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고학> (감독 이완민)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56 〈사랑의 고고학〉
5월 3일 오늘의 큐 💡   
Q. 나의 주전공은? 😘
님의 전공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 문예창작학과를 돌려돌려 돌림판처럼 학교마다 돌려가며 대학 수시 원서를 썼었는데요. 📚🖊️ 그때는 책과 문학에 푹 빠져 있던 시절이라 먼 훗날의 저는 당연히..! 어쩌면 자연스럽게..? 출판 편집 계열에서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 종이책 편집보다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편집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그리지 못한 채로 말이죠! 

앞날을 알지 못하는 건 연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모든 지원서에는 합격/불합격이, 모든 사랑 고백에는 '연인' 또는 찰나로 스쳐 지나갈 '인연'의 결과가 따라오기 마련이죠. 그래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제 사랑 지원서에 합격률이 좋았냐, 여쭤보신다면 .. 수요일 오전에 드릴 말씀은 아니라고만 답할 수 있는데요. 👀💦

오늘 소개해 드릴 독립영화 〈사랑의 고고학〉은 다가올 미래는 알지 못한 채 8시간(!)의 썸을 진득하게 타버린 '영실'과 '인식' 커플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랑에 빠지면서 상대방과 오래도록 행복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8년을 사귀면서 지독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마는 '영실'은 자신의 과거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까요? 사랑에 빠지는 기간은 짦았지만, 구덩이 깊게 파인 마음에서 헤어 나오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바로 고고학의 연구 대상이 될 만큼 오랜 시간이 말이죠! 

〈사랑의 고고학〉에 대해 인디즈가 기록한 아래의 글들은 님이 돌아볼 '사랑의 역사'의 문을 여는데 도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럼.. 구덩이를 너무 깊게는 파지 않으시길 바라며, 오늘 밤은 이불킥 금지!❌

느리게 걷는 사람

〈사랑의 고고학〉

 

층층이 쌓인 유물처럼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 속에 견고하고도 단단한 발걸음이 있다. 〈사랑의 고고학〉은 그 시간의 지층을 찬찬히 밟는다. 마흔이 다 되도록 신체 일부를 돌보지 않았다는 영실은 자신의 맨발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그리고 발에 꼭 맞는 새 운동화를 신고 해변을 따라 달려보지만, 그리 오래 달리지 못한다. 숨이 가쁘면 멈춰 선다. 그리고 다시 달리지 않는다. 그는 늘 느린 템포로 걸어왔던 사람인 것 같다. 영화는 그 호흡에 맞춰 긴 시간 동안 영실의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기로 한다. 


(중략)


영실은 장장 팔 년이라는 시간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영실이 ‘답답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고지식하거나, 마음이 취약하거나,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자꾸만 시공간을 늘리는 이 영화 안에서 ‘보통’의 속도로 걷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느린 템포의 삶을 영위해 오던 사람에게 얼른 발맞춰 걸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숨이 차고, 그렇기에 버거운 일이다. 특히나 마흔에 들어선 한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시선이 난무한 그의 주변에선 더욱 당연하지 않을 리 없다. 무던히 흘러 쌓이던 영실의 시간 속에 들어온 단단한 압력은 무게중심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시간의 지층은 층층이 쌓일 수 없다. 그 전에 영실은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연스레 자신이 걸어왔던 속도를 쉽게 간과한다. 그가 지나쳐 온 풍경에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잠깐 놓친 자리에 어떤 풍경이 있었을까.


(후략)


인디즈 조영은

〈사랑의 고고학〉

감독 이완민│163|드라마|15세이상관람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만난 지 8시간 만에 사랑에 빠진 영실과 인식. 
인식은 그런 영실을 자유로운 영혼이라 확신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실에 대한 인식의 집착은 심해지고, 
영실은 뒤틀린 관계 속에서도 인식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하지만 영실의 노력에도 헤어진 두 사람.
8년 동안의 불온했던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실은 자신의 사랑에 대해 정면으로 응시할 준비를 시작한다.

나는 당신을 ( )한다

〈사랑의 고고학〉과 〈ㅅㄹ, ㅅㅇ, ㅅㄹ


다른 사람에 의한 상처가 급성이라면, 스스로 입히는 상처는 만성이라 했던가. 영실(옥자연)은 타인의 칼을 맨손으로 쥐는 사람이다. 잦은 상처가 이상할 것도 없다. 낫기 전에 생기는 상처들은 흉터로 남고, 긁히는 땅처럼 영실의 역사는 갖가지 층위로 남아있다. 그가 만성적으로 낸 흉터들은 곧 그의 역사인 셈이다. 흙바닥을 긁어내듯이 영화는 영실의 과거를 찬찬히 걷어낸다.

샹탈 애커만은 영화가 개인적일수록 관객의 무의식과 욕망을 파고들어 외려 보편성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두 영화는 바로 이 말처럼, 매우 개인적이기에 존재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소음의 기원을 과거서부터 찬찬히 돌이켜본다는 점에서 지금 소개하는 〈ㅅㄹ, ㅅㅇ, ㅅㄹ〉은 일종의 소음의 고고학이다.

아직 파내지 못한 유물이 여전히 거기에 존재하듯이, 묻혀 있지만 과거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것들이 여전히 현재를 이룬다. 〈ㅅㄹ, ㅅㅇ, ㅅㄹ〉은 과거 감독 본인 주변에 가득했던 소리, 혹은 소음에 관한 내용이다. 소리는 몰라도 소음은 결코 사랑스럽지 않다. 그런가하면 〈사랑의 고고학〉은 사랑에 대한 내용이다. 모든 사랑이 행복하지는 않다. 하지만 짧지만 사랑이 시작되어 달뜬 공기와 설렘이 〈사랑의 고고학〉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영화를 사랑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애증도 분명히 사랑이므로.

따라서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리는 어째서 소음이 되었을까. 또 사랑은 어째서 증오가 되었을까. 〈사랑의 고고학〉에서 희미했던 대답은 〈ㅅㄹ, ㅅㅇ, ㅅㄹ〉에서 뚜렷해진다. 소리가 괴로운 사람은 소리를 잘 감각하기 때문에 괴롭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영실은 사랑을 잘 감각하는 사람이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 영실을 느리고 답답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 포크레인을 두고 땅을 붓으로 긁어내는 방식은, 바로 그가 사랑을 감각하는 방식이다. 느리고 예민한 감각으로 마음껏 아파하는 것이 그의 고고학이다. 영실을 미워할 수 없고, 이 영화의 고고학이 모두의 고고학인 이유다.

〈사랑의 고고학〉에서 사랑이 증오가 되는 원인은 오로지 폭력이었듯, 〈ㅅㄹ, ㅅㅇ, ㅅㄹ〉에서도 소리가 소음이 되는 순간은 일종의 폭력이다. 홈비디오 속 아이는 소리에 둘러싸여 그 자신도 소리를 낼 것을 강요받는다. 〈ㅅㄹ, ㅅㅇ, ㅅㄹ〉는 소음을 미워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화는 사실 모든 순간이 증오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의 말미, 감독은 마침내 직접 내레이션한다. 스스로 발화하게 되며 소음은 어느새 소리가 된다. , 〈ㅅㄹ, ㅅㅇ, ㅅㄹ〉은 자신의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사랑의 고고학〉이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듯이 말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역사가 더해지면서 소음이 소리로 감각되는 경험은 경이롭다.

소음이 일상을 포용하는 것처럼 사랑도 똑같다. 그래서 둘은 미워할 수는 있지만 피할 수는 없다. 일상을 파고든다는 것, 그래서 나를 구성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소음이 지독하게 자신을 괴롭혔다는 감독의 말은 그래서 그가 소리를 매우 사랑했다는 일종의 고백처럼 들린다. 나는 사실 소리를 매우 사랑했었고, 그래서 때때로 그것을 소음으로 규정하였노라고. 그것을 계속해서 사랑하려면 어쩔 수 없었노라고. 나의 층위를 켜켜이 걷어내는 고고학을 통해 그것을 깨달았노라고 말이다. 영화는 바로 그 깨달음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그렇다. 영화는 그저 나와 당신의 고고학을 보여주는 과정일 뿐이다.

이 글의 제목을 괄호로 비워 놓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다. 당신이 직접 발화해 보기를 바란다. 당신이 원하는 소리를 찾기 위해, 당신만의 고고학을 펼쳐보기 바란다. 발화함으로써 소리는 스스로의 것이 되고 당신의 지층은 한 층 걷히거나 차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스스로의 고고학을 헤쳐 나가는 과정이다.


인디즈 안민정

〈ㅅㄹ, ㅅㅇ, ㅅㄹ〉  감독 강예은|63분

다큐멘터리|12세이상관람가


아이는 ( )이/가 괴롭다.

이완민 감독의 전작 단편 더 보기!
〈사랑의 고고학〉을 연출한 이완민 감독은 지난 2018년 개봉한 〈누에치던 방〉의 감독이기도 합니다. 이상희, 홍승이, 김새벽, 이주영 등 독립영화의 핫한🌞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이지요. 하지만 〈누에치던 방〉 이전에 이완민 감독은 〈가재들이 죽는.〉이라는 다소 신선한! 제목의 영화를 선보였습니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살아가던 한국 유학생들의 2000년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1급수의 맑은 물에서만 서식한다는 '가재들'이 왜 죽어가는지 한껏 궁금해지는 제목입니다. 머지않아 인디스페이스에서 〈사랑의 고고학〉과 함께,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
〈가재들이 죽는.〉
감독 이완민│27분│드라마│2010

2000년 파리, 재불한인식당의 노동실태가 알려지자 유학생들은 모임을 조직한다.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열악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쉽지 않고, 그들은 점점 지쳐간다. 흑백화면 속 쓸쓸히 걸어가는 여주인공의 뒷모습은 우리시대 청년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슬픈 자화상과도 같다.
(2011년 12회 전주국제영화제)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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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우리'가 극장에서 다시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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