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에서> (감독 홍상수)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57 〈물안에서〉
5월 10일 오늘의 큐 💡   
Q. 차기작 어디서 찍지? 🌊
님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즐겨 보시나요?🎬 저는 한때 2010년대 초반 작품들을 좋아했었는데요. 한동안 '옥희'가 다녀간 아차산의 풍경과, '해원'이 들른 남한산성의 모습을 좋아하기도 했었지요.⛰️ 간단한 등산을 하고 내려와서 막걸리를 마실 때면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 풍경 같다면서 킬킬대기도 한 기억도 있고요! (등산+막걸리=홍상수, 산책+별안간 마주침=홍상수!)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에서 '장소'는 늘 하나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 개봉한 신작 〈물안에서〉는 시놉시스의 말마따나 '돌과 바람 많은 큰 섬'이 배경이라고 하지요.🤔 이 말을 듣고 제주도를 떠올리지 않기란 너무 힘든 일인데요..! 영화는 이 섬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나선 주인공 '성모'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안에서〉는 초점이 나간 듯 흐린 화면이 계속해서 나오기도 하지요. 마치 '성모'의 복잡한 머릿속처럼 그가 그려가는 영화의 모습도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은 아닐까요? '성모'의 카메라에 (또는 홍상수 감독의 카메라에) 이 섬의 모습이 과연 어떻게 담겼을지 궁금하네요.

매년 한 편씩 선보이던 것을 넘어 이제는 일 년에 두 편의 영화를 개봉시키기에 이른 홍상수 감독의 신작, 〈물안에서〉를 소개합니다. 인디즈가 이 모호한 영화를 보고 쓴 명확한 리뷰를 아래에서 만나보세요.🖊️

굴절된 세계 속 하나의 소실점

〈물안에서〉

 

오랜 잠수 끝에 고개를 물 밖으로 내밀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수면 위로 나온 얼굴이 허겁지겁 공기를 집어삼킨다. 이내 서서히 초점을 되찾은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내게 이 질문을 쥐어준 채 끝이 난 〈물안에서〉는 이윽고 잠수를 결심하게 된 남자가 물 안에 이르기까지의 고뇌를 뒤에 선 채 지켜본다. 자신의 창조성을 확인하고 싶은 남자는 영화를 찍고자 돌 많고 바람 많은 섬에 이르고 남자의 대학 동기 두 명이 각각 촬영 작업과 배우 출연을 위해 그와 동행한다. 이 둘은 어떻게 영화를 찍어야 할 지 몰라 막막해하는 남자의 곁을 지킨다. 그리고 영화는 이 셋의 동행을 관조한다. 마치 굴절 기능에 이상이 생긴 수정체가 세계를 바라보듯, 희미하고 납작하게.


(중략)


〈물안에서〉의 화면에 맺힌 탈초점화되고 심도가 얕아진 이미지는 만물이 구별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유일한 진실을 찾아내려는 과정의 전제 조건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사물들의 입체성이 사라져 평면화되고 화면의 선예도가 낮아진 상황에서 단 하나의 소실점만을 건져내고자 한다. 영화 끄트머리에 성모가 돌연 언급한 죽음은 이러한 과정과 연결된다. 죽음이란 그야말로 유일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성모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후반 촬영을 위해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해수면을 경계로 동강난 몸통은 점점 희미해져간다. 약분되듯 다른 이들과의 공통분모를 모두 소거한 그의 신체는 소멸하듯 잔존한 채 수평선에 걸려있다. 잠긴 것도 아니고 떠오른 것도 아닌 그는 홍상수 영화 속의 성모일까 아니면 성모의 영화 속 누군가일까. 어느 쪽으로도 정주하지 못한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물안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또 다른 구두점이 될 것이다.


인디즈 김채운

〈물안에서〉

감독 홍상수│61|드라마|12세이상관람가


배우를 하겠다고 노력하던 젊은 남자가 갑자기 자신의 창조성을 확인하겠다며 사비를 털어 자기 연출의 영화를 찍겠다고 한다. 같은 학교를 다녔던 세 사람이 돌과 바람 많은 큰 섬에 도착한다. 뭘 찍을 지 모르겠는 젊은 남자는 하루종일 두 사람을 대동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넓은 해변에서 혼자 쓰레기를 줍고 있는 여자를 보게 되고, 남자는 그녀의 봉사활동에 감동 받아 그녀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남자는 드디어 그 만남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되는데…




스크린에 띄워진 위태로움

〈물안에서〉와 〈콘크리트의 불안


잘 알려진 것처럼 〈물안에서〉의 모든 장면은 초점이 맞지 않는다. 성모가 영감을 찾아 헤매는 제주도의 풍경은 흐릿한 상태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그렇기에 어떤 것이 그의 마음을 잡아끄는지 추측해 볼 수 없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의 얼굴 또한 똑바로 볼 수 없다. 그들의 대화는 온전히 귀로 전해지지만, 내용은 어느 때보다 공허하고, 말과 속내의 간극을 상상해 볼 만한 표정은 똑바로 보이지 않는다. 인물들이 카메라로부터 멀리 놓여있는 장면에서는 귀로 들리는 말소리가 저들의 입에서 뱉어지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물안에서〉의 초점이 맞지 않는 카메라는 그 안에 담긴 것들이 현실의 파편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는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불안에 놓여있는 성모의 내러티브 속 상태, 그리고 영화 만들기라는 소재와 공명한다. 극영화의 고전적 양식, 이를테면 보이지 않는 편집, 180도 법칙 등은 관객이 영화를 보며 경험하는 인위성을 지워나가며 스크린에 띄워진 이야기와 형상을 쉽게 실존하는 것으로 믿어지게 만들지만, 가끔씩 하나도 납득되지 않는 영화를 볼 때 체감할 수 있듯, 영화의 내러티브, 영화에 그려진 형상들은 실로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있다. 이야기와 피사체의 존재는 어디서부터 믿어질까. 파도와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사라져 버리는 성모의 존재처럼, 〈물안에서〉는 스크린에 띄워진 형상의 위태로움을 떠오르게 한다.

 

그 위태로움으로부터 〈콘크리트의 불안〉을 떠올렸다. 도시의 풍경을 담은 패닝 쇼트의 마지막, 허름한 아파트의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는 건물에 가까이 간다. 흔들리는 젖니에 대해 말하는 내레이션이 함께 들린다. 허름한 풍경 위로 전달되는 이야기는 눈 앞에 보이는 건물이 곧 붕괴될 것만 같다는 인상을 준다. 아닌 게 아니라, 건물에는 이미 균열이 생겨 있고, 거주민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으며, 벽에 적힌 낙서와 같은 흔적들만 남아있다. 그렇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무너져 가는 아파트의 마지막 날과 그곳에 담긴 기억을 담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모욕당했던 내레이터의 이야기를 듣지만, 지금껏 보아온 풍경에서 놀이터는 없었다. 내레이터는 도시의 끝에 놓인 아파트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지만, 첫 장면에서 본 풍경을 떠올려 보자면, 눈앞에 보이는 이 아파트는 도시의 끝에 놓여있는 것 같지 않다. 눈에 보이는 풍경과 내레이션의 배경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후, 〈콘크리트의 불안〉의 모든 장면은 새롭게 보인다. 더 이상 쉽게 믿어지는 것은 없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귀로 들리는 내레이션의 자장 아래에 놓여있지 않고, 내레이션 또한 풍경에 그렇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독립된 두 가지 세계를 엮어내는 힘이 무엇일까 따져보게 되고, 그것이 각자의 적극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것의 의미를 따져볼 것이고, 증명할 수 없는 기억의 속성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물안에서〉와 〈콘크리트의 불안〉의 마지막 장면을 두려움 혹은 슬픔으로만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화와 관객은 언제나 위태로운 자리에서 출발해 각자의 감흥을 발견해 낸다.


인디즈 김태현

〈콘크리트의 불안〉 

감독 장윤미|35분|다큐멘터리|전체관람가

1969년에 세워진 스카이아파트는 오랫동안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되어 있었다.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콘크리트 건물을 보면서 불현듯 어릴 적 이가 흔들거릴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제공: 장윤미 감독, 계간 오큘로

혹시.. 영화과 출신의 30대세요?
〈물안에서〉의 '상국' 캐릭터가 인상적으로 남았다면, 작년 8월에 개봉한 〈모퉁이〉 역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때입니다. '상국'역을 맡은 하성국 배우는 신선 감독의 〈모퉁이〉를 통해 첫 장편 주연으로 데뷔를 마쳤습니다. 오래전 함께 영화를 찍은 사이였던 세 인물이 불현듯 모서리 아니고 모퉁이에서 마주한 사건과 이유, 결과에 대한 영화 〈모퉁이〉는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선택상을 받기도 했지요. 영화과 출신의 30대라면 쉽게 공감할지도 모르는 이 영화를 아래에서 만나보세요! 
〈모퉁이〉
감독 신선│72분│드라마│2022

“우리의 대화는 왜 지금 여기 있는 걸까?”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화과 동문 
성원(이택근)과 중순(하성국) 그리고 병수(박봉준). 
세 사람은 불편한 기류가 흐르는 술자리를 함께한다. 

10년의 공백을 채우는 그들의 영화담(談)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잠깐!

오늘의 레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인디스페이스는 인디즈 큐 레터를 통해 구독자분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시고 🎬 다채로운 독립영화 소식을 많이 알아가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데요. 앞서 보내드린 (클릭)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안내 메일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앞으로의 인디즈 큐 레터는 관객기자단 인디즈가 쓴 💌다양한 글과 함께,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홍보 내용을 좀 더 담을 예정이에요. 인디즈 큐 레터를 지금처럼 꾸준히, 아낌없이 즐기고 싶은 구독자분들이라면 위 링크를 확인해 주시고, 아래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바로가기'를 클릭해 주세요. 

너와 나, '우리'가 극장에서 다시 모여🏢 
우리 곁의 독립영화를🎬
울고 웃고 화내고, 다양한 표정으로😥😆🤔
함께 관람하는 그날까지!🌞🌝

소중한 독립영화 소식을 알차게 알려드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는 인디스페이스와 인디즈 큐 레터가 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인디즈 큐 레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재밌었다면, 구독페이지를 친구에게도 소개해주세요!
우리를 만나는 영화관, 인디스페이스
indie@indiespace.kr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76, 와이즈파크 8층 02-738-0366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