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다> (감독 김현정)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55 〈흐르다〉
4월 26일 오늘의 큐 💡   
Q. 가족은 왜 만나기만 하면 싸울까?🤔
어느덧 4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이네요! 화창하고 날 좋았던 4월을 지나 5월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오늘인데요.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다인 가족을 위한 날이 많아 흔히들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1인 가정도 엄연한 가정! 님도 본인을 위해, 혹은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는 다양한 가족들을 위해 무언갈 준비하고 계시나요?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절이 있죠.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바로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인데요. 아래 사진을 잘 들여다보니 〈흐르다〉 속 '진영'(이설)의 가족도 언뜻 불행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네요. 마치 금방이라도 싸울 듯 무표정으로 말없이 앉아있는데요. 사실 어두컴컴한 표정이 '진영' 가족의 평소 모습이라면? 😖 (가정의 달이고 뭐고 흐르듯 지나갈 수도....) 모든 가정이 억지로 행복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시종 불행하기만 한다면 정말 고구마보다 퍽퍽한 삶을 살 것 같아요. 🍠

오늘은 〈나만 없는 집〉이라는 단편으로 널리 알려진 김현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흐르다〉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워킹홀리데이를 갈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남겨진 사람'이 된 '진영'은, 함께 남겨진 무뚝뚝한 아버지와 함께 '가정'의 시간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흐르다〉에 대해 인디즈가 물 흐르듯 써 내려간 글과, 주연인 이설 배우의 신작 상영 소식까지 함께 아래에서 만나보세요!

눈에 보이는 관계.

〈흐르다〉

 

 샤워를 마친 진영이 거울을 보고 있다. 물기가 자욱하게 묻어있는 거울 탓에 그의 모습은 투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똑바로 보이지 않는 느낌이 마음에 남는다. 진영은 화장실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빠르게 들어가고, 아버지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누워있다. 카메라는 진영이 서 있던 자리에서 아버지를 내려다본다. 이 시선을 진영의 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는 이미 방 안으로 몸을 옮겼다. 아버지의 돌아선 뒷모습은 진영의 눈에 들어온 상황이라기보단, 그의 마음속에 박혀 있는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진영과 아버지는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진영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의 시선은 자주 화면 바깥을 향해 있다. 대화를 나눌 때도 앞에 놓인 사람과 눈을 마주하는 일은 도통 없고, 고개를 푹 숙이거나 허공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흐르다〉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이자 '진영'을 무능력하다고 말하는 세상의 눈치를 견디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진영'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영화는 진영의 얼굴과 그가 바라보는 것을 쉽게 연결해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진영의 모습이 포함된 풍경을 보여준다. 진영은 매번 상황 속에 깊이 속하지 못하고 분리된다. 진영은 영화의 상황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다. 진영은 문 하나 쉽게 열지 못하고, 시선 하나 쉽게 던지지 못하는 사람이다. 집안에서 진영은 아버지를 피해 문 안으로 숨는다. 부모의 다투는 소리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진영의 모습에서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오랜 역사가 보인다.

 

(중략)

 

 부모의 다툼이 바닥에 남긴 유리 조각이 진영의 발에 상처를 낸다. 진영은 상처를 바라본다. 〈흐르다〉는 진영을 둘러싼 관계를 눈에 보이는 것들로 보여준다. 성실하고 꾸준히 관계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려내다 보면,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관계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를 면회하고, 워킹홀리데이에 필요한 절차를 마무리한 진영은 계단 아래로 내려와 높은 벽 아래에서 엉엉 운다. 우리는 높은 벽에서 진영의 아픔을 본다. 저 벽은 아버지와의 답답한 관계이고, 내가 헤아리지 못했던 어머니의 역할이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던 진영의 지난 시간이다. 영화는 결국 보이지 않는 마음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매체이다. 〈흐르다〉는 그 일을 무척이나 성실히 해낸다.


인디즈 김태현

〈흐르다〉

감독 김현정│123|드라마|12세이상관람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던 취업준비생 진영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엄마의 죽음 

아빠가 운영하던 공장에도 문제가 생기고 
진영은 아빠를 외면할 수도,
캐나다행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기에

흐르다아버지의 방


'진영'은 내 돈으로 자동차 할부금 하나 갚을 수 없다. 취업 준비는 계속되지만 언론 고시 문은 좁기만 하고, 설상가상 진행하던 스터디마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불안한 진로, 언니의 성화, 익숙지 않은 가부장과의 마주침.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까지. 인생의 고비들이 휘몰아치지만 태풍의 눈처럼 진영은 동요하지 않는다. 그저 느리고 차분하게, 해결이 아닌 대처를 통해 삶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진영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공장은 부도를 향해,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는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는 무산될 것처럼 흘러간다.


여기 흘러가고 있는 다른 인물이 있다. 애니메이션 아버지의 방속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어머니를 지독하게 학대했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주인공은 도망가지 못한다. 길거리에 시시덕대는 중년 남성마저 피해 다니던 그였지만, 결혼식에서 잡아야 하는 손은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구타당하는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우던 주인공은 축복받아야 할 자리에서마저 공포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 염증을 느낀다.


부녀 관계를 중점적으로 그리는 두 영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트라우마적 경험 이후 주인공의 감정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흐르다에서 진영의 개인적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은 극의 마지막뿐이다. 갑자기 터져버린 울음 속, 어머니를 잃은 서러움과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답답함이 배어 나오지만, 진영은 이를 뒤로하고 하루를 버텨내야 한다는 현실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아버지의 방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지독한 학대의 흔적을 상자 속에 정리하듯, 고이 눌러 담은 채로 살아간다. 두려움에 떨며 밤을 지새우고, 나를 때리지 말라며 아버지를 저주하던 어린 날의 기억을 제외하고 성인이 된 주인공은 무표정을 유지한다. 시간이 흘러 학대의 기억보다 자신이 커지고, 아버지의 방을 묵묵히 정리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도 주인공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대신 그저 어두운 방에 앉아 상자를 닫는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의 세계 속에서 가끔 답답함을 느낀다.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새로운 상황이 발생함에도, 삶을 계속 해야 하는 경우를 빈번히 마주해온 우리에게 영화 속 깔끔한 결말은 묘한 위화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단단히 엮어버린 현실을 해결하지 못하는, 아니 해결하지 않는 영상들이 있다. 벗어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든 갑작스레 다가온 어머니의 죽음이든 간에 그렇게 우리 인생은 흘러갈 뿐이다.


인디즈 이수영

〈아버지의 방〉  감독 장나리|8분

애니메이션|15세이상관람가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다.

아버지와 헤어져 살게 된 후 그녀는 뜻밖의 순간에

가족에게 버림받은 아버지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혼란스러워진다.









믿고 보는 배우, 믿을 수 있는 배우 이설! 😍
〈흐르다〉의 주연을 맡은 이설 배우는 2016년 데뷔 후 뮤직비디오와 드라마, 영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올해는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자 독립장편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입니다. 한국경쟁 섹션에서 상영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열정의 끝〉, 〈대자보〉 등의 단편을 연출한 곽은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곽은미 감독의 연출과 이설 배우의 연기가 시너지 효과를 보일 작품이 처음으로 상영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일정을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믿을 수 있는 사람〉
감독 곽은미│95분│드라마│12세이상관람가
출연 이설, 오경화, 박세현, 전봉석, 이노아 등

한영은 중국에서 살았을 때 배운 중국어를 활용하여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가이드가 된다. 아직 익숙지 않은 환경에 적응해 가며 실적도 제법 쌓지만 함께 온 동생 인혁의 행방은 알 수가 없고 사드 배치로 중국인 관광객까지 줄어드는 등 한영의 삶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계속적으로 변화를 맞이한다. (전주국제영화제)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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