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받는다 고로 존재한다 (feat. 별샛별)

"경계가 사라지면 새로운 우주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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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비밀요원님에게 보내는 스물두 번째 m&m 입니다. 🧚🏼🧚‍♀️🧚🏿‍♂️ 델타 월딩(∆worlding) 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건강한 에너지(GUN・E) 를 대표해 별샛별이 인사드립니다.

어느새 여름방학🏖 이 저물어 갑니다.

그동안 델타 월딩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공삼 과 👽세레니디피티 의 릴레이 인터뷰를 보내드렸는데요.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별샛별 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별샛별이라는 코드네임의 사연부터 델타 월딩이 추구하는 가치 등 비밀요원님이 가졌던 궁금증을 모두 풀어 드립니다. 델타 월딩에 하고픈 말이 있다면 언제든 메세지 남겨 주세요 🤗

Q1. 지금 어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나?

👉 앉기만 해도 경건해 지는 내 의자에 앉아,

최근에 본 <지진새>라는 영화 OST를 들으며 글을 쓴다.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 마음이 가장 평온해 진다.

Q2. 델타 월딩에서의 역할은?

👉 공식적으로는 대표,

지만 '별님'이라 불러줬으면 좋겠다. 대표를 맡은 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일 뿐, 델타 월딩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작업 등은 모두 함께 토의하고 결정한다.

Q3. 🎨공삼과 👽세레니디피티처럼 학부 전공과 하는 일이 다르다. 문이과를 모두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교안보라는 영역에 발 딛게 된 그동안의 여정이 궁금하다.

👉 질서에 대한 탐구, 라 말하고 싶다. 눈에 보이는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그리고 그 사이 세계의 질서들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달까?

어릴 때부터 하늘을 보는 게 좋았다. 떠다니는 구름이나 빛나는 별을 보는 것도 좋았고,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다. 이런 것들을 떠올릴 때면 몽글몽글해지는 감성을 주체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궁금해 졌다. 왜 구름의 모양은 저토록 다르며 별은 밤에만 볼 수 있는지 그리고 빗방울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건지 등이 알고 싶어졌다. 즉, 눈에 보이는 세계의 질서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과학고를 갔다. 기숙사 생활을 하고 원없이 수학과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었다. 수학과 지구과학을 제일 좋아했고 잘 했기에 천문학자나 수학자를 꿈 꿨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IMF가 발발했다.

나라가 망한다고 했고, 금 모으기 운동을 한댔다. 나도 그간 저축한 금액을 모두 성금으로 냈다. 그런데 당시에 다른 과학고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됐는데 어느 날 교실 뒤가 평소보다 유난히 더 시끄러웠다. 돌아 보니, 아직도 그 날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몇몇 이들이 교대역 파파이스에 있던 불우이웃돕기 성금함을 뜯어와 그걸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나는 얼이 빠진 채 한참을 바라봤다. 성금을 내는 사람과 훔쳐 오는 이가 한 공간에 있다는 게 블랙 코메디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들의 부모님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이들이 많았는데, 뉴스에선 일반 시민들이 흥청망청 과소비를 해 IMF가 터진 거라 말했지만 그렇게 단순화시켜 이해해선 안 된다는 걸 말이다.

처음으로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갔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발견하고 싶달까? 인간세계의 복잡성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고선 그날 일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퍼즐이 될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철학'이라는 걸 하면 IMF 이후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짜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철학과를 갔다. 정답이 딱 떨어지게 나오는 세계에 머물다 이곳으로 건너 오니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정말 재밌었다. 다만 막상 대학에 오니 내가 학문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액티브하고 다이나믹한 일이 내게 더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됐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그 현실을 밑바닥까지 굴러보고 싶기도 했다. 찜질방에서 살기도 했고, 콜센터에서도 근무했다. 그러다 30 중반에 국회 국방위 의원실에서 일 하게 됐는데 음... 또 다른 세계였다.

돈과 권력의 최정점에 선 이들의 신념과 욕망이 날마다 맞부딪히며 어느 날은 멋진 사람이다가도 어느 날은 좀비떼 같고... 처음 국회에 들어갈 때만 해도 내가 품었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최종 종착지라 여겼지만 전혀 아니었다. 되려 원점이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통념을 회의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내가 정말 작은 우물에 갇혀 있었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내가 어디에 발 딛고 서 있는지조차 종잡을 수 없었다. 이 세계를 다시 조각하지 않고선 내가 먼저 증발해 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몰려왔다.

내가 하는 일을 더 잘 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국방 그러니까, 국가안보는 외부정세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기에 한국의 적국이나 국제정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어 보이게 말하면, 자연과학과 철학의 변증법적 합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놓인 세계의 질서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래서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조선(북한)을 비롯해 국제정치 이론, 비교정치 등을 공부했는데 왜 이제서야 이런 학문을 알게 됐는지 싶을 정도로 정말 재밌었다.

다루는 대상이 지구 단위로 넓어지니 숨통이 트이는 데다, 어떤 책을 읽어도 홀로그램처럼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게 너무 황홀해 수업을 듣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흠뻑 빠져 버린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바라보는 시각과 임하는 태도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전엔 무작정 파고 들었다면 '지평'이라는 개념 위에서 업무를 바라 보니 자동으로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이렇게! 델타 월딩도 만들게 됐다.

질서에 대한 탐구, 라 말하고 싶다.

눈에 보이는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그리고 그 사이 세계의 질서들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달까?

Q4. 코드네임으로 🧠별샛별을 쓴다. 별씨 성이 있냐는 물음도 꽤 자주 받는데 어떤 의미인가?

👉 하하 :) 별샛별은 진짜 내 이름이다.

정확하게는 '샛별'은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내 이름이 맞고, 성만 '별'로 바꿔 부르고 있다; 대학에 입학할 당시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이 유행이었다. 어린 나이에 진짜 대단해 보였다.

다만 이런 의문도 들었다. 엄마 성도 아빠 성 아닌가? 그리고 내가 후세를 낳는다면 그들의 성은 2의 거듭제곱승으로 늘어나다 10대손의 성은 1024자리가 되지 않나? 무엇보다 왜 꼭 부모님 성을 써야 돼? 성 같은 거 안 쓰면 안 돼?

그래서 부모님께 이제 성을 쓰지 않고 '샛별'이라는 이름만 사용하겠다고 하니 쏘~ 쿨하게 네 뜻대로 하라고 하셨다. 다만 어느 국가를 가든 행정적으로 성과 이름을 나눠 관리하기 때문에 '샛'이 성이 되는데 괜찮겠냐 물으시며 차라리 성을 새롭게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우와! 이렇게 멋지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니! 왜 나는 한 번도 나만의 성을 만들어 보겠다는 상상을 못했던 거지?

내 나이 20살에 본격적으로 나의 '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러나 내 이름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내가 새벽에 태어났는데 동쪽 하늘에서 샛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며 아버지는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와 이를 향해 떠나는 세 명의 동방박사를 떠올렸다고 하셨다.

나는 샛별이라는 이름을 읊조릴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창조적 에너지가 느껴져 아주 좋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서 샛별(venus, aphrodite)은 사랑의 여신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해 'pluto, hades, 죽음의 신, 파괴적 에너지'를 뜻하는 별을 성으로 쓰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사랑 뒤에 죽음이 뒤따르고 죽음 속에서 사랑이 다시 꽃 피는' 별샛별(PLUTO, venus)이 나의 이름이 됐다. 앞뒤로 불러도 똑같은 별샛별, 돌고 도는 인생사! 처음부터 그럴 작정은 아니었는데 의도치 않게 철학적이고 진중한 이름이 되어 버렸다. 😆

↑ Odilon Redon, <Birth of Venus>

Q5. 코드네임의 의미를 들으니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페미니스트인가?

👉 한 때는 "너 빨갱이지?"라는 물음이 휘몰아 치더니 요즘엔 이게 새로운 유행인가 보더라. ㅎ

그런데 난 이런 용어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에 대해 잘 모른다. 별 관심도 없다.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 명명한 적은 있었지만 나를 앞서는 '이즘(ism)'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나의 실존을 특정 사상에 빗대거나 몇 마디 단어로 형태지으려는 대부분의 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나일 뿐이며, 싫은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싫다. 그러나 나는 무중력 공간에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기에 원자 단위로서 나만의 자유나, 개성, 행복을 극한으로 추구할 수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이전에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파괴된다면 가장 먼저 침해 받는 건 인간으로서 지키고 싶은 우리 모두의 존엄이니 말이다.

그래서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물질이 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파열과 마찰음에 귀 기울이는 데에 힘쓰고 싶다. 힘의 차이가 배타적 태도, 폭력, 억압, 차별, 혐오 등으로 발현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선 설령 내가 직접적으로 피해받지 않거나, 당장에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눈을 뜨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파열과 마찰의 생채기 자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만 좋다고 늘 좋은 것만은 아니랄까? 작용-반작용의 법칙처럼 반작용의 여파도 고려해야 하고, 사회는 유기체라고 하지 않나? 어떤 시점에 어떤 지점에 서 있느냐에 따라 맥락이나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숏컷이라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이자 박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외치는 소리엔 단호하게 틀렸다고 말해야 한다. 너 빨갱이지, 라는 물음처럼 페미니스트인지 대답하라는 요구는 메카시즘의 부활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를 단죄한다는 명분으로 온라인 하위문화나 하위공간을 모두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정규분포의 양극단은 어느 시대, 어느 집단에나 있어 왔기에 더한 음지로 내몰아 확증편향에 빠지게 하기보다 차라리 양지로 끌어 올려 함께 대화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즉, 어떤 일이든 후과를 두루 살피며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때고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후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건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본다. 차이를 좁힐 순 없더라도 인정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방향 자체를 잃어서 안 될 것이다. 착한 페미니즘, 나쁜 페미니즘 같은 언어적 논쟁에 빠지기보다 성・인종・종교 등의 차이로 누군가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양극단을 바라보며 사회 전체를 절망하기보다 정규분포의 중간값을 함께 끌어 올리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양극단을 바라보며 사회 전체를 절망하기보다

정규분포의 중간값을 끌어 올리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Q6. 앞서 찜질방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얼마나 있었나? 그리고 왜 때문인가?

👉 황금찔질방! ㅎㅎ 그렇게까지 오래 있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20개월 동안 살았다.

만 30이 되던 해 여름날 아침, 눈을 뜨니 사방이 하얀 중환자실이었다. 큰 사고가 났었고 이미 며칠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이틀에 걸쳐 온 몸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진행했다고 한다. 죽을 고비를 넘겼고, 의사는 평생 침대 위에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 전망을 쏟아냈다.

음... 산산조각난 내 몸과 함께 모든 꿈과 희망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아직 젊디 젊은 나이에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겨난 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절망도 좌절도 잠시, 나는 재활운동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장기간의 병원 생활 동안 만난 다양한 환우들 때문이었다.

뉴스에서나 볼 법한 대한민국의 각종 사건사고가 내 바로 눈 앞에 모두 있었다; 사실 내가 상태가 제일 좋은 거였다. 수술 조차 못 해보고 마비에 이르신 분들이 정말 많았다.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이불 털다가, 자전거 타다가, 길에서 넘어져서... 평생을 모른 채로 살아 갔을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병원도 사람 사는 곳이라 싸우기도 하고, 함께 울기도 했다가, 다음 날엔 또 웃고 놀며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내가 그간 속해 있었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 안에서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며, 이 세계를 온 몸으로 껴안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다.

한편 요양 생활까지 더해 2년 반 동안 사회적 활동이 단절됐는데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쉽지 않았다. 이전에 하던 일을 관두고 공익단체 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최종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내가 무능한가, 그동안 어떤 생을 살아왔던가 잠시 자괴감에도 빠졌지만... 그런다고 일이 생기진 않는다. 😭

때마침 경력단절 여성이 이슈였고, 이런저런 기사를 보는데 마침 '콜센터'가 눈에 띄었다. '어떤 직장'을 바라보면 좁은 길이지만 내가 원하는 게 궁극적으로 사회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디에 있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결과적으로 몇 년 뒤 국회에 들어가게 됐지만 아무튼 그때로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무작정 콜센터에 지원을 했고, 다만 뭐랄까-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좋은 학교들을 나오고서 콜센터에 간다는 게 한 쪽 머리로는 알지만 다른 쪽 머리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뇌구조는 물론 DNA까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가진 것 없이 다시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찜질방에 들어갔다.

찜질방이라는 곳을 태어나 처음 가봤는데 TV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양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튼 처음엔 한 두 달 정도 살려고 했지만 그곳분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일 하시는 분들은 물론 동네 단골들까지... 그렇게 한 달이 두 달 되고, 네 달이 되고... 결국 20개월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걸 얻었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땐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겠다. 산 넘어 산, 새로운 질문들이 계속 생겨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이다 보니 현재는 여기에 서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런 역경(?)을 딛고 영웅이 탄생한다지만 그것도 다 그릇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가 보더라. ㅎㅎㅎ

그럼에도 좋았다. 내 인생에 좋았던 시절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황금찜질방이다. 종종 생의 절박한 질문을 껴안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내게 조언을 구하면 찜질방에서 일주일 정도 살아볼 것을 권한다.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평온과 고요함은 찾을 수 있다.

↑ 2020, 전국도보투어

Q7. 삶이 어메이징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별님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하나같이 '열정'을 말하기도 한다. 도대체 동력이 무언가? 잠은 자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등을 묻는 이들도 많다.

👉 글쎄... 나는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잠도 충분히 자고, 밥도 아주 잘 먹는다. 오래 전에 비건도 해봤지만 나는 육류 단백질을 섭취해야 건강해 진다는 걸 깨닫고 주기적으로 고기도 먹고, 채소도 과일도 많이 먹는다.

스트레스가 쌓일 땐 특별한 거 없다. 등산을 하거나, 걷는다. 10km 쯤 걸으면 몸도 개운해지고 머리도 맑아져서 아주 좋아한다. 등산용 베낭 하나 멘 채 종종 도보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영화를 많이 본다.

스릴러나 수사물을 특히 좋아하고 요즘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건 덴마크 정치 드라마 <보르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이다. <킹덤>은 앉은 자리에서 혼자서도 한 시간 이상을 떠들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좋아한다.

스트레스가 가장 쌓일 땐 스도쿠를 하는데 일 년에 한 두 번 할까 말까다.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ㅎ

그리고 동력은... 자주 읊조리는 말. "doleo ergo sum" 고통받는다 고로 존재한다. 모두에게나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고 이를 딛고 일어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지 않나? 내 영혼이 갈기갈기 찢기더라도 고통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온 몸에 아로 새기는 과정 속에서 내 삶의 단독자로 우뚝 서는 것,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산다.

내 영혼이 갈기갈기 찢기더라도

고통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온 몸에 아로 새기는 과정 속에서

내 삶의 단독자로 우뚝 서는 것,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산다.

Q8. 클래식 음악과 영화에 조예가 상당히 깊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의 취향이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인가?

👉 80년대에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특별한 유흥거리가 없었지만 경주라는 도시가 참 독특했다.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우선 건드리기만 해도 천 년 단위로 넘어서는 유적 사이를 매일같이 뛰어 놀았다. 도서관과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도 상당히 훌륭했다. 도서관 학교에서는 사서삼경을 배웠고, 박물관 학교에서는 원로 박사님이 신라 유물에 대한 직강을 해주셨다. 시공을 건너뛴 문화적 감성을 일깨우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 전체가 상당히 노력한 것이다.

초등학교는 요즘 말로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주체적으로 글 쓰고 말할 수 있는 방식의 교육 프로그램이 많았다. 동아리 활동으로 사물놀이를 했었는데 여름방학 땐 영남대 대학생들이 와서 한 달 가량 교육을 해주고 갔다. 중학교 땐 중창단 활동을 했는데 교감 선생님이 그 시절 선생님들과 많이 달랐다. 그분 덕분에 일본에 자매결연 맺은 학교에 가서 공연도 하고 왔을 정도다.

경주가 국제 관광 도시다 보니 고급 호텔이 많았다. 특히 대우는 호텔 옆에 '선재미술관'까지 지었다. 나름 대우가 잘 나가던 시절이었기에, 정말로 세계적인 작품들이 전시됐다. 그래서 새로 전시가 열릴 때마다 동생과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간 다음 미술관에서 놀고 오는 게 삶의 소소한 낙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서울에 있는 선재아트센터를 아주 좋아한다.

시대도 잘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유행에 맞춰 피아노 학원을 꽤 오래 다녔고, 덕분에 KBS FM 93.1을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들었다. 아! 아침엔 시낭송 테잎을 들으며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시를 좋아한다.

웃긴 일화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토요일에 수업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 시간에 맞춰 '방화특선'이라고 해서 영화를 틀어줬다. 그런데 난 그걸 '방학특선'으로 알고선 정부가 초등학생들을 위해 영화를 틀어주는 거라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봤다. 방화를 방학이라 오독하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왜 초등학생을 위한 거라 여겼는지... ㅎ

EBS도 애청했다. 주말마다 방영해 주는 영화를 열심히 봤고, 평일엔 저녁 7시가 조금 넘으면 각 분야 별로 명사들이 나와서 진행하는 특강도 있었는데 그것도 즐겨 봤다. 밤 10시 쯤이면 단편영화도 틀어 주고, 무용이나 연극 공연도 보여주고, 미술 작품도 소개해줬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지리멸렬>도 EBS를 통해 처음 봤다. EBS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 수 있을 만큼 프로그램들이 상당히 좋았다.

좀 재미없는 배경 소개긴 한데... 덕분에 나는 공공교육의 힘을 상당히 신뢰하고 이런 공적 프로그램이 더 많이 향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Q9. 델타 월딩(∆worlding), 무슨 의미인가?

👉 ‘worlding’ 이라고 짓게 된 건 기존의 IR(국제관계) 담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됐다.

좁게는 한반도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넓게는 IR이 미중 간 전략적 경쟁에만 매몰되지 않는 거다.

물론 강대국이 세계질서의 흐름을 바꾸고 지도를 재편한다는 건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다. 그러나 현재는 국제관계의 플레이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온라인으로 초연결되어 있으며, 시장 자체가 블록으로 나눠지지 않으며 결국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핵확산이나 기후변화, 사이버 시큐러티, 보건, 교육 등의 의제는 몇몇 국가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과제라는 점에서 외교안보라는 담론 틀 자체를 바꾸지 않고선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새롭다라든지 변화, 혁신이라는 단어는 그저 모호하기만 하다. 모든 전략적 움직임에는 현상에 대한 분석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우리는 ‘좌표찍기’라고 표현한다. 한편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부표’가 필수적이다. 절대좌표를 그리기는 불가능한 시대일 지라도 상대적 거리는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또한, 한국이 G10 국가로서 위상이 변모된 현재를 간과할 수도 없었다. 자만심도, 우쭐함도, 비굴함도 그 어느 것도 없이 국제사회의 책무도 기꺼이 짊어지는 당당하면서도 진솔한 선진국으로 항해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나아가 한반도 프레임에 갇혀 있는 우리 자신의 뼈 아픈 반성도 있었다. 한국만이 아니라 아세안의 위상 역시 이전보다 한층 높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럽은 쇠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레거시의 힘’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남미와 아프리카에 대해선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되묻고도 싶었다.

그래서 이러한 가치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네이밍이 무얼까 고민하다 ‘world’라는 단어에 ing 를 붙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world'는 좌표, 부표라는 단어를 포괄하는 데다 ‘항해’의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ing’는 현재진행형이면서 미래형이기도 하기에 역동하는 세계, 진취적인 한국의 이상과 비전을 담아 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여기에 ∆를 붙임으로써 말 그대로 “네 번째 세계를 향해!” 즉, 1세계, 2세계, 3세계라는 기존 담론에서 벗어나 세계지도를 새롭게 그려내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표현하기에도 적합했다. 덧붙여 외교안보가 diplomacy & defense 인데 ∆ 또한 그리스 알파벳으로 네 번째, 즉 ∆=D 이기에 ‘외교안보’ 담론 플랫폼의 상징적 기호로도 제격이었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네이밍 과정이 단 5분만에 이뤄졌다. 고민 자체는 오랜 기간 이뤄졌지만 누군가 이렇게 해 보는 게 어떨까? 라고 아이디어를 던지니 순식간에 살이 붙으며 정말로 5분만에 끝나 버려 이래도 되는 건가, 다함께 잠시 고민키도 했었다. ㅎ

한국이

G10 국가로서 위상이 변모된 현재를 간과할 수도 없었다.

자만심도, 우쭐함도, 비굴함도 그 어느 것도 없이

국제사회의 책무도 기꺼이 짊어지는

당당하면서도 진솔한 선진국으로 항해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Q10. 여름방학을 맞아 델타 월딩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인터뷰를 진행해 왔다. 여타 뉴스레터와 다른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언가?

👉 이것이 비밀요원님에 대한 예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교안보 뉴스를 큐레이션하고 보여 준다. 포털이나 여타 SNS의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보자는 의도다. 그런데 큐레이션도 관점이다.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자연스레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델타 월딩의 비밀요원님들에겐 비밀작전을 만드는 이들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는 게 신뢰와 책임의 첫 걸음이라 생각했다. 택배나 가스검침 안내 문자에도 누가 배송하고 찾아오는지 이름이 적혀 있지 않나? 어떤 택배회사는 화물트럭에 기사님 사진도 붙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정보를 드려야 할까 논의하다, 이름이 뭐구요, 어떤 대학을 나왔구요, 어떤 직장을 다니구요- 이런 얘기가 과연 유의미한 정보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계적인 나열은 재미도 없다.

한편 델타 월딩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담론 플랫폼이다. 단편적 조각만을 붙든 채 이뤄지는 온라인 댓글 싸움에서 벗어나고, 일방향으로 외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도 벗어나 쌍방향으로 얘기하며 차이를 좁히고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작한 거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누구인지를 먼저 밝히는 게 대화의 도리가 아닐까, 라는 결론을 내렸다.

Q11. 나는 어떤 동료가 되기를 바라나? 델타 월딩은 어떤 조직이 되기를 바라나?

👉 서로의 성장을 자극하고 어제보다 내일이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동료이자 조직!

사실 나는 살아온 생의 다이나믹함에 비해 여전히 성숙하지 못하다. 깨달음도 부족하다. 머리만 비대하게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델타 월딩 동료들 덕분에 나의 모자람이 메워지고 더 나은 내가 되는 느낌을 매일 받는다.

여기서 처음 얘기하는 건데, 모든 걸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지만 그럼에도 델타 월딩을 시작하며 중압감이 많았다. 🎨공삼, 👽세레니디피티보다 나이가 많은 데다 내가 먼저 깃발 꽂고 함께 하자 제의했기에 '멋지게 완성된 정답 내지는 성과'를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끙끙 앓기도 했는데 이렇게 가다간 내가 먼저 넘어지고 델타 월딩도 함께 무너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주의자의 함정같은 거기도 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내 심경, 내 상황에 대해 공유했는데 오히려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대화가 더욱 수월해졌다.

팀 빌딩 기간을 포함해 8개월을 함께 하며 깨달은 건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져선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거였다. 어설픈 배려로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제 생각, 제 감정을 정확하게 얘기하는 게 관계면에서나 업무면에서나 가장 좋다는 걸 델타 월딩을 통해 경험한다.

이런 표현. 심장 담당의 🎨공삼, 세계관 담당의 👽세레니디피티가 없다면 델타 월딩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 덕분에 나는 물론 델타 월딩 역시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일 힘을 얻는다. 그리고 앞으로 합류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 또한 이러한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Q12. 10년 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으면 좋겠나?

👉 바라는 것 없이 그저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사고로 인해 몸이 안 좋으니 정말로 내게 중요한 건 건강이다. 건강해야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덕후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 덕후가 세상을 구원케 하리라! 😉

Q13. 마지막 질문이다. 델타 월딩 비밀요원들과 나누고 싶은 말은?

👉 내가 만든 질문인데... 어렵네! 왜 내가 이 질문을 만들었는지 후회가 된다 ㅎㅎ 많은 말을 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나누며 마무리하고 싶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 받은 환경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칼 맑스, <루이 보나빠르트의 브뤼메로 18일> 중中

🧠 별샛별과 대화하기

알찬 여름방학입니다. 즐거운 오후 시간 보내세요! 종종 인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1년 8월 2일 월요일

크리에이티브 그룹 건강한 에너지(GUN・E)

공삼・별샛별・세레니디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