안한 기계팔을. 네 원래 몸보다 더 진짜 같고 자연스러운 신체를 선물해주겠다고. 소라는 자신의 비어있는 오른쪽 소매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들어 깃발을 흔들 듯이 소매를 흔들어보았다. 그날은 그 해 최초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었고, 언덕 위의 병원은 아무리 난방을 해도 추웠으므로 빈 소매가 보다 허전하게 느껴졌다.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제게 새 팔을 주세요."

 

수술은 일주일 후 진행되었다.

그리고 기계팔을 달고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 소라는 생각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

인어공주는 진짜 공주였다. 바다가 아닌 푸른 폭탄의 공주였다. 먼 테러 집단의 기술자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상이, 분명 본래 목적이 있었으나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젠 목적이 아니라 오기만이 남은 모든 작전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비밀 유지를 위해 혀를 잘렸다. 다음날이면 비밀 유지를 위해 손목까지 잘릴 터였다. 폭탄의 공주는 도망쳤다. 가까스로 도망쳐서 이 병원에 닿았다.

애꾸눈 해적은 테러 집단을 쫓는 기관의 정보원이었다. 그는 바다 건너에서 벌어진 테러 때 그 근처에 있었고 파편이 튀어 오른쪽 눈을 잃었다. 눈을 잃은 그는 더 이상 정보원을 할 수 없었고 폐기되었다. 폐기되어 다른 폐기정보원들과 함께 매장당한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폐기물들의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떠돌다 원장을 만났다. 공주와 해적은 새 목소리와 새 눈을 얻었고 친구가 되었다. 친구였다가 연인이 되었다.

테러 집단은 도망친 폭탄의 공주를 쫓았다. 그들은 공주가 고립된 병원에서 정보원 신분이었던 해적과 함께인 걸 확인했다. 공주는 심지어 말을 할 수 있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정보의 유출=배신자=작전의 실패. 테러 집단의 다음 테러작전지는 언덕 위의 평화로운 병원이 되었다.

소라가 새 팔을 붙이는 수술을 하고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열흘이 걸렸다. 열흘 후의 소라를 깨어나게 한 것은 총소리였다. 소라는 먼저 자신의 오른팔에 달린 새로운 팔을 확인했다. 주먹을 쥐고 펼치고 가위를 만들었다가 마구 흔들어보았다. 그것은 꼭 원래 자신의 팔처럼 편안했다. 소라는 새 팔을 달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온통 붉은 풍경을 마주했다.

친절한 간호사의 다리가 발에 채였다.

친절한 의사의 손이 밟혔다.

인어공주는 병원 마당 분수대에 둥둥 떠 있었다. 분수대의 물에서는 피비린내가 났다.

애꾸눈 해적은 그런 인어공주의 손을 잡은 채 심장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자신을 AI라고 믿는 남자는 목에 칼이 꽂힌 채 쿨럭였다.

그는 자신은 AI이니 데이터만 옮기면 금방 복구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곧 다시 만나자며 소라의 새 팔을 축하해 주었다. 소라는 남자의 목에 박힌 칼을 조심스레 빼냈다. (순간, 머리가 아팠다. 소라는 그 칼에 피를 묻힌 사람이 두 자리를 넘는다는 걸 깨달았다.)


칼을 든 소라는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 병원을 뒤졌다. 남아있는 어떤 생명도 발견하지 못하고 마당에 도달했을 때, 그는 현관 출입문 너머로 하얗게 흩날리는 원장의 머리와 그를 겨눈 까만 총구를 보았다. 또다시 머리에 두통이 일었다. 누군가 드릴로 뚫는 것처럼 끔찍한 두통이었다. (총과 칼과 피. 시체가 된 죽지 않는 기계 남자. 기계팔의 이음새 부분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소라의 눈앞에 생전 본 적 없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든 세계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닌 물질의 세계였다. 쇠와 광물과 세포의 세계, 그리고 원자의 세계가.) 소라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쓰러졌다. 원장에게 총구를 겨눴던 남자가 기척을 느꼈고, 쓰러진 소라를 발견했다. 그가 다가와 이번에는 소라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남자가 중얼거렸다. 어린애는 죽이면 찝찝한데. 하지만 대장이 시켰으니 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탕.

총알이 부족했다.


남자가 총알을 장전하는 사이, 소라는 일어섰다. 그리고 기계남자의 목에 박혀있던 칼로 남자의 목을 찔렀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새로 단 기계팔로 아주 깊숙이. 남자의 피가 팔과 얼굴에 튀었고, 소라는 느리게 얼굴을 문질렀다. 눈앞의 남자는 너무 작고 거대한 세계를 엿본 소라에게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큼지막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소라는 남자의 목에서 칼을 뽑아, 쓰러진 그를 몇 번 더 찔렀다. 그가 떨어뜨린 총을 쥐자 공주와 해적의 죽음이 흘러들어왔다. 죽음뿐만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 절망하고 안도하고 다시 절망하고 갈가리 찢어발기고 싶은 모든 감정이. 심장이 멎는 그 순간에 집요하게 남아있던 사랑까지도.

소라는 자신의 새 팔을 바라보았다. 칼을 떨어뜨리고 다시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눈을 감자 어두워지지 않고 또 다른 세계가 보였다. 소라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달라졌다는걸. 완전히 다른 상태로 변화했다는걸. 능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강제로 아물게 한 살과 혈관과 근육과 신경의 끝에 머물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쇠로 된 팔을, 신체의 일부로 소라가 받아들이는 그 순간,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맹수가 이를 드러내듯.

 

오랜 기다림에 복수하듯이 능력은 소라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더 이상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이제 소라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소라는 팔을 자르기 이전과 달리, 무수한 기억과 또 다른 세계의 단상들이 뇌를 파고들어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곧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원장이 선물해준 멋진 기계팔이, 자신을 전혀 다른 존재로 이끌었다. 소라는 스스로를 AI라고 믿었던 남자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곧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핏물을 뒤집어쓴 채, 이전과 전혀 다른 눈을 하고 선 소라의 앞에 원장이 다가왔다. 원장은 손을 뻗어 소라의 얼굴에 튄 남자의 피를 닦아주었다. 부드럽고 차가운 손이었다. 문득 소라는 궁금해졌다. 기계남자도 원장을 천사라고 불렀지. 그렇다면, 그는 신을 믿은 걸까? 기계는 신을 믿을 수 있나? 답은 차차 알게 될 것이었다. 소라는 원장을 향해 말했다.


"이곳에는 이제 우리 둘뿐이에요. 당신이 해 줘야 할 일이 있어요."

***

질문 3. 실제로 몇 년 전, 외진 정신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긴 했어요. 원장은 생사가 모호하고 병원에 머물던 모든 의료진과 환자가 사망했죠. 소라 씨가 좀 전에 해준 이야기는 그 미결 화재 사건의 실마리가 될 것 같은데요. 당시 가장 화제가 되었던 특이점이라면, 화재 진압 후 발견된 시신들이 훼손되어 있었다는 점이에요. 누군가는 다리가, 누군가는 팔이, 누군가는 눈과 귀와 심장이 없었죠. 누군가 일부러 도려내 가기라도 한 것처럼요.


그리고청취자분들은 안보이시겠지만, 지금 제 눈에 소라 씨의 오른쪽 눈동자가 왼쪽과 달리 검푸른 색을 띠는 게 보이네요. 십여 년 전 유행한 불법 개조술에 기반해 제작한 인조 각막의 경우, 검푸른 색을 띤다고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칠 년 전에는 스스로 팔을 자르는 영상으로, 사 년 전에는 화재 사건 실종자이자 용의자로 화제가 되셨어요. 그리고 사 년만에 돌아온 당신은 신체의 60퍼센트 이상을 인공신체, 즉 기계로 바꾼 최초의 인간이 되었습니다. 사라진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지금 당신의 모습은 무엇이죠?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흡, 누군가 입을 틀어막는 듯한.)

 

- 저는 스스로 오른팔을 자르고 기계팔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애꾸눈의 왼쪽 눈을, 인어공주의 성대를, 기계남자의 의족을, 간호사 루의 폐와 의사 준의 신장을 제 몸으로 만들었어요. 무엇이든 가능하게하는 천사가 그렇게 만들어주었답니다. 제 부탁대로요. 저는 이제 그들 모두와 함께 살고 있어요. 그들의 삶과 죽음의 기억이 제 안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타인의 눈물과 웃음이 혈관을 따라 흐르는 기분을 상상할 수 있나요? 저는 이제 혼자가 아닌, 그들 모두랍니다…….

 

(문이 여닫히는 소리.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 끊어, 끊어! 바로 광고 들어가!)


- , 이상, 원래 몸에서 벗어나 기계인간이 되길 선택한 소라 씨의 인터뷰였습니다. 이번 방송이 신체 개조술 합법화 여론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한데요. 이어서 S대 인공장기과 우현 교수님을 만나보겠습니다. 광고 후에 다시 만나요.

 

- 안녕.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조예은 작가의 『핑거팁 메모리』는 코리아나미술관 *c-lab 6.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c-lab 6.0 리서치 딜리버리 3, 4, 5호를 통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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