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화요일, 커피를 타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카톡 문자가 하나 도착했어요. “우체국 택배입니다. 오늘 12시 전후에 냉장 소포가 도착합니다…” 진주에서 매월, 2015년도부터 무려 7년째 요리교실을 다니고 있는 선정씨가 보냈더라고요. 결혼하고 서울에서 진주로 간 선정씨는 빵도 굽고 원 테이블 식당도 가능한 작업실을 운영 중인데 연희동 수업에 올 때는 새벽 5시에 고속버스를 탄다고 합니다. ‘그녀가 뭘 보냈지...’ 궁금하던 차에 도착한 작은 스티로폼 박스. 열어보니 묵은 나물 무침과 연잎밥!!


  올해는 정월대보름 나물과 오곡밥을 포기할까...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차에 깜짝 선물을 받아서 하루 종일 행복했습니다. 밥까지 보내줘서 '그럼 김도 있어야지' 싶어 좀 남아 있던 홍선장님의 곱창 돌김을 꺼내서 참기름을 듬뿍 바르고 소금을 조금씩 뿌려가며 구워봤어요. 늦은 점심에 아홉가지 나물과 연잎밥을 혼자 즐겼습니다. 선정씨가 빵도 잘 굽고 음식을 참 맛있게 만드는데 나물마다 그 본연의 맛에 맞는 양념으로 버무려 맛이 훌륭했어요.


  1998년쯤의 궁중음식연구원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살아 계셨던 황혜성 선생님이 한복 차림에 호박나물을 볶으시며 하신 말씀,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김에 함께 싸서 먹는 복쌈을 먹고 부럼을 깬 뒤 귀밝이 술을 마시며 잡귀를 물리치고 집안의 복을 기원하세요”. 저는 정월대보름 음식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그때부터 느꼈답니다. 조리도구도 많지 않은 신혼집 부엌에서 황혜성 원장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혼자 나물을 불리고 볶고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시댁에 배달한 추억도 떠오르네요. 그 당시의 제 나물은 맛이 어땠을까요? 된장찌개에 소시지를 넣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선정씨의 나물을 먹으며 그때의 제가 떠올라 웃음이 납니다.


봄을 앞두고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연희동에서 히데코 드림


  수강생들과 같이 만드는 요리교실에서는 가끔 상상 밖의 재미난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어떤 음식의 재료일까? ”

  “응... 뭐지? 샐러드?”

  “글쎄.. 야채 볶음인 것 같고...”


  50대 후반의 수강생 둘이서 싱크대 앞에서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요리들이 마무리 단계인 참이라 정신없이 두 사람 근처를 지나가다가 대화를 들은 거지요. 뭘 보고 그러는지는 몰랐어요. 잠시 후 모든 음식이 완성되어 식탁에 6명이 앉아서 짠, 그날의 반주인 사케와 함께 식사가 시작됐어요. 아까 싱크대 앞에서 매우 궁금해했던 둘 중 한 분이 저한테 “선생님, 이것 무슨 재료인가요?” 라고 휴대전화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묻더군요. 오랜만에 정말 배꼽이 아플 정도 웃었어요.


  1월 말 연휴에 1층 스튜디오 부엌을 정리했습니다. 그동안 사용해오면서 꽤 불편했던 부분을 중심으로 아주 간단히, 안 쓰는 도구를 버리고 위치를 바꿨지요.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마련했어요. 그들의 궁금증은 식재료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던 연두색 바구니였는데요, 전에는 채소를 씻거나 데친 후에 물기를 빼기 위해 사용하던 것인데 이제는 그 쓰임새가 바뀌었습니다. 처리기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기 좋은 아담한 사이즈여서 물기를 말리려고 싱크대 옆에 두었는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리 전 물기를 빼던 바구니였으니 당연히 요리 재료일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사진 속 연두색 바구니에는 그 전날부터 말리려고 넣었던 감자와 당근 껍질과 양파 찌거기 등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한 이 “선생님, 저희가 음식 만들기를 배우러 와놓고, 이렇다니까요. 호호호”


  어쨌든 저보다 모두 언니인 그 클래스의 멤버들 덕분에 많이 웃는 수업이었어요. 그날의 메뉴는 “晩酌(반샤크)”, 즉 한국어로 반주입니다. 그래서 일본 요리의 안주들을 모아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가짓수가 많아서 정신이 없었지만 재미나게 만들고 사케를 반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날의 메뉴 🍽️🍲

대게살 차완무시(일본식 달걀찜), 연근 아싹 볶음, 시금치 우메보시 무침, 카레풍미의 튀김 채소와 오일사딘, 한우 타타키, 현미 볶음밥, 돈지루(돼지고기로 만든 미소 된장국)

(히데코 요리교실의 수강생분들이 찍어주신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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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일을 이유로 구 서독에서 유치원을 다닐 무렵, 나의 최애(favorite) 보물은 토끼 인형 ‘미미짱’과 어린이 레고 클래식 ‘돌하우스 시리즈’의 부엌 세트였다. 그중 부엌 세트는 제법 자랐을 때까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물건인데, 초록색 바닥판에 새빨간 시스템키친을 조립해 얹는 구성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집 근처 숲속에다 꼼지락꼼지락 ‘비밀 부엌’을 만들며 놀았다. 열매, 들꽃, 나뭇가지, 집에서 가져온 상자, 끈 등이 모두 부엌이 되었다. 같이 놀던 독일인 친구들은 수도 본의 평범한 중산층의 자녀들이었는데, 엄마들끼리도 친하게 지내며 서로 집을 왕래하는 사이였다. 친구들의 집에는 다들 레고랑 같은 빨간색의 혹은 다른 색의 캐비닛이 설비된 시스템키친이 있었다. 숲속 비밀 부엌은 어쩌면 독일의 시스템키친을 동경하는 어린 나의 어쭙잖은 만들기 놀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생 무렵의 최애 보물 두가지. 토끼 인형 ‘미미짱’이 레고 블럭에 앉아 있다.

  독일에서 귀국해 살던 일본 집의 부엌은 아담했다. 목조 단독주택이었는데 두 명 정도가 들어서면 딱 적당한 크기로 쇼와시대(1926-1989)의 전형적인 부엌이었다. 큼직한 창에 면해 싱크대를 배치한 구조인데, 위쪽이 창인 탓에 하부장만 두다 보니 수납공간이 늘 부족했다. 엄마는 ‘찻장’이라고 부르던 식기 선반에 그릇과 접시, 찻잔 등을 수납했다. 엄마의 작은 부엌은, 당신의 기준에 따라 사용 및 정리가 편리하도록 잘 완성된 곳이었다. 아마 엄마는 독일의 시스템키친보다 ‘바로 손 닿는 곳에 도구와 재료가 있는 엄마의 소박한 부엌’을 더 선호하신 듯하다. 아무래도 엄마는 부엌에 별달리 집착하지 않는 사람인 모양이다. 한편, 요리사인 아버지는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머무는 반짝반짝 닦인, 전문적인 스테인리스 주방이 가장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도 아버지와도 요리 만드는 공간에 대해 깊이 대화해본 적이 없다.


  이십 대부터 누군가에게 요리를 만들어주기 시작했지만, 부엌이라는 공간에 대한 욕심은 딱히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부엌이 소중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그 무렵, 일본에 가서 들른 도쿄의 한 대형서점에서 우연히 부엌에 대한 책을 발견했다. “‘부엌’은 매일의 궁리를 통해 성립된 스타일로, 사람, 집, 지역에 따라 다른 것이고, ‘키친’은 건축가, 디자이너 같은 사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 혹은 그것을 모방해 만들어진 것이다.”(『부엌 공간학』)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 ‘부엌’과 ‘키친’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느꼈는데,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내 안에서 부엌의 의미를 정리했다. 식단을 고민하며 조리에 분투하는 장이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며 기쁨을 느끼는 즐거움의 장, 누군가와 함께 요리를 하며 대화를 즐기는 단란의 장. 특히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창의성으로 가득 찬 설렘의 장.


  나의 부엌사는 이렇게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왔다. 레고 시스템키친에서 시작되었지만, 요즘은 어쩐지 소금통 하나 나와 있지 않은 단정하고 세련된 시스템키친과 인덕션이 놓인 부엌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부엌은 ‘매일의 궁리를 통해 성립된 스타일’이라지 않나! 1층 요리교실의 부엌은 수강생이나 친구들을 위해, 2층은 가족을 위해 ‘맛있는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곳으로 꾸리고 싶다. 그러려면 누구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쉬운 공간이 되기 위해 물건은 적당히 꺼내 두는 쪽이 좋다. 요리와 문장이 탄생하는,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인 창의적인 부엌을 위해 나는 매일 궁리를 거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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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코 프렌즈 소개

5년째 연희동에서 La voisine(라 부아진)플라워스튜디오 운영합니다. 

개인, 기업체 식물, 플라워 컨설팅 및 제작을 합니다.  

식물과 꽃이 특별하고 유행이 되기보단 일상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다소 까칠한 운영자입니다.



집사의 하루


  그날도 그런 밤이었다.

  퇴근길에 본 유난히 큰 보름달은 나에게 별로 상냥하지 않은 듯했고, 새벽부터 시작한 일정을 16시간 만에 끝내고 살짝 멍한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연이은 한파에 하루 종일 잔뜩 움츠리고 돌아다니다 보니 없던 병도 생길 판이었다. 그래도 25년 된 복도식 아파트 4층 정도 올라갈 힘은 남아 있었다. 현관 센서등이 고장 난 낡고 작은 아파트, 단출한 살림과 가구, 낮은 조명,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마시던 빈 잔들, 종일 두껍게 가려진 커튼. 다른 집에 있는 것들은 많이 없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로만 채운 나의 공간은 이 계절에 맞게 차분함과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익숙한 어둠 속에서 하루의 마무리를 누구의 방해 없이 차분히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공간, 하루의 반을 보내는 연희동 스튜디오. 여기는 혼자가 아니다. 100여 개가 넘는 식물과 절화가 가득 찬 대가족 살림이다. 고객이 있든 없든 무엇인가 자라고 피우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부산하게 움직여야 한다.


  나의 주업은 식물 집사이다. 집사는 항상 쾌적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식물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관심을 가지고 관리한다. 물론 나의 고객들도 소중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식물 하나하나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사람처럼 입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자기를 봐달라고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물방울 터지는 듯 '퐁' 소리를 내며 꽃을 피우기도 한다. 미끄러져가는 지렁이같이 '스르륵'하며 새잎을 천천히 올리기도 하고 숨소리가 잦아드는 새같이 '쌕쌕'거리며 신음하듯 식물들이 말을 건다. 그래서 집사는 늘 바쁘다.


  그런 이유로 집에는 식물과 꽃을 두지 않는다. 퇴근 후 온전한 휴식을 해야 하니까. 그래야 더 오래 식물과 함께 할 수 있을 거 같다. 가족, 연인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조금은 자기 시간이 필요하듯, 나에게 곧 식물도 가족이므로 애정 없는 돌봄과 의무가 되지 않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나의 집'은 완벽히 나를 위해 식물을 키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식물 하나가 우리 집에 살고 있다. 베란다 한쪽을 차지한 빨간 겹동백나무. 50~60센티 정도의 키에 평범한 차나무과 상록교목 5살이다.


  그날도 그런 밤이었다.

  일상적인 마무리를 하고 무언가 홀짝거리며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무언가 느껴졌다. ‘적막한 밤 중에 이게 뭘까? 베란다에서 느껴지는 존재감? 보름달 때문인가? 눈이 오나?’ 그럼에도 베란다 쪽을 쳐다볼 뿐 엉덩이는 절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베란다에서 새어 나오는 존재감을 안 보고 지나가기는 힘들 거 같았다. 분명한 것은 '그것'은 아마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신호를 멈출 것이었다.

 

  베란다에 있는 동백나무가 새빨간 꽃을 완벽하게 개화하여 나를 본다. 완벽한 나선형으로 차곡차곡 펼쳐진, 상처 하나 없는 동백꽃잎은 숨조차 크게 쉬면 무례하게 생각할 거 같았다. 거기에 보름달은 기가 막히게 살짝 앞동산에 걸쳐 넘어가지 않고 동백을 비추고 있었다.


  여왕님께서 납시셨다. 그렇게 여왕님과 보름달, 퇴근한 식물 집사가 모이게 되었다.

  '흠.... 여왕님이 태어나셨군. 그래서 오늘 유난히 달이 크고 맑았구나.'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럼 잠시 어린 여왕님의 달밤 동무가 되어드리죠."

  잠시 나는 집사로 돌아와 차 한 잔의 시간을 보름달과 함께 동백나무의 무용담을 들어주었다.

* 동백나무 Camellia japonica

  쌍떡잎식물 물레나무목 차나무과의 상록교목, 한국에서는 주로 남쪽에서 자생한다. 매끈하고 단단한 회백색 가지에 잔 톱니가 있는 타원형의 반들반들한 잎들이 어긋나 있다. 남쪽에서는 동백꽃이 늦겨울에 꽃망울이 잡히고 초봄에 피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도 점점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조금 개화가 빨라진 거 같다.

  동백은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동백꽃이 지고 씨가 맺히면 씨를 압착하여 기름을 얻을 수 있다. 올레인산이 풍부한 불포화지방산으로 예전에 할머니들은 쪽머리를 하실 때 정성껏 머리에 바르시고 참빗으로 곱게 쪽을 잡으셨다. 이렇듯 피부와 머리카락에 영양을 공급해주는 유용한 식물이다. 가정집에서 동백을 키우는 경우, 해가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테라스나 베란다가 좋고 서울에서 한겨울 옥외 월동은 어렵다. 배수가 잘 되는 마사토에 봄, 여름, 가을에는 토양 표면이 말랐을 때 충분히 관수하고 겨울에는 화분 흙이 대부분 말랐을 때 충분히 관수해준다.

  나의 경험상 너무 따뜻한 실내에서만 키우면 다음 해 꽃몽우리가 잡히지 않는 듯하다. 이듬해 꽃을 보려면 충분히 해를 보여주고 꽃몽우리가 잡히도록 충분한 물과 영양제를 준다. 그리고 냉해를 입지 않을 정도의 0도~5도의 서늘하고 해 잘 드는 베란다에 두고 일정기간 저온으로 키우면 이듬해 꽃을 보는데 성공률이 좀 더 놓다.

  참고로 동백꽃은 한 잎 한 잎 떨어지지 않는다. 가슴에 돌멩이 하나 '툭' 떨어지듯 꽃 하나가 온전히 땅으로 소리 내며 떨어진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 동백을 진짜 알아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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