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뉴스레터 신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구독해 주신 여러분 덕분입니다. 사실 이건 거짓말입니다. 이건 다 제가 만든 것입니다. 앗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신인상을 오직 제 힘으로 이뤄냈다는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신인상 자체를 저 혼자 만들어낸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신인상은 어디 권위 있는 단체에서 준 것이 아니구요. 제가 저에게 수여하는 상입니다. 2022년의 끝을 맞아, 그렇게라도 저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거짓말이라고 하긴 했지만, “이게 다 구독해 주신 여러분 덕분”이라는 말만큼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저 자신을 칭찬할 수 있었던 것에는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의 공이 큽니다. 특히 구독 가입료 외에도 가끔씩 제가 좋아하는 커피 마시라고 보내주시는 유/무형의 선물들과, 짧게라도 적어주시는 답장과 블로그 댓글,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글의 후기를 전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까지 원데이원무비를 쓰지 못했었을 수도 있고, 제가 저에게 주는 신인상 역시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덕분’이라는 말은 정말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원데이원무비는 ‘거짓말’로 지은 글입니다. 저는 영화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허구입니다.(예외인 다큐멘터리 영화가 물론 있기는 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워가며 힘을 모아, 인위적으로 조작한, 현실의 매우 짧은 찰나를, 카메라로 포착한 뒤, 편집으로 교묘하게 이어 붙인 것이, 바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 하나 허구가 아닌 것이 없는 것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과 씨름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데이원무비의 재료는 거짓말이었지만, 그 영화에 관한 저의 생각만큼은 진짜였습니다. 그동안 보낸 모든 메일은 특별한 사정이 없지 않는 이상, 메일이 발송된 그 주에 봤던 영화와, 그 주 금요일 밤까지 했던 생각을 적어보낸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원데이원무비 한 편은, 말 그대로 저의 한 주였습니다. 물론 때로는 평소보다 사유가 짧기도, 또 가끔 완성이 덜 된 무언가를 보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저 자체가 애초에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 주엔 거기까지밖에 생각을 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매주 아쉬운 마음을 가진 채 간신히 ‘발송 버튼’을 눌렀지만, 최대한 꾸밈없는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노력한 것은 진짜입니다. 꾸밈없는 진심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화뉴스레터 같지 않은 영화뉴스레터에서, 가장 ‘레터’스러운 무언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에게 마음대로 줄 수 있는 상의 이름을 ‘대상’이 아닌 ‘신인상’으로 정한 것 또한, 저 스스로도 완벽한 뉴스레터를 완성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하만 비록 대상만큼 훌륭하고 우수한 성과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신(新)인 무언가만큼은 확실히 만들어냈다, 고 자평합니다. 세상에 이런 뉴스레터는 없었을 것이다는 확신. 이 편지를 받아본 사람들 입장에서도, 여러 의미에서(?) 이런 뉴스레터는 받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데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확신을 토대로, 원데이원무비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내년엔 좀 더 큰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원데이원무비 연재자 김철홍이 올해의 뉴스레터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 원데이원무비 42호와 43호는 연말 결산 특집으로 꾸며집니다.
  • 42호에는 연재자 김철홍이 선정한 2022년 베스트 영화 리스트가, 43호에는 그 순위엔 미처 올리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떠나보내기엔 아쉬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원데이원무비 그리고 [1월 한 달 휴식 기간]을 가진 뒤, [2월 4일 토요일]부터 다시 발송될 예정입니다.
2022년 베스트 영화 10편
<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

의심의 여지 없이, 2022년 올해 최고의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실 어느 해에 나타났다 하더라도, 늘 큰 고민 없이 누군가의 베스트 영화 리스트에 꼽힐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세 편의 단편 영화로 구성된 이 영화는, 비록 서사적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지만 영화의 제목인 '우연' 그리고 '상상'이라는 지극히 영화스러운 개념을 통해 느슨하게 꿰어져 있는 영화입니다. 먼저 픽션인 이상, '상상'이라는 개념은 당연히 영화 그 자체를 떠올리는 단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상상'보다 더 마법 같은 단어는 '우연'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에는 그 명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연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세상 모든 것은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통제하고 또 통제하여, 그 순간을 마침내 카메라로 포착한 뒤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그 순간엔 그 누구의 의도와 상관 없는 우연이 깃들어 있게 된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줍니다. 세상은 우연이라는 것. 그러니 절대로 '다시 한 번' 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운명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긴 다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이 영화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또 한 번의 마법 같은 순간을 그려냅니다. 우연, 상상 그리고 마법. 그러나 물론 하마구치 류스케가 카메라로 부린 마법이, 정말로 우연히 만들어낸 것이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감독의 영화를 베스트 영화로 꼽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 관한 긴 글은 23호에 있습니다.
<스펜서>
파블로 라라인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다이애나'가 아니라 '스펜서'인 까닭은 그것이 이 주인공의 진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스펜서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고통스럽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딜 수 없던 스펜서는 마침내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탈출을 하게 됩니다. 감독은 왜 그렇게 스펜서에게 시련을 내렸던 것일까요. 왜 보는 이도 고통스러울만큼 스펜서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줬던 것일까요. 영화를 보며, 저는 그것이 감독이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스펜서가 더 견딜 수 없을 것이고, 그래야 스펜서가 변할 것이고, 그래야 스펜서가 그 궁궐을 뛰쳐나갈 것이고, 그러면 스펜서가 스펜서가 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마침내 스펜서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탑>
홍상수

홍상수 영화에서 공간은 굉장히 중요한 어떤 것입니다. 아니 그 무엇보다 공간이 중요한 무언가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공간 혹은 공간을 암시하는 듯한 제목의 영화가 많습니다. <북촌방향>, <해변의 여인>, <밤의 해변에서 혼자>, <다른나라에서>, <자유의 언덕>, <강변호텔>  등 장소가 명시된 영화도 있고, (어딘가에서)<도망친 여자>나 <당신얼굴 앞에서>, <극장전(前)> 등 방향성이 느껴지는 영화도 있습니다. '탑'은 그 어떤 영화보다 노골적인 장소이며, 동시에 너무나 일반적이고 의미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장소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논현동의 한 건물에서 찍혔기는 합니다.) 영화는 이 공간에 들어간 권해효 배우를 중심으로 시간의 탑을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한 번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올 수밖에 없는 탑. 권해효는 탑을 올라갔다, 마침내 내려옵니다. 많은 것이 바뀌어 있고, 동시에 아무 것도 바뀌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탑이라는 공간만큼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는 압도적인 감흥이 이 영화의 끝에 있습니다.
<소설가의 영화>
홍상수

영화를 찍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기 영화를 찍고 싶어하는 한 소설가가 있습니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영화 감독 지망 소설가에게 그런 걱정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가는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십니다. 홍상수 영화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먹는 장면은 정말 많았지만, 이 영화의 술먹는 장면은 다릅니다. 이 모든 것이 영화를 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로 찍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작가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그건 소설가의 영화와 홍상수의 영화, 그리고 홍상수가 찍은 소설가의 영화가 결합된 어떤 것, 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본즈 앤 올>
루카 구아다니노

<본즈 앤 올>에 관해선 꽤 많은 글을 적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사람을 먹는다'는 비유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그 비유는 원작 소설에서부터 빌려온 것입니다만, 루카 구아다니노는 그 비유를 본인이 꾸준하게 관심을 가졌던 소수자(아웃사이더) 정체성과 연결지었고, 그 외로움과 공포를 호러와 로맨스의 절묘한 줄타기를 통해 완성시켰습니다. 말하자면 호러가 강해질수록 더 로맨틱해지고, 로맨스가 짙어질수록 더 무서워지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입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가까워지고 싶고,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깨물고 싶은 그 입.

<카우>
안드레아 아놀드

소가 나오는 영화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만 나오는 영화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영화입니다. 소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지 않고도 이 인과 관계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소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요? 모를 확률이 높습니다. 소는 인간만큼의 지성이 없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이런 일반적인 명제들을 모조리 부정하고 싶어집니다. 우리는 정말 지성을 가진 동물이 맞는 것인지, 카우가 묻습니다. 카우의 시체가 묻습니다.
<아마겟돈 타임>
제임스 그레이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줄곧 이민자 정체성을 드러내며, 우리 모두 이민자일 수 있다는 얘기를 품위를 유지한 채 말하는 감독입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그 품위를 다소 내려 놓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마겟돈 타임>은 본인이 유년 시절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저질렀던 어떤 실수들을 보여주며, 같이 '아마겟돈 타임'이라는 한 시절을 끝내자고 말하는 영화입니다.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인지, 끝내자는 말을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얘기는 지난 뉴스레터에 적은 글을 참고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김세인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보고 정신을 못 차릴뻔 했었던 기억이 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두 모녀입니다. 둘은 엄마와 딸은 맞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모녀'는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이처럼 모녀라는 개념을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로 해체한 뒤, 진짜 ‘모녀’가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그 질문이 정말 치열하고 집요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영화입니다.

<리코리쉬 피자>
폴 토마스 앤더슨

제임스 그레이와 더불어 항상 가장 '미국'을 담고 있는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의 신작이었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이번엔 누군가가 가장 반짝 반짝 빛났던 한 시기에 카메라를 갖다 댑니다. 그곳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한 사람과,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원하는 사람과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둘은 결국 토핑만 다를 뿐, 같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의 특정 시기를 은유하는 상징적인 장치들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영화이지만, 두 젊은 남녀의 필사의 달리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는 영화입니다.
<애프터 양>
코고나다

올해 드라마 <파친코>로 이름을 알렸던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입니다. 가정용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흔한 SF영화의 클리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그 주제를 우려내는 솜씨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 영화 속 여러 장치들을 통해 질문을 이어가게 만드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입니다. 그 방법에 관해선 씨네21에 자세하게 적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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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무료로 원데이 원무비를 운영하고 있는
연재자 김철홍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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