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벽돌이 아닌 진짜 벽돌 ]
- 평화나무농장 원혜덕
광복절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저녁에는 태풍이 지나가는 것처럼 바람도 세게 불었습니다. 그런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비도 내리지 않고, 해도 내리 쬐지 않은 쾌적한 날씨였습니다. 그 시간에 저와 남편은 철원에 있는 국경선평화학교 착공식에 참석해 있었습니다. ‘남북평화를 위해 일할 사람을 기르기 위해' 세워진 국경선평화학교는 10년 전에 문을 열었습니다. 영국에서 평화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은 정지석 목사님이 한국에 돌아와서 평화 운동을 벌이고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철원 국경지대에 들어와 국경선평화학교를 세웠습니다.
강원도 소유인 평화 문화관을 기적처럼 얻어서 평화학교를 운영해 왔습니다. 평화 문화관은 DMZ 남방 한계선 바로 앞에 위치한 평화 문화 광장 안에 있는 건물입니다. 상징성도 있는 건물을 무상으로 빌려 쓸 수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으나 사실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교실로 사용하는 평화 문화관이 민통선 안에 있어 민간인들은 매번 입구에 있는 검문소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또한, 해가 뜬 후에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해가 지기 전에는 나와야 해서 수업이나 평화 프로그램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매해 새로 계약을 해야 했는데 관의 건물이라서 한 민간단체가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을 지속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교실로 쓰던 평화 문화관 출입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정상적으로 평화교육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3년째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경선평화학교는 학교 건물을 짓기로 했습니다. 이사회에서 의논에 의논을 거듭하고 있던 지난 겨울에 어느 후원자 한 분이 학교 건물을 지을 땅을 매입하여 기부했습니다. 이 일은 국경선평화학교를 짓는 실제적인 첫 걸음이 되었습니다. 아주 큰 내딛음이었습니다. 학교 부지는 왕건이 궁예의 부하 장군이었을 때 거주했던 마을인 월하리의 산 아래에 있습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입니다. 학교 건물을 지어주기로 한 이는 그 자리에 서 있는 식품 공장을 그대로 살리자고 했습니다. 4년 전에 부도가 나서 그동안 쓰레기장처럼 방치되어 있던 건물입니다. 그는 성미산 마을을 지은 사람입니다. 오래 된 식품공장을 헐어내고 새로 짓는 것이 쉽지만 이야기가 담겨있는 건물을 그대로 살려 쓰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니까 가능한 일이었지만요.
제 남편은 국경선평화학교의 건축위원입니다. 남편은 우리 집에 온 사람들과 길게 이야기 할 시간이 있으면 평화학교를 지을 벽돌을 기부하라고 권합니다. 지난 5월에 풀무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농장에 와서 두 주간 농사실습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국경선평화학교를 지을 벽돌 한 장씩을 기부하면 의미있지 않겠냐고 권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에게까지 권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펄쩍 뛰었습니다만 남편은 평화의 주춧돌을 놓는데 학생 개인이 벽돌 한 장을 내놓는다는 것은 본인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하며 굽히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제 걱정과는 달리 기꺼운 마음으로 각자 벽돌 한 장이나, 벽돌 2장, 또는 벽돌 3장 값을 각각 남편에게 맡기고 떠났습니다.
국경선평화학교는 10만 명의 평화시민이 벽돌 한 장 값인 1만원씩의 기부를 하자는 건축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적은 돈으로 참여하는 평화운동입니다. 국경선평화학교를 지을 벽돌 한 장, 또는 두 장이나 석 장을 기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학교 건물 벽면에 기금을 기부해주신 분들의 성함을 다 기록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름 적히려고 벽돌 값을 보낼주실 분은 없겠지만 국경선평화학교에서는 보내주신 분들의 정성과 마음을 끝까지 기억하고 싶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