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감독 주영)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43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2월 8일 오늘의 큐 💡   
Q. 나 이제 몇 살이지?📆
님, 2023년에 바뀌는 것이 하나 있죠. 바로 나이! 살아온 시간은 똑같은데 어째서 나이가 바뀌나 싶지만,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먹는 '코리안 에이지' 대신 만 나이로 나이셈법을 통일하기로 했어요. 그간 'ㅇㅇ세 이하 무료 입장', 'ㅇㅇ세 이상 가능'🔞 등의 안내 문구를 보면 괜히 헷갈리지 않았나요? 이제는 그런 혼란이 좀 줄어들까 싶어요. 대신 내가 몇 살인지 안그래도 헷갈리는데 당분간 더 헷갈릴 예정!😂
그치만 만 18세에 도달하는 순간을 그 누구보다 명확히 인지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던 아동들은 만 18세가 되면 기관에서의 보호가 종료되고, '자립'해야만 했거든요. 다행히 보호 기간을 만 24세까지로 연장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지만, 퇴소 이후 스스로 집을 마련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경제적인 압박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의 수찬 역시 열여덟의 나이지만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시청 간행물에 기사를 쓰는 서른아홉 윤서는 인터뷰를 위해 수찬을 만나게 되는데요👩‍💻 프로-직장인과 어른이 되어야 하는 청소년. 두 사람은 건조하게 만남을 시작하지만 어쩐지 서로에게 조금씩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어른이 되는 것, 사람답게 사는 것.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린 자연스레 나이를 먹고 하루하루 살고 있지만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하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늘 소개해드릴 단편 애니메이션 <그 카페>를 보시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 할 온기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을 거예요.
님, 그럼 오늘도 조금 더 따스하고 든든한 하루가 되길 바랄게요! 인디즈 큐와 독립영화가 그런 나날을 응원하고 있답니다🙏

우리의 나란한 성장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은 수찬(김명찬) 앞에는 인터뷰어 윤서(임선우)가 앉아 있다시청 정기간행물에 수록될 인터뷰 작업을 하고 있는 윤서는 배달원 수찬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고수찬은 골똘히 고민하다 말한다정말 없어요가벼운 질문에도 고민이 길지만 이내 꿈이 정말 없다는 대답을 내놓는 것은 생계 유지를 위해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는 수찬의 상황을 말해 준다.

수찬은 시설에서 자라온 보호 종료 아동이다. 스스로 힘으로 똑바로 서야 한다는 ‘자립’의 정의 앞에서 킥보드를 타고 있는 수찬은 이리저리 휘청인다. 현관을 열고 음식 상태를 확인하는 고객 앞에서는 국물이 터지진 않았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고, 보호 종료 아동에게 지급한다는 자립 수당 신청 과정은 번거롭고, 공과금 납부는 어디에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탈수가 되지 않은 세탁물을 널다가 팬 위에 올려 놓은 귀한 고기를 홀랑 태워 버렸다. 그러니까 꿈 같은 것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꾸는 것이라고, 수찬은 이유 있는 퉁명스러움으로 인터뷰에 임한다.


한편 배달원 일에서 보람을 느낀 적 있는지꿈이 있는지 묻는 윤서는 사실 인터뷰이들의 사정에 관심이 없다칼로 튀어나온 부분을 도려내듯 상대를 대하는 것은 윤서의 무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늘 상대에 대한 몰이해 상태를 유지한다이해하려 하지 않고고마워할 일을 만들지 않으며본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이들에게도 영 시큰둥한 윤서그러나 윤서와 수찬은 인터뷰를 통해 만나기 전고객과 배달원으로 만난 적 있는 사이다윤서는 배달 예정 시간보다 늦은 음식이 식어 있는 것으로 수찬에게 타박을 줬고그날 본인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민망하고 미안하다.

인터뷰 도중수찬은 배달하는 동안 타고 다니는 킥보드를 도둑 맞아 인터뷰를 파토낸다그런 일에는 화를 내고 그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것이 윤서에겐 합당한 대처지만 윤서는 수찬의 킥보드 찾는 일을 돕기로 한다자신의 무기를 잠시 놓고 남이 처해 있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 셈이다. (...) 이 일을 계기로 상황을 고려하는 방법을 배운 듯 보이는 윤서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궁금해하지 않았던 동료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든지오가는 길에 놓인 꽃들이 추위에 얼어 버리기 전에 아파트 로비에 넣어둔다든지.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라는 제목이 지목하는 인물은 수찬이지만 나이와 무관하게, 윤서와 수찬은 함께 자란다. 가벼운 호의조차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윤서는 네게 필요할 것 같다며 핸드크림을 먼저 건네는 사람이 되었고,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는 일에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영화가 보여 주는 성장은 뜨겁거나 극적이진 않다. 그렇지만 쉽게 식지 않는 온기 속에서, 둘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윤서가 일하고 있는 직장, 동네 페인트공 아저씨, 수찬을 돕는 형. 윤서와 수찬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그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영화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이 세상에서 수찬은 성공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까? 자립의 성패를 묻는다면 자신 있게 성공했다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상에 믿을 구석 하나 생겼다는 사실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고, 늘 하던 것처럼 다가올 날들을 맞이한다.

 

인디즈 박이빈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감독 주영|88분|드라마|12세이상관람가


“나한테 별로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까칠한 어른 윤서  
“한 번쯤은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요”

꿈 없는 청년 수찬 


시청 정기간행물의 인터뷰어 ‘윤서’에게 사람의 온기는 한여름의 습하고 불쾌한 더위 같은 것. 그러던 어느 날, 청년 배달원 ‘수찬’과 실랑이를 벌이고 만다. 이후 인터뷰 자리에서 우연찮게 다시 만나게 되는데... 윤서와 수찬, 두 사람의 불편한 만남은 조금씩 서로를 건드린다.

인간의 필수재? 🧃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으신가요?

〈그 카페〉

 

사람이 오똑하게 허리를 펴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삶을 그냥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꼿꼿하게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질문은 행복한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당신과 나와 수찬이 삶을 살아내지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에서 수찬이 음식 배달을 갔다가 손님에게 요구르트 두 병을 얻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달음식을 살피며 잠시만 기다려보라는 손님의 말에 수찬의 얼굴에 긴장이 스친다. 하지만 손님이 이내 건넨 것은 요구르트다. 빨대까지 꽂아 두 병을 건넨다. 돌아선 수찬의 표정이 미묘하다. 긴장이 풀려 안도한 건가, 울음을 참나, 그저 무표정인가 싶지만, 마침내 관객은 알게 된다. 수찬은 배달일을 하며 처음으로 웃는다.

이 장면은 앞서 윤서와 인터뷰할 때, 그가 배달일을 하며 보람이 있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피곤에 쫓기던 표정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보람을 느낀 수찬의 표정을 본 관객은 더할 수 없을 만큼 벅차다. 킥보드를 타고 돌아가는 길, 보호종료아동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달리는 수찬의 몸은 어느 때보다 꼿꼿하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요구르트 한 병만큼의 자부심이다. 어른이 되는 나이에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한 모금의 자부심이 필요하다.

이 영화에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돈도 필요하고, 집도, 킥보드도 필요하다. 샌드위치와 그것을 함께 먹어줄 사람도 필요하다. 물론 이것들은 중요하다.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다만 이것들은 너무나 필수적이고, 누구나 이야기하는 것들이기에, 나는 요구르트를 가져왔다. 분명히 필수적이지만 쉽게 건너뛰는 한모금의 요구르트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영화 <그 카페>도 바로 이런 점에서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와 비슷하다. 인간 하나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수도 없다. 심지어 이 세계관에서는 발을 붙이고 서 있을 땅도 직접 구해내야 한다. 환경이 오염되어 발 디딜 흙을 돈 주고 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이 찾는 것은 한 잔의 커피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따뜻한 카페와 그 곳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주인공은 삶을 살아간다. 결국,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불필요한 것들이다.

필수적이지 않아서 필수적인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당장 먹을 밥이 우선인데, 몸 뉘일 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타박 속에서 말이다. 당신의 요구르트와, 당신의 커피 한잔은 무엇인가? 이토록 버거운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것 말이다. 기어이 다가올 내일을 받아들이게 하는 바로 그 것 말이다. 당신이 하루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세상에 많기를 바란다. 카페처럼 잦아서 한 블록마다 마주치기 바란다. 부디 요구르트 한 병처럼 어디서나 얻을 수 있기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내일도 많이 힘들이지 않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인디즈 안민정

〈그 카페〉 감독 김아영|9분|애니메이션

오염된 지구에서 인간이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은 쓰레기더미 안에서 자원을 찾는 것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농사를 사명으로 지켜온 한 가족이 있다. 20살이 된 장녀 ‘가’는 오염되지 않은 흙과 물을 사기 위해 여름의 쓰레기 공장에 취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장녀의 꿈은 공장 사람들과 같이, 땀 흘려 번 돈으로 겨울에서 차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바뀐다. ‘가’는 쉬지 않고 10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런데, 함께 꿈을 키우던 존경하는 선배가 급사한다. 충격에 휩싸인 ‘가’는 홀로 카페를 찾는다.

보호종료아동을 아시나요?  
님께서 지난 여름부터 인디즈 큐를 받아보셨다면, 요런 제목의 레터 기억하시나요? 지난 8월,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를 소개한 레터의 제목이었어요.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처럼 보호종료아동이 주인공인 이 작품! 혹시 놓치셨다면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

〈아이를 위한 아이〉 감독 이승환|96분|드라마|12세이상관람가


“보호 종료 한 달 전,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났다”
이제 곧 성인이 되어 보육원 퇴소를 앞둔 도윤 앞에 15년 만에 아버지 승원이 찾아온다. 
얼떨결에 아버지 집에 들어가 동생을 만나고 한 가족이 된 도윤은 모든 게 어색하지만 티격태격 하면서도 점차 적응해 간다.
하지만 갑자기 아버지 승원이 죽게 되면서 호주로 떠날 계획을 미루고 동생 재민의 보호자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사망보험금을 찾는 과정에서 아버지 승원이 숨겼던 진실을 발견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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