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34 〈탑〉

11월 30일 오늘의 큐 💡

Q. 어느 정도 높이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

님, 춥다 추워😖 기온이 어디까지 내려가는 건지 당황스런 오늘! 따뜻하게 잘 챙겨입으셨나요? 다가올 12월, 날씨가 너무 춥지 않길 기원하며 열심히 계단을 오르는 영화를 가져와봤습니다(?)

"어느 정도 높이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다행히 그렇게 높지는 않고, 4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진행되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 <탑>을 소개해드릴게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한 공간에 오래 머무르거나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의 건물과 그 구조를 활용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도 색다른 재미예요😋

더불어 다작왕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조금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도록! <소설가의 영화>를 통해 그의 세계를 조금 더 들여다보는 글과 지난 인디즈 큐도 덧붙여 보았답니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은 언제나 인디즈의 영화 수다를 핫🔥하게 만드는데요. 정말 다양한 의견과 해석이 오가서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님이 올 한해 재밌게 본 영화도 궁금해지는데요. 곧 물어보러 올게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텁텁한 사랑의 되풀이

〈탑〉

얼마 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출간되자마자 밭은걸음으로 서점엘 갔다.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썼다는 그 책은 언제나처럼 내게 새로운 관점을 선물해주었다. 당신과 있을 때, 다른 이들과 있을 때, 홀로 있을 때 나는 각각 다른 사람 같다. 당신이 바라보는 내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고, 동시에 거짓말로 누군가와 관계 맺고 있는 걸까 고민한다. 이 묘한 죄책감의 끝은 결국은 모든 모습이 다 '진짜 나'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작가의 문장을 빌리면, '나'란 나눌 수 없는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나, 즉 '분인(dividual)'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면 그 앞에서만 작동하는 나의 어떤 패턴이 생긴다는 것. '나'란 바로 그런 분인들의 집합이라는 것. (신형철, 『인생의 역사』)

홍상수 감독의 신작 〈탑〉에서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탑 속 위치에 의해 달라지는 주인공 병수를 발견할 수 있다. 인물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다. 종교는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것이라던 병수가 하나님을 실제로 만났다 말하고,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던 사람이 입안 한가득 고기를 욱여넣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위로 향할수록 달라지는 인물들에게서 종종 감독을 발견하며 웃고, 이따금 자신을 발견하며 찝찝한 기분을 느낀다.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와 당신이 보는 내가 있다. 이 둘의 모습이 일치할 때, 우리는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아는 것처럼 느낀다. 당신이 진정한 나를 알아준 것만 같다. (...) '당신만 진짜 나를 사랑해준다'는 말은 이런 말이다. 당신이 바라보는 나와 당신을 바라보는 나를, 사랑이라 이름 짓겠다는 결심.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기로 한 결정이 끝나서, 사랑은 끝난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기로 결정하면 사랑할 수 있기에 사랑이라 부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 것이다. 종교가 인간의 필요에 의한 발명품이듯, 사랑 또한 발명품이다. 발명하기로 하면 발견할 수 있게 된다. (...) 현실의 사랑은 영화와 다르게 대체로 텁텁하고, 이 텁텁한 영화는 희한한 방식으로 낭만적이다.

내가 서점으로 달려가던 마음과 비슷한 마음으로, 홍상수 감독의 〈탑〉을 기다린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들만큼 '감독 홍상수'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를 좋아하는 이에게 그다우면서 그답지 않은 영화라 전해 들었다. 인생에서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변해가는 작가의 모습에는 사라진 것과 새로운 것이 있다. 하나하나 아쉬워하고 즐거워하며 매번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 서울이 아니어도, 치기가 사라져도, 그가 계속해서 영화를 찍기로 결정하길 바란다.

인디즈 김진하

리뷰 전문 읽기

상영일정 보러가기

〈탑〉 감독 홍상수｜97분｜드라마｜15세이상관람가

중년의 영화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그의 딸과 함께 인테리어 디자인하는 여자의 건물을 찾는다.
딸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해서 그녀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는 직접 고친 그 4층 건물의 소유주이고, 자기가 어떻게 고쳤는지 보여주고 싶어 한 층씩 두 사람을 데리고 올라간다.
각층의 방을 다 열고 들어가 보는 세 사람.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그리고 나서, 이제 다시 밑에서부터 한 층씩 올라온다.

자기복제? 실제얘기? 그 너머의 💭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말할 때 종종 나오는 말들이죠. 계속 비슷한 작품들을 만든다거나, 누가 보아도 영화 속 주인공이 본인이라거나...... 홍상수 감독이 지난 5년간 선보인 영화만 해도 열 편이 되는데요😮 영화 작업이 완전히 삶과 밀접한 감독이다보니 더욱 그런 면모가 두드러지는 것 같기도 해요. 이번 인디즈 글은 홍상수의 영화를 단순히 자기복제나 실제 이야기라고만 말할 때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짚고 넘어갑니다. 반복과 변주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 분들이라면 반가운 글이 될 것 같네요😌

홍상수 세계의 친절한 안내서 혹은 한 편의 홍상수 영화

〈소설가의 영화〉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들과 그들의 욕망을 떠올리며, 우리는 ‘다 알겠다’고 생각하지만, 홍상수의 영화에 그런 것은 없다. 홍상수는 한 번도 자기복제를 한 적이 없는 영화작가다. 거대한 세계의 의미를 파악하려 고통받는 혹은 내 앞에 놓인 타인에게 투영된 자신의 욕망 앞에서 허덕이는 남자들처럼, 그의 영화에는 익숙한 인간군상과 술자리가 등장하지만, 매번 그들의 관계가 변모하고 그들을 둘러싼 세계가 변한다. 동일한 의미를 끝까지 가져가는 대사과 시공간은 없다. 하나의 상황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통로일 뿐이고, 통로를 지나며 사람과 사물들의 의미가 변화한다. 그의 모든 영화에는, 영화를 보며 우리가 움켜쥐려 노력하는 논리 바깥으로 벗어나는 비범하고 두려운 순간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의 잔혹한 살인, 죽어가는 감독을 대면하는 〈극장전〉(2005), 〈옥희의 영화〉(2010)와 〈자유의 언덕〉(2014)의 결말부, 〈밤에 해변에서 혼자〉(2016)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내. 시의 풍경을 그리는 〈강변호텔〉(2018)의 카메라. 수도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곧 개봉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탑〉을 미리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개봉된 그의 영화들보다 흥이 덜났다. 흥미롭지 않다거나 별로라고 쓰진 않았다. 흥이 덜 났다고 썼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영화들에는 언제나 주인공들에게서 비롯된 자아도취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여성들이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나를 가두고 있는 세계의 거대함 아래 고통받는 남성들, 그리고 그들의 세계에서 불가능한 연대, 혹은 탈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욕망의 대상으로 등장한 여성들이 주체를 가진 한 명의 타인으로 자리를 바꾸며 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을 넘어, 최근의 영화들은 그들의 방향성을 믿어보며 끝맺는 것처럼 보였다. 풀잎을 굽어살피던 〈풀잎들〉(2017)의 아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서로를 껴안는 〈강변호텔>의 상희와 연주, 얼굴 앞에 있는 것을 제대로 바라보겠다고 매번 다짐하는 〈당신얼굴 앞에서〉(2021)의 상옥처럼 말이다. 병수가 제발 ‘탑’에서 나가길 빌었다. 아니면 좀 다짐대로 살던가……. 하지만 그는 끝내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병수를 똑바로 보는 일이 힘들었다.

홍상수 감독은 매번 인터뷰를 통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한다”고 말한다. 영화를 통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소설가의 영화〉(2021)는 홍상수의 영화 중 가장 친절하게 자신의 창작비밀을 드러내는 영화다.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설가를 통해 눈앞에 놓인 세계를 영화로 담아내려는 본인의 렌즈를 드러낸다. 한 명 한 명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 나누며 내가 본 그 사람의 미덕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받은 감흥을 숨기지 않으며, 내 눈 앞에 놓인 세계와 사람과 함께 영화를 만든다. 수어와 망원경, 막걸리와 시 같은 작은 대화의 소재들은 매번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준희는 새로운 감각에 솔직하게 답하는 과정 사이에서 영화를 떠올리고 길수와 경우와 함께 영화를 만든다. 관객은 길수와 함께 준희의 영화를 조금 훔쳐보고,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는 길수의 시간을 바라보며 영화 만들기의 마법 같은 힘을 경험한다.

정말 그런가? 〈소설가의 영화〉를 다시 한번 보자. 영화의 시작, 현우에게 소리를 지르던 세원은 어떻게 된걸까. 준희는 왜 모습을 감출까. 홍상수 감독이 준희와 같은 방법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무슨 근거로 말할 수 있을까. 길수가 본 영화는 우리가 본 것과 동일한 것일까. 영화 바깥에서 쉽게 하나의 의미로 대답할 수 없는 순간들이 남아있다. 글을 쓰다 보니 〈탑〉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나는 영화를 보며 〈탑〉에 갇혀있는 기분으로 모든 인물을 쉽게 판단해버린 건 아닐까. 해옥은 정말로 뭘 하는 사람일까. 정수는 해옥을 떠나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병수는 제주도에 가서 영화를 만들게 될까. 물론 영화라고 하는 것이 인물들과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인물들의 자잘한 면을 부여잡고 싶어진다. 영화를 보는 중에만 경험할 수 있는 변화의 감흥들, 자리를 바꿔나가는 세계의 결과물로서의 홍상수의 인물들에 마음이 쓰인다. 나오는 대로 글을 써두고 보니, 홍상수의 세계를 똑바로 소개하지 못한 것 같다. 그냥 팬심을 내어 보이는 글이 되어 버렸다.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탑〉을 다시 봐야겠다.

인디즈 김태현

〈소설가의 영화〉 감독 홍상수｜92분｜드라마｜12세이상관람가

여소설가가 잠적한 후배의 책방으로 먼 길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혼자 타워를 오르고 영화감독 부부를 만나고 공원을 산책하다 여배우를 만나게 되고, 여배우에게 당신과 영화를 만들고 싶다 설득을 합니다. 둘이 분식집에서 뭘 먹고, 다시 찾게 되는 후배의 책방에서 술자리가 깊어지고 여배우는 취해 잠이 드는데…

웨이브로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