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시절의 기억

생동하는 여름의 한복판에 서서

편지의 문장을 적을 , 누군가의 안부를 묻게 되지요. 시의적절한 인사를 던지기 위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세상을 둘러보곤 합니다. 고로 편지 쓰는 일은 일상의 변화를 세밀하게 감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해요. 오늘도 님의 안위를 묻고자 올여름 발견한 가장 근사한 이야기를 슬쩍 꺼내어 보려 합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강렬한 아래 생동하는 풍경들을 담아보았어요.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매미의 울음처럼 모든 것이 힘을 내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요즘. 도로에 피어오른 아지랑이를 잠재워 분수의 물줄기와 그에 발맞춰 춤추는 아이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봅니다. 어느 때보다도 리드미컬한 여름의 중턱에 선 우리들을 위해 세상의 볼륨을 조금 키워볼게요.

08.03. For The Wonderful Holiday완벽한 휴가를 위하여
Part.2 소란한 시절의 기억

08.17. Another Story Here책 너머 이야기
책에 실리지 못한, 숨겨진 어라운드만의 이야기를 전해요.

08.31. A Piece Of AROUND그때, 우리 주변 이야기

오늘 다시 보아도 좋을, 그때의 이야기를 소개해요.

소란한 시절의 기억

오전 출근길, 인파로 가득 찼던 대중교통이 조금 한산해졌어요. 듬성듬성 빈자리를 때마다 이곳과는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즐거운 나날들 보내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짧은 휴가 기간이 끝나고 뒤에 조금 새까매진 돌아온 이들을 보면 왠지 반가운 기분이 같습니다. 그들의 옆자리에 앉아 속으로 넌지시 안부를 건넬 수도 있겠죠. 이번 여름은 얼마나 소란스럽고 유쾌했는지요. 물론 대뜸 물어볼 수는 없으니, 물음표의 방향을 조금 틀어보겠습니다.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들은 어떤가요? 답을 듣기 전에 우리가 아는 이야기 먼저 시작해 볼게요.

한 다발의 여름


이주연―수석 에디터

“여름이 네 번째로 좋아.” 하고 말하던 시절은 없던 것처럼 순식간에 여름과 사랑에 빠진 날을 기억해요. 잠깐 바다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해의 빛깔을 머금고 잔뜩 반짝이는 선셋비치를 보는 순간 제 안의 무언가가 바뀌었어요. 뒤돌아서는 법을 잊은 것처럼, 요령 없는 방랑자처럼 멀거니 서 있었지요. 바다만 멍하니 보다가 해가 기울어 저녁이 되었고, 다시 멍하니 보다가 밤이 되는 바람에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어요. 숙소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엔 여름을 향한 사랑이 가득했지요. 오키나와의 시월을 여름이라 이름 짓고 여름이 오면 오키나와의 그날을 떠올립니다. 작고 소담스러운 한 다발의 여름이 마음에 피어난 덕에 그리울 때면 언제든 한 송이씩 꺼내볼 수 있어요. 이 계절이 계속되는 한 소멸하지 않을, 소란한 여름이 조용히 뿌리내린 기억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AROUND Vol.85 케이크가 놓인 자리(With Dessert)
〈초당옥수수와 딱딱이 복숭아〉

우리가 함께 장면은


오은재―에디터

여름의 초입쯤, 시간을 내어 무주산골영화제에 방문했어요. 좋아하는 감독이 나오는 영화를 보기 위해 새벽 일찍 기차를 탔지요.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영화관은 학창 시절 아침 조회를 듣기 위해 모였던 시청각실을 연상케 정도로 소박했어요. 졸음이 밀려올 때마다 앞자리를 차지한 동지들을 보며 버텼어요. 제각기 다른 각도로 기울어진 뒤통수들이 사랑스러워 보였던 순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애틋한 감정을 느꼈답니다. 뜨겁던 한낮에는 등나무가 드리워진 스탠드에 앉아 초대 가수 노래 들으며 율동을 따라 하고, 뉘엿뉘엿 해가 떨어질 때쯤엔 모기를 쫓으며 무성 영화를 보았어요. 온몸을 불사르며 슬랩스틱을 펼치는 버스터 키튼을 보랴, 서울에서 보기 어려운 보랴 정신없는 와중에도 풀내음이 느껴졌지요. 프레임 너머에서 벌어지는 장면들마저도 영화가 되던 하루였어요. 그날의 기억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던 나머지, 8 초에 진행되는 정동진 영화제에 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매했습니다. 어쩌면 무주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를 사람들과 작은 초등학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름 모를 영화를 순간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그곳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이번 여름을 기억해 봐도 좋겠지요.

AROUND Vol.80 우리의 말하기(Talk Talk Talk)

〈침묵의 장면들〉

모른 척 용기


윤혜원―마케터

온몸이 기분 좋게 젖도록 걷는 일의 기억은 여름에 가장 짙어요. 그때의 힘을 기억해 백팩을 메고 오래도록 걷고 싶었지만 실패했어요. 다치는 바람에 기다리던 7 끝자락의 여름휴가를 가게 되었답니다. 아픈 모른 척하려 해도 어쩔 없죠.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이 아직 남아 있으니, 다행이에요. 어느 적었던 문장이 떠올라요. 브라운 라떼처럼 보기 좋게 살결같이 타오르고, 타버리면 좋겠다고요. 양양 해변의 낮잠과 함께한 파도를 타며 환호성을 지르는 서퍼들의 함성, 폭우 이기대 해안 산책로에서 저멀리 보이는 광안대교를 보며 다퉜던 단짝들과의 수다스럽던 여행, 그늘 편안함을 느끼던 문경새재에서의 2 . 지나온 여정은 아주 명백하고 푸르러요. 나아질 모습을 그리다 보면 끝끝내 좋아할 올해 여름행이 씩씩해지겠죠?

AROUND Vol.86 영상으로 전하는 사람들(Video Storyteller)

〈다정한 소우주와 웰컴 드링크〉

몬구—뮤지션 · 유승연—영상 감독

지극히 사적인 여름 이야기

지난 뉴스레터에서 조명했던 AROUND》의 여름 이야기 어떠셨나요? 계절에 펼쳐진 수많은 갈림길 사이 괜찮은 선택지가 되어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는여름 되면 고통에 몸부림치는 에디터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저는 봄의 중턱부터여름 오지 .”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유구한 여름 불호 인간’입니다. 그런 제게 계절을 달리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던 장소, 음악, 영화를 소개합니다. 여름을 싫어할 수백 가지 근거 사이에서 여름을 좋아해도 괜찮을 같은 이유 하나를 찾았을 뿐인데, 다가올 8월을 거뜬히 버틸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얻은 같았답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으로만 머물까 , 곁들여 읽으면 좋을 만한 이전 기사 또한 덧붙여 보았어요


오은재

Music | [Call Me By Your Name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2017)


나를 휘감는 공기의 변화를 실감할 때쯤 플레이리스트를 재정비하곤 합니다. 계절에 따라 옷장 정리를 하듯 말이죠. 매번 바뀌는 목록 중에서도 년째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앨범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콜 바이 유어 네임〉의 사운드트랙이지요. 재생 버튼을 누르자 마자 경쾌하게 뜀박질하는 음들을 듣고 있자면 자연스레 영화 장면들이 재생됩니다. 끝을 모르고 무성해지는 초록빛과 깊어지는 사람의 마음. 사랑을 말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이 주고받은 감정의 온도를 가늠하며 애틋해지곤 해요. 시시각각 표정을 달리하는 계절 사랑의 순간들. 이를 담아낸 노래를 듣기 위해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곤 해요. 트랙들을 순서대로 감상하며 온몸으로 여름을 맞이해 봅니다.

첫 번째 추신

AROUND Vol.61 Nature

어느 백발 남자의 조각들

트랙 순서대로 앨범을 재생하다 보면 유독 더 마음이 가는 곡이 있어요. 곳곳에 숨어 있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예기치 못하게 마주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곤 합니다. 그는 자연 속에서 가장 순수한 음을 길어 올립니다. 노래를 듣고 있자면 마당 위를 사뿐히 돌아다니는 햇살의 걸음걸이와 감정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소년의 마음이 보이는 것만 같아요.

Place | 양양 피프티피프티


양양은여름휴가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여행지죠. 물기 어린 맨몸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게스트하우스 담장 위 빨랫줄에 널린 서퍼 수트가 나부끼는 것을 구경하고 있자면 이곳이서퍼들의 천국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해변을 가로 질러 골목 뒤편으로 빠져나와 사람들로 넘쳐나는 카페와 음식점들을 기웃거려봅니다. 끝에서 에스프레소&위스키바 피프티피프티를 마주쳤죠. 테라스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발갛게 달아오른 살갗을 내놓고선 상기된 얼굴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국의 어느 카페나 바에서 법한 자유로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죠. 물놀이로 인해 쌓인 피로감과 갈증을 달래줄, 뜨거운 커피 잔을 시켜 놓고이열치열이지!” 세뇌하며 더위를 식히던 시간. 진하고 씁쓸한 에스프레소 잔이 어찌나 달콤하던지요. 의식도 새에 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답니다. 덕분에 그날 내내 카페인의 여운에 취해 맑은 눈의 광인이 되어 해변을 뛰어다녔지요.


A. 강원 양양군 현남면 인구중앙길 46-61 1-2

O. 매일 09:00-02:00

양양과 함께 강원도 여름 휴가지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강릉. 그곳에도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며 손님들에게 깊은 맛을 내어주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보헤미안박이추커피를 운영하고 있는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는 자연스러운 맛과 향을 찾기 위해 겸손한 자세로 연구를 멈추지 않습니다. 바닷바람에 실려든 감미로운 향을 느끼고 싶다면 강릉에서 만나요. 

Movie | 기타노 다케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2004)


여름만큼 과감해지는 계절도 없겠죠. 앞서 서핑을 언급했으니, 서퍼가 주인공인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봐요.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시종일관 잔잔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물에게 잠재된 역동적인 기운을 느낄 있어요. 청소 업체에서 일하는 농아 시게루의 세상은 없이 고요합니다. 쓰레기를 수거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서프보드 하나가 잔잔한 수면 같던 그의 일상에 파도를 불러일으키죠. 여름 내내 시게루는 서프보드에 올라타기 위해 씨름을 벌입니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물을 먹더라도 포기하는 법이 없지요. 무모한 도전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시도해 보는 끈기를 보며 뭐든지 저렇게 덤벼야 이기는 거구나 싶어졌습니다. ‘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생생하게 소용돌이치는 것들을 보고 있자면,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들에 대해 알게 되지요. 그 모든 기척들이 제법 여름의 맹렬함과 닮았다는 사실도요. 

지난 호 취재를 위해 떠난 송정에서도, 수줍지만 강인한 서퍼를 한 명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계절을 보내는 내내 파도를 갈망하는 그라핀은 온몸으로 채집한 바다의 순간들을 자신의 그림에 담아냅니다. ‘하나의 파도에는 한 사람만 탈 수 있다.’ 를 되새기며 자신의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물마루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떨지 잠시 궁금해졌답니다.

여러분들은 무언가를 마음을 다해 좋아해 적이 있나요? AROUND 90호의 주제는 수집가들(My Favorite Things)입니다. 이번 호를 만드는 동안 유일무이한 애정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듣고, 기록하며 열렬한 여름을 보냈습니다. 시간과 마음을 써서 수집한 것들. 한눈에 봐도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기록을 보며 모든 것을 가능케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원동력은 바로 오랫동안 쌓아 올린 진심이었지요. 심장이 뛰는 , 무언가를 계속 좋아하고 기록하게 같다는 이야기를 곱씹어 봅니다. 우리가 포착한 충실한 사랑을 읽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여러분들에게도 삶의 빛을 더해주는 수집품과 기록물 혹은 어떤 대상이 하나쯤 있을 테니까요.

장장 이주에 걸쳐 발행되었던, 특별한 뉴스레터의 막을 내립니다. 이번 뉴스레터를 통해 계절을 조금이라도 애틋하게 기록할 있었으면 해요. 혹시 홀로 담아두기엔 아까운 기억들이 있다면 저희에게도 살짝 들려주시겠어요? 언제나 독자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없이, 유쾌하고도 반짝이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 가길 바라요. 다음 뉴스레터는 새로운 AROUND 소식과 함께 찾아올게요. 다다음주 목요일 아침 8시에 만나요. 안녕!

‘수집가들(My Favorite Things)’을 주제로 한 《AROUND》 90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이미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LOTTE LIFESTYLE LAB Vol.7

Fall with AUTUMN — 소중한 사람이 있나요?


어라운드와 롯데백화점 문화센터가 계절마다 함께 발행하는 《LOTTE LIFESTYLE LAB》은 동시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며 다채로운 취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거진입니다.


이번 가을호는 소중한 관계에 대해 다룹니다. 주변을 살피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견고한 마음을 되돌아 봅니다. 이번 가을, 그들의 손을 잡고 문화예술의 빛으로 물들이기를 바랍니다.


LOTTE LIFESTYLE LAB》은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AVENUEL 8월호와 함께 만나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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