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DST Global은 단 한번도 컬리의 이사회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2019년 시리즈D 당시 세콰이어캐피탈 1인, 힐하우스캐피탈 1인이 투자자 자격으로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었고, 현재는 가장 최근 2,500억 원을 투자한 앵커에쿼티의 파트너가 투자자로서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DST 관련 인사는 한번도 등기에 기재된 적이 없습니다.
DST의 또다른 국내 투자 기업인 당근마켓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8월 DST는 당근마켓의 시리즈D의 리드투자자로 뭉칫돈을 투자했지만 현재 당근마켓 이사회는 초기투자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 카카오벤처스, 알토스벤처스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럼 DST는 왜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투자 전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우선 대외적인 이유는 '창업자에 우호적인 투자자'란 포지셔닝입니다. 스타트업은 유니콘과 데카콘이 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때마다 창업자의 지분 희석을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창업자의 낮은 지분율이 끊임없이 공격대상이 되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죠. 이 때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지만 경영은 믿고 맡기겠다는 투자자는 창업자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우호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DST가 생각하는 최고의 스타트업들이 보다 쉽게 DST을 파트너로 선택하는 인센티브가 되기도 합니다.
"There are many ways to influence founders without taking the board"
- Yuri Milner
"He shuns board seats on the premise that founders know what they’re doing, but he’ll visit them regularly to help build a long-term relationship."
물론 DST의 실용적인 접근도 주목받는 점입니다. 꼭 이사회에 참여해야지만 스타트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자신감이죠. 실질적으로도 DST가 회사경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창업자들의 추천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When we met DST and got to know how they are made up, and how they are approaching the market, we saw them as really a unique kind of investor and partner that we had not found in the market."
- 소셜게임 징가 창업자 Mark Pincus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DST Global의 핵심 투자 기법인 '글로벌 아비트라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사한 테마로 묶이는 성장 섹터 내 여러 기업에 집중투자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통해 얻게된 정보와 인사이트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컬리의 성장 과정을 보고 '남미의 컬리'에 투자한다면 어느 정도는 회사를 통해 얻게된 인사이트를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회사의 내부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비상장 투자자는 경쟁사 투자가 금지됩니다. 도의적으로도 그렇지만 대부분은 주주간계약에서 명시적으로 경쟁사 투자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특히 이사회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더더욱 내부 정보 활용이라는 민감한 부분과 엮일 수 있기 때문에 유관 업종 기업 투자는 금기시되는 행위이죠.
일례로 미국 BNPL의 대표 주자 Affirm의 창업자인 Max Levchin과 현재 세콰이어캐피탈을 이끌고 있는 Roelof Botha는 페이팔에 근무할 때부터 절친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Max Levchin이 Affirm을 창업하던 2012년 세콰이어는 유럽의 BNPL기업 Klarna의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를 접었다는 사례는 유명합니다. 당시에는 유럽의 대형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는 이유로 접점이 없어 보이는 미국 스타트업 투자를 접었다고 하니 너무 깐깐한게 아닌가 했지만 지금 Affirm과 Klarna과 미국시장에서 피터지게 경쟁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결국 세콰이어의 선택이 합리적이었단 점을 알 수 있습니다.
DST의 이사회 미참여 전략은 2017년 페이스북이 DST를 통해 러시아 정부와 연결되어있다는 의심을 받을때도 빛을 발하였습니다. 자신들은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고 회사 운영과 관련한 정보도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페이스북'과 '트위터' 관련 내부 정보도 없었고 영향력도 미칠 수 없었던 패시브 투자자였다고 강변한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