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로 가는 버스에서 메일을 보냅니다. 그래서 조금 늦게 메일을 발송하게 되었네요.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항상 미리 뭔가 하는 걸 실패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번 메일에는 작년 전주 영화제에서 겪은 특별한 일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려 합니다.



[NO.009]


인터뷰의 추억 : 전주 그리고 파주


2022년 4월 30일



작년 전주에선 두 가지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제가 이미 제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여기저기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 에피소드인데요. 정재훈 감독의 <Trans-Continental-Railway>라는 영화를 보고 일어난 일입니다.


나름 영화제깨나 갔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이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 자체가 태어나서 생전 처음 보는 형식의 영화였던 것도 맞기는 합니다. 52분 동안 아무 등장인물과 대사 없이, 오직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영상과 록 밴드 연주 음악만 나오는 영화였는데요. 저도 다 보고 나서 정말 영화가 이렇게 끝나버린 건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한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관객 한 분이 스크린 앞으로 나와 관객을 향해 한 마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예술 영화라고 하지만 정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영화제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누군가의 사과가 있기 전까지는 이 영화관을 뜨지 않겠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그 관객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가장 먼저 영화관을 나왔기 때문에 그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저 영화제 봉사자 분만 고생이겠거니 했고, 이 일화를 블로그에 업로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 일은 그저 저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될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뒤 전주영화제 관계자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게 되었는데요. 영화제 상영작 몇 편을 특별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중인데, 저에게 <Trans-Continental-Railway>의 감독과의 대화 행사를 진행할 수 있냐는 내용의 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일엔 저에게 연락을 주신 이유가 따로 적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인상적으로 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여 영화관에서 직접 이 영화를 관람하고, 특별한 에피소드를 경험했다는 점이 진행자에 적합하다고 느끼셨다는 말을 하셨는데요. 그것이 정말 ‘적합’한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경험을 하고 그걸 블로그에 적었다는 것, 바로 그 행위가 감독에게 질문하는 사람의 태도와 조금은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두 번째 특별한 일은 더욱 큰 우연이 겹친 일이었습니다. 작년에 저는 씨네21에 전주영화제 추천 작품 기사를 썼었습니다. 당시 추천작 선정을 맡은 여러 명의 사람에게 무작위의 영화가 배정되었고, 그 중 제가 골라서 봤던 영화 중 한 편이 아르헨티나 감독 나탈리아 가라얄데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파편>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제의 국제 경쟁 부문에 선정된 작품이었는데요. 그래서 상당히 추천할만한, 그러니까 영화의 메시지도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영화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설마 어떤 상을 받게 될 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튼 그렇게 추천작에서도 최종적으로 제외를 시켰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영화제 일정 마지막 날 밤, 갑자기 씨네21의 기자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간에 통화를 해본 적이 없는 사이었기에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요. 더 당황스러운 것은 기자님이 제게 건넨 말이었습니다. 기자님은 제게, 철홍씨가 봤던 <파편>이 경쟁 부문에서 (무려) 대상을 받게 되었다며, 그 수상 소감 인터뷰를 직접 진행 후 기사를 써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감독과의 첫 인터뷰’를 지구 정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 감독과 하게 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아르헨티나 얘기를 할 때마다 항상 ‘지구 정 반대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늘 너무 클리셰고, 별로고, 지겹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직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 보니 정말 지구촌이 한 가족이구나, 위 아더 월드구나 같은 뻔한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 저 자신을 보고 반성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성을 한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했던 것과 달리 무척 횡설수설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통역을 거쳤기에, 온라인이었기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 직접 대면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대상을 수상한 감독에게 무슨 무례를 범하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참 끔찍하다는 생각을 요즘도 가끔 하곤 합니다.



그런 제가 지난주엔 다른 인터뷰 하나를 진행하고 왔습니다. 4 21 개봉한 <위대한 계약: 파주, , 도시> 만든 정다운, 김종신 감독에 관한 인터뷰였는데요. 인터뷰 역시 제게 조금 특별한 인터뷰일수밖에 없었던 것은요, 이것이 제가 감독과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 최초의 인터뷰였기 때문입니다.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 도시> 파주 출판 도시의 탄생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입니다. 감독은 2019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 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 건축 영화의 매력을 보여준 있습니다. 건축 영화의 매력이 무엇이냐하면 다른 특별할 말하는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예술 작품인 건축물을, 다시 예술적으로 영화에 담아낸 것을 말합니다. 영화가 규모가 작은 다큐멘터리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2 3천여 명의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받았다는 자체가 매력이 상당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생기신다면 영화를 통해 건축 영화에 입문해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타미 준의 바다> 감독이 이타미 준의 작품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자신의 연출 방식으로 재해석해낸 작품이라면, <위대한 계약>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촘촘히 따라가는 영화라고 있을 같습니다. 파주 출판 도시를 산책하는 기분이 달까요. 동시에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건축가와 출판주들로부터,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듣는 같기도 합니다. 김종신 감독님은 인터뷰에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 가장 힘들었던 점이, 과묵한 어르신 분들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설득을 하는 과정이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감독님 덕분에 우리는 힘든과정 없이 영화를 통해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파주 출판 도시에 있는 멋진 건물이 등장할 때마다 함께 나오는 자막입니다. 바로 건축가와 건축주(건물주) 이름이 나란히 적힌 채로 등장한다는 것인데요. 예술가와 돈을 (?) 사람의 이름이 같은 순서에 동등한 위치로 있다는 것이, 우열이 없는 이상적인 관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막은 위대한 계약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이라고 수도 있겠습니다. 관련해서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건축가와 건물주의 관계가 영화의 감독과 투자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영화와 건축이 상당히 많은 유사점들을 갖고 있다는 것은 감독님이 직접 언급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으로 영화를 보게 되면, ‘위대한 영화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결과도 결과지만 제작 과정이 아름다운 영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보다 재밌는 것은 감독님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었습니다. 정다운 감독과 김종신 감독은 동료이자 부부 사이시기도 한데요. 분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분이 말씀을 하시는 모습,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보충 설명을 하시며 조금 충만한 내용을 완성시키시는 모습과,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상대방이 말할 모습을 세심하게 지켜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래서 얼굴 보고 인터뷰 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소중한 경험이었구요. 나아가서 영화평론가 계속 하길 잘했다! 생각이 들게 , 며칠 감독님으로부터 황송한 연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물론 예의상 보내주신 것이겠지만요)  연락 역시 이런 문자를 해본 적이 없는 사이였기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런 당황스러움이라면 맨날 받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문자깨나 받아봤지만 이런 문자는 처음이었기에, 문자를 여러분께 공유하며 이번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sti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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