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바로 보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 중에서 '노동'이 아닌 것이 있을까요. 가정에서 가족을 위해 대가 없이 일하는 가사노동이나, 고객을 응대하며 감정을 소모하는 감정 노동까지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노동의 가치를 단순히 임금을 받기 위한 활동으로 한정지어서는 지금 우리의 노동을 더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돈을 버는 것만이 '노동'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에 포함된 성취감과 만족감을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인간활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상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노동'이 지닌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노동자'라는 말 뒤에 가려진 사람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현대사회에 여성과 생명, 보이지 않는 노동의 수고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작가 정정엽은 이번 전시에서 인천의 노동현장에서 제작한 노동판화부터 동시대 우정을 그린 얼굴풍경, 민주주의 씨앗으로발화된 팥과 콩, 노동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봄나물 연작, 푸른콩으로 표현한 최근작까지 우리 삶에 스며있는 다양한 노동의 시각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펼쳐보입니다.
정정엽의 40여 년간의 노동이 스민 그림은 한결같이 삶과 유리되지 않는 노동의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들을 마주하며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아야 하는 것을, 그럼에도 오늘날 '노동'이라는 말에 담겨야 하는 것들을 떠올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