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네 번째 레터입니다.

  요리교실 수업이나 원고 쓰기, 새로운 레시피 정리 등 늘 마감에 쫓기는 일상에서 뉴스레터까지 시작하니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아요. “러브레터를 받는 느낌이에요!”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집니다!” “PJ 선생님 글 너무 재미있어요” 등 솔직한 후기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자 수가 아직 많지는 않지만 하나씩 쌓아가면 뭔가 보일 것 같아요. 느낌이 좋습니다!

  음력 새해를 맞이하며 과도한 목표를 세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특히 히데코레터는 더 그렇습니다. 2월부터는 “히데코의 친구들” 이야기를 레터를 통해 보여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연희동 요리교실 대기 신청도 히데코레터를 통해 받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하나씩. 여러분과 같이 공유하고 재미난 일들을 쌓아가겠습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히데코 드림


  명절 연휴에 요리교실 스튜디오를 싹 정리했습니다. 새 학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치우고 버리고 배치를 바꾸고, 구석구석 쓸고 닦아냈어요.

  사실은 이렇게까지 대청소할 계획은 아니었는데 오래된 후드를 교체할 마음으로 업체를 불렀더니 결국 싱크 볼, 싱크 문짝까지 바꾸게 되었네요. 싱크 하부장 구석에서 안 쓰는 도구나 유효기한이 지난 마른 식재료 등등을 발견,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조리도구를 다시 닦고 수강생들이 사용하기 편하게 배치도 바꾸게 된 것입니다. 명절에 좀 쉬려고 했는데 이렇게 대청소를 하다니... ‘이것도 팔자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몇 년 동안 사용해왔던 앞치마를 바꿨습니다. 작년 늦가을에 코엑스 전시 때 알게 된 작가님이 직접 제작한 거예요.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작업도 하셨다는 작가님의 스페인틱한 느낌의 앞치마입니다. 이처럼 제가 수업 때 쓰기도 하고 좋아하는 물건들, 그릇이나 공예 작품들도 히데코레터에서 차근차근 소개해볼게요!

<히데코 요리교실 대기자 등록 안내>
쿠킹클래스를 위해 대기자 등록을 하시면
4월에 재등록 시 잔여석을 파악하여 순서대로 문자 연락 드립니다.
*2~4월 봄학기 마감

  첫 계기는 우연이었다. 요리교실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당시 가까이 살던 동화작가 수강생이 일러스트레이터인 남편 전시회의 오프닝에 스페인 요리 타파스로 케이터링을 해달라고 의뢰해왔다. 오호라. 타파스에 쓸 미트볼과 핀초스 같은 것을 만들어 홍대 근처 갤러리로 가져가서 혼자 테이블을 준비했다. 묵묵히, 천천히. 전시 오프닝 후 식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전시를 축하하는 자리라 일부러 넉넉히 만들어갔는데, 타파스라는 것이 아직 생소해서인지 접시에 담자마자 동이 났다. 음식을 채우고 핀초스를 더 만드는 등 홀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히데코 선생님! 한 페이지 정도 슥슥 뭐라도 쓰시면 이쪽으로 연락해주세요!” 명함을 건네고 바람과 같이 사라져버린 출판사 사장님이 계셨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한마디에 몸안에서 엄청난 용기라고 해야 할까, 순간 에너지가 끓어올랐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어떤 분야인지 정확한 목표는 없었지만 언젠가 책을 써보고 싶었다. ‘책을 쓰는 사람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예감을 품고 있던 내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첫 에세이를 내게 된 것이다.


  그것도, 우연이었다. 우리 집 1층에 거주할 다음 세입자를 찾고 있을 때였다. 이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던 한 사람이 집을 보러 왔다. ‘원래 이십 대에는 이렇게 피부가 윤기 있나’ 싶을 만큼 젊은 에너지가 그녀에게 넘쳤다. 이런 사람이 1층에 살면 좋겠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녀는 내 바람대로 계약을 했고, 룸메이트와 함께 4년 동안 살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집자와 방송국 프로듀서인 룸메이트가 생활하는 1층을 자주 오가는 사이, 편집자는 2층에서 펼쳐지는 요리교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만들어주는 파에야와 무사카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싶다던 그녀는, 수강료를 내고 한 달에 한 번 지중해 요리 수업을 들었다. 다른 수강생들과 마찬가지로 배울 때는 진지했고, “다음 주말에 인천 집에 가서 가족들한테 만들어줄 거예요!”라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가곤 했다.


  편집자가 우리 집 1층에 오고 나서 2년 정도 지났을 무렵, 평소처럼 함께 와인을 마시다 그녀가 건넨 한마디. “선생님의 파에야나 지중해풍 샐러드 책을 내고 싶어요!” 드디어 때가 왔구나.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하면서 만들어낸 내 요리의 사진과 레시피가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소개되다니. 그때 이미 두 권의 에세이를 출간한, 산문만 써온 나는 언젠가 내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요리책이었다. 두말없이 승낙했다. ‘요리 선생’이라는 명함이 갖고 싶다는 욕망과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온 요리책에 대한 동경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 것이다. 바로 1층의 편집자를 우연히 만난 결과다. 돌아보니 그 시절 1층에서 내 인생의 또 다른 페이지가 그녀와 함께 시작된 셈이다.

  더 오랜 우연도 있다. 대학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의 어느 날, 학과 주임교수님이 연구실에서 지나가는 말로 권했다. “아, 나카가와. 다음 학과 계간지에 에세이를 써보지 않겠나?” 가벼운 작문이나 소논문밖에 써본 적이 없는데 에세이라니. 두려웠지만, 나는 써보기로 했다. 주임교수님이 내 어떤 부분을 높이 평가해서 글을 써보라고 한 것인지는 지금도 수수께끼이다. 문과였던 나는 대학입시 때 국어 점수가 낮아 재수를 했다. 모국어를 잘 못한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일본인 자격이 없다는 생각까지 했던 나로서는 큰 용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지나가는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유명 신문사 국제부에서 일을 맡게 되었다. 또 한번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였던 90년대, 나는 세계 각국에서 시시때때로 보내오는 뉴스를 기사로 만들기 바쁜 기자들의 '어시스트' 아르바이트 중이었는데, 하나의 사건이 문장으로 옮겨져 뉴스로 완성되는 과정을 배울 최고의 기회였다. 졸업 후 사회로 바로 발을 내딛기보다 동경하던 유럽에서의 삶을 선택한 나에게 신문사 국제부 부장님의 제안. “나카가와 씨. 바르셀로나에서 통신원으로 지내면서 파리 지국장 아래에서 스페인 뉴스나 그곳 사람들 이야기,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후의 모습 등을 기사로 써보면 어때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해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책을 내게 된 것도, 그리고 동경하던 삶을 삶게 된 것도 우연. 살아오면서 찍힌 우연의 ‘점’들. 에세이, 요리책, 그리고 요리교실, 또 다른 책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 책과 요리라는 점 사이로 무수히 많은 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둘 중 하나만을 이어갔다면 아마도 진작 끊어졌을 것이다. 요즘은 작은 점이 또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완만한 선을 그려가고 있음을 느낀다. 우연도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일어나지 않는 법. 앞으로의 10년, 지금의 내 점들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상상해본다.

히데코의 라이프스타일 3편 다시보기
3. 모든 것이 우연

  2000년도가 끝나갈 무렵엔 IBM에 근무하고 있었다. Y2K 신드롬 덕분에 업무적으로 성과가 있을 시기였는데 10년 차가 되니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거렸다. 결국 그해 말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 텍사스 달라스에 본사를 둔 미국 나스닥 기업 중 한 곳에 입사하게 되었다. 2001년 1월 달라스로 킥오프 미팅 겸 신입사원 교육을 한 달 정도 받으러 떠났다.

LA, 뉴욕,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달라스 등 미국 전역을 출장다닌 증거. 보딩패스를 보니 공항에서 설레던 내가 떠오른다.

  당시 IT는 어떤 산업보다도 한창 성장하는 분야였고 그중에서도 내가 입사한 회사는 B2B Market Place의 핵심 기술을 보유한 나스닥 최고의 기업이었기에 연초 킥오프 미팅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후끈후끈했다. 마치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모여드는 수호지의 양산박처럼 달라스의 윈덤 호텔은 이 생태계에 속한 수천 명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끝내주는 텍스멕스 스테이크를 저녁으로 먹고 이후에는 중정 형태로 된 로비라운지에 모인 수백 명이 모여 저마다의 미래에 대한 꿈을 큰소리로 얘기하느라 열기가 뜨거웠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치 어떤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무언가가 터지듯, 갑자기 격정적으로 로비라운지의 큰 원탁에 뛰어올라가 많은 이들의 환호 속에 노래를 불렀다. 예나 지금이나 노래는 못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젊은 목소리라 들어줄 만했던 것 같다. 중정에서 울려 퍼진 노랫소리에 온 호텔 객실의 사람들이 발코니로 나와 응원해주었다. 많은 이들이 한국어 가사는 몰랐겠지만 그 멜로디와 나의 진정성은 통했던 것 같다. 그 노래는 “사랑을 위하여”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 둘은 변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1997, 김종환)


  결혼하고서 세 돌, 첫 돌이 된 두 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니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딘가 분수령에 오른 것 같았고, 주어진 두 번째 기회를 잘 살려 새로운 성공 신화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내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열창했던 노랫자락에 배어 있었다. 그때의 심정만큼은 아니지만 늘 직장으로 옮길 때나 개인적인 도전을 하게 될 때에는 윈덤 호텔의 원탁을 떠올리며 새로운 기대와 열정을 채우곤 한다.

PJ STORY #사랑 3편 다시보기
3.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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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ungny 좋은 단막 극장을 보듯, 머릿 속에 그려지는 <히데코레터>❤️doyoumarrymeok!❤️ u_r_what_u_eat_ 선생님 팩스 청혼이라뇨😍😍😍 hyosung486 맛깔난 요리 소식만 있을 줄 알았는데 팩스 청혼과 ok! 회신이라는 심쿵 레터까지😍❤️ 연재 소설마냥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답니다!! lente_andante 선생님 연애편지 기다리는 느낌으로 레터 기다리고 있어요 😍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분위기 너무 좋아요 No name 점이 모여 선이 된다는 소중한 글귀가 와닿네요.진솔하면서 균형을 잃지않는 선생님의 음식처럼 새해에도 좋은 소식 많이 기대할게요. 올해도 화이팅!!! hkkim 선생님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신랑님 청혼 여행이야기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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