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창고, 회현사랑채를 아시나요?

얼마 전 하지가 지났습니다. 초여름은 오랫동안 해가 떠 있는 만큼, 해가 져도 더위가 좀처럼 물러나지 않더군요. 길게 늘어진 한낮의 햇볕을 뒤에 두고 버스를 기다리며,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라는 고(故)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를 곱씹었습니다. 더위가 마스크 안을 파고들어 입가에 땀이 맺히는 가운데, 사람들은 정류장 표지판을 중심으로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팔과 팔을 맞댄 채 집으로 향하면서, 타인과 마주침이 불안의 씨앗이 되는 세상은 얼마나 서글픈가 입안으로 되뇌었습니다.

대도시에서의 삶은 나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여정과도 같습니다. 만원 지하철에서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지키고자 애쓰고, 일터에서의 제 자리를 사수하고자 노력하며,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 쉴 수 있는 집을 꾸려나가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하루를 바삐 살아가고 있습니다. 타인과의 거리는 그 속에서 잠시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서로 간 한 뼘의 거리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얼마나 답답한지요. 그럼에도 나의 공간만으로 이뤄진 도시와 동네는 삭막하기 그지없습니다. 놀이터와 공원이 없는 도시, 길을 걷다 잠시 담소를 나눌 이웃이 없는 거리, 퇴근길 목을 축일 단골 펍이나 카페가 없는 동네는 상상만 해도 따분합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1989년 펴낸 저서,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멋진 도시와 위대한 문명에는 그 안에서 진화해온 독특한 비공식적 공공모임 장소가 있었고, 그러한 장소가 문명의 성장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장소는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도시 경관의 일부가 되며, 결국 그 도시의 이미지를 지배한다. 수많은 노천카페는 파리를 파리답게 만들고, 로마를 머릿속에 그려보면 포럼이 먼저 떠오른다. 런던의 정신은 펍에서 피렌체의 정신은 북적이는 광장에서 나온다.”

아무 이유나 목적 없이도 모일 수 있는, 잡담과 교류의 공간으로서의 공공 공간은 도시 생활자들에게 꼭 필요한 곳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증오나 불안이 아닌 기쁨과 신뢰의 대상으로 여기는 법을 배워나가기 때문입니다.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앵커시설은 서계동·중림동·회현동에 들어선 여덟 개의 공공 공간입니다. 저마다 쓰임새가 조금씩 다른 이 공간들은 각자 공유 주방과 공유 서재, 쿠킹 스튜디오, 카페와 방송국, 마을관리사무소를 품고 있습니다.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합니다. 어울려 사는 동네를 만드는 것이죠. <브리크brique>는 앵커시설 운영을 맡은 이종필 서울도시재생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청파언덕집과 회현사랑채 각각의 설계를 맡은 김이홍·이용주 건축가를 만나 도시에서 함께 사는 법에 대한 고민의 타래를 들었습니다.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오늘을 같이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안부를 물어봐 주세요. <브리크brique>는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박경섭 에디터 드림

서계동·중림동·회현동은 나지막한 언덕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골목과 마주하게 되는 동네입니다. 세 동네에 조금은 낯선 여덟 개의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동네 놀이터로 거듭난 회현사랑채, 마을 카페가 들어선 계단집, 공유주방과 서재를 갖춘 감나무집, 동네 주민과 예술인 간의 만남을 고민하는 은행나무집, 마을 방송국과 카페가 있는 청파언덕집, USO의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리는 중림창고, 요리인류 이욱정PD의 쿠킹스튜디오가 있는 검벽돌집, 마을관리사무소가 들어설 빌라집까지. 서울역 일대 앵커시설 기획과 운영을 맡고 있는 이종필 서울도시재생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도시에서 오래된 건물은 나이테 역할을 합니다. 동네가 언제 번성해 언제 쇠퇴했는지, 어떤 배경의 이들이 살고 떠나갔는지, 그리하여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풍경의 연원이 어찌되는지를 알려주는 사료와도 같죠.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시절 회현동은 대표적인 일본인 거주지역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적산가옥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동네죠.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며 85년간 회현동 자락에서 자리를 지켜온 회현사랑채가 그 중 하나입니다. 
회현사랑채는 얼마 전 동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이자, 주민들을 위한 여러 이벤트가 열리는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리노베이션을 맡은 이용주 건축가를 만나, 회현동의 역사와 미래를 품은 회현사랑채에 관한 이야기를 청했습니다.

서울역에서 서계동 언덕을 바라보면 건물 사이로 유난히 눈에 띄는 투명한 집이 있습니다. '청파언덕집'이라 불리는 새로운 도시재생 앵커시설입니다.
오래된 동네의 협소하고 비뚤배뚤한 땅 모양을 따라 지어져 주변의 집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2층의 뾰족한 테라스는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쭉 뻗어 있고, 반투명의 폴리카보네이트 재료 사이로 비치는 벽과 구조물은 과거의 모습을 가리지 않고 은근하게 드러냅니다. KBS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를 제작한 이욱정PD가 맡아 운영하면서 보다 탄탄한 콘텐츠와 결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동네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죠.
도시재생의 색다른 시도, 청파언덕집을 설계한 김이홍 건축가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중림창고 | 에브리아키텍츠
은행나무집 | 근보양앤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ㄹ: 리을 집 | 틔움 건축
논현동 SNOW 5319 | 유타 건축사사무소

6월 한 달간 최인아책방과 함께 '출판사 테이블'을 운영합니다. 이 코너는 최인아책방이 좋은 책을 꾸준히 만드는 출판사를 응원하고 독자와 만날 수 있도록 마련한 장으로, 최인아책방 1호점(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521)에서 열립니다.
지난 3년간 브리크가 발행한 11종의 책을 모두 선보입니다. 핸드북 판형의 <브리크 디자인북> '온당'과 '나비집', 타블로이드 판형의 <매거진브리크>No.1~5, 리뉴얼한 현재 모습의 <브리크brique>0호부터 3호까지 전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도시와 건축에 관한 독자 포럼도 준비 중이오니,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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