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서울을 동서남북으로 횡단합니다. 재주가 많은 제자들을 만나러 다니며 서울 구경을 하고 있네요. 제자들 중 애주가가 많아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한잔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평소 저녁 수업 때문에 가기 어려웠던 셰프들의 음식도 맛보러 가고요. 제가 외출이 여의치 않으면 연희동에 오시라고 해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며 미팅 겸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래서 방학도 벌써 한 주가 지나가버렸네요.

  여름학기 등록도 현재 몇 개만 여석이 있습니다. 대기 신청하신 분들한테 순서대로 연락을 드리고 있는데 항상 많은 분들에게 기회를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다음 가을/겨울 학기 등록 땐 더 많은 기회가 갈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5월 중순쯤 여름학기 등록이 마무리되면 2회 정도 특강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6월 4일에는 청담동에서 열리는 마켓에 참가하여 타파스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소식은 지금처럼 히데코레터와 인스타그램에서 전하겠습니다.


불두화가 우아하게 피는 연희동 마당에서

히데코 올림

  <지중해 요리반>은 요리교실의 시그니처 수업입니다. 이탈리아, 남부 프랑스, 스페인, 터키, 모로코,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지역의 여러 가지 요리를 한 밥상이 되게끔 구성하려고 노력해요. 평소 손쉽게 차릴 수 있도록 레시피를 준비합니다. 다른 수업도 마찬가지지만 나라별로 테마를 정하더라도 한국 제철의 식재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드리고 있어요. 곧 출간될 개정판 <지중해요리>에 소개될 요리들도 구성에 넣을 계획입니다. 6월부터 진행하는 지중해 요리반에 새롭게 참여하시는 분들을 위해 레벨별로 수업을 준비했어요. 수업에 대한 기대를 읽다보니 더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수강생 분들의 기대✍️

😄 요리에 관심이 많아 틈나는 대로 해보고 책도 찾아 읽고, 열심히 배우기도 합니다. 히데코 선생님의 요리는 선생님이 출간하신 다양한 책들을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선생님께 직접 배워보고 싶어요!! 단순한 스킬 말고 식재료와 요리 원리에 대해 폭넓게 배워보고 싶습니다. 😁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직장인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게 제 스트레스 해소법이에요. 맛있게 만드는 ‘한끝의 차이’가 없어 사 먹기를 더 즐겨하다가 선생님의 요리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갈하고 따뜻한 음식, 여러 가지 요리을 열린 마음으로 많이 배우고 싶어요!

(히데코 요리교실의 수강생분이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히데코 요리교실 대기자 등록 안내>
쿠킹클래스 대기자 등록을 하시면
가을학기 등록 시 잔여석을 파악하여
순서대로 문자 연락 드립니다.
*여름학기 대기자 우선 연락 중

내 인생의 리셋 버튼, 그 남자의 완두콩밥

 

  완두콩의 제철은 5월에서 6월까지다. 시장에 완두콩이 보이기 시작하면 몇 킬로그램은 거뜬히 주문해둔다. 쓰임새가 다양해 신선할 때 얼려두면 겨울까지 요리교실의 든든한 재료가 된다. 다만 대량 주문한 완두콩 꼬투리를 까는 일이 만만치 않아, 주말에 맞춰 주문하고 가족에게 부탁한다. 남편도 그 많은 완두콩을 영화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잠자코 까준다.

  완두콩은 지중해 연안 지역이 원산지로, 스페인에 살던 무렵 초봄이면 완두콩을 데치거나 푹 삶아서 올리브오일을 듬뿍 뿌려 먹곤 했다. ‘완숙콩’이라고도 부르는 이 콩을 엄마는 늘 ‘완두콩’이라고 부르며 봄이면 매일같이 아침에 완두콩밥을 지어주었다. 초봄에 덜 자라 부드러운 상태로 수확한 것이 완두콩, 완전히 익은 뒤 수확한 것을 완숙콩이라고 하며 가장 이른 시기에 수확해 꼬투리째 먹을 수 있는 것은 ‘꼬투리용’이라고 전문서에 적혀 있었다. 즉 한국에서 5월 말부터 6월 초에 수확되는 것은 충분히 익은 완숙콩이다.

  어릴 적부터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엄마의 완두콩밥만큼은 좋아해서 봄이 오면 완두콩밥을 먹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꼬투리를 까주면 처음 만드는 요리는 완두콩밥이다. 흰쌀에 청주와 소금을 약간 넣어 안친 후, 갓 지어 따끈따끈할 때 콩밥을 주걱으로 살살 섞어준다. 간이 밴 밥, 완두콩의 고소한 향과 풍미가 입안에서 제대로 어우러질 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진다.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엄마의 맛’이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지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독을 느꼈다. 그곳에서 실현하지 못한 꿈을 이어나가기 위해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서울로 거점을 옮겼다. 여전히 이방인이었기에 늘 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유럽에서처럼 큰 고독감에 사로잡히진 않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연수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며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는 바쁜 생활이었다. 친구들과의 교류도, 수업도, 연애도 열심히 했다.

  20대 후반에는 일본으로 돌아가 도쿄에 있는 대학원에서 수학하며 한국의 문화인류학 교수를 꿈꾸었다. 곧 일본에 돌아갈 거라는 전제하에 지금은 남편이 된 병진 씨와 끝이 보이는 연애 중이었다. 서울을 떠나던 날 새벽 무렵, 공항 갈 준비를 하던 나에게 그가 아침을 차려줬다. 완두콩밥과 인스턴트 미역국, 스팸, 달걀프라이, 김, 멸치볶음이 올라간 작은 소반. 처음으로 한국다운 평범한 아침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병진 씨의 완두콩밥은 특별한 비법 같은 게 없었을 텐데도 엄마의 완두콩밥보다 몇 배는 맛있게 느껴졌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완두콩밥을 2인분만 지을 때는 꼬투리가 제거된 완두콩을 한 팩씩 사곤 한다. 그러고 보니 요리교실에 필요해서 며칠 전 주문한 꼬투리를 까지 않은 완두콩 1킬로그램이 든 종이봉투가 현관에 방치되어 있다. 오늘은 남편에게 꼬투리를 까달라고 해야겠다.
히데코 유니버스에 떠도는 완두콩 행성.

5월 한달 간 '집'이라는 주제로 히데코레터 구독자의 글이 연재됩니다.


구독자 소개

잠시 프라하에 살았습니다.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관심사가 비슷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된 공간에서 자립의 시간을 얻는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활짝 연다. 뒤돌아 부엌 코너로 가서 커피 한 잔을 준비한다. 커튼을 걷어 하늘을 본다. ‘오늘은 날씨가 어떨까’. 모카포트가 끓으면 몇 걸음을 옮겨 가스불을 끄고 향이 진한 커피를 컵에 붓는다. 한 모금 마신다. 또 하루가 시작됐구나, 조용히 생각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일상은 누군가에겐 평범하겠지만 나에겐 조금 남다르다. 아침을 맞는 나만의 습관이 만들어진 곳, 내 첫 독립을 이룬 곳, 이 집의 일상이 갖는 의미다. 

 

#프라하 어느 동네의 생애 첫 번째 집


 집을 구한 후 처음 들어서던 날을 기억한다. 다른 나라에 와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은 한국과는 매우 다른 건물의 구조 때문이었다. 내 집은 3층의 가운데 집이었다. 부엌 딸린 방 하나, 침실 하나, 이렇게 두 개의 룸이 있었고 욕실과 화장실은 각각 분리되어 있는 구식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높은 천장 아래로 따뜻한 햇살이 마룻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공간을 어떻게 꾸밀까를 생각하니 설렜다. 길어야 1, 2년 살게 될 집에 원하는 만큼의 가구를 모두 구입해 넣을 수는 없었다. 최소한의 물건만 들여야 하기에 그동안 고려했던 것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했다. 큰 테이블은 꼭 갖고 싶었다. 여행 올 친구들을 위해 여분의 침구도 준비했다. 옷장은 가구대신 튼튼한 종이 박스로 대신했다.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어줄 조명은 꼭 필요했다. 의자, 커튼, 작은 가구 등은 가장 저렴한 것 중 취향을 고려해서 하나하나 직접 만져보며 골랐다. 

  몇 안  되는 가구들을 배치한 후 벽의 여백을 채웠다. 사진들과 영화 리플릿은 한국에서부터 챙겨갔다. 액자에 하나하나 넣는 보통의 방법도 있겠지만 손수 만들어 꾸몄다. 이케아 박스들로 만들었다. 친구와 프라하로 처음 여행할 때의 영수증과 입장권, 교통티켓을 그때 찍었던 사진과 함께 붙여나갔다. 한 박스는 아예 엄마와 함께한 프라하 여행 기록으로만 채웠다. 비슷한 톤을 가진 영화 리플릿을 모아 붙이기도 했다. 판넬처럼 보일 법한 것이 있으면 모두 액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침실과 거실에 각각 나눠 배치했다. 한국을 떠나왔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과 추억이 담긴 나만의 액자가 있으니 안정감이 들었다. 보고 싶을 때면 언제나 그 액자 곁으로 가서 얼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 친구 중 몇몇은 프라하의 내 집에 왔을 때 이 액자들을 보고 반가워했음은 물론이다.

#나다움의 기준

 

  프라하의 집은 편하게 머무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부모님이 가꾸신 한국에서의 집과는 달랐다. 물건을 집 안으로 들일 때 ‘혼자 살게 된 첫 번째 집’이라는 점은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 기준대로 정말 원하고 필요한 것을 가려냈다. 자그마한 화분과 꽃을 들여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화분들과 두 번의 계절을 보냈다.  


  혼자 살게 되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집을 어떻게 꾸며 살기로 결정했는지 스스로를 지켜보면서 양보할 수 없는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은 나를 돌아볼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은 집이 주는 현재의 안정감 때문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서 살든지 나답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그때 얻었다. 독립된 공간에서 자립의 시간을 얻은 것이다. 

<히데코레터 프렌즈 이야기>
5월의 주제 : 나의 집!
여러분의 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여러분의 취향이 묻어 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히데코레터에 나눠주세요! 
요즘의 고민이나 어제의 불편한 마음을
히데코에게 들려주세요!
그에 맞는 레시피를 알려드릴게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마음을 전하는 일,
히데코가 도와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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