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곧 받게 될 검사를 기다리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O.12]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철홍 (1)

2022년 5월 21일


저는 암환자였습니다.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였’으니까요. 얼마 되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불과 2년 전 12월,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언제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저와 함께 했었던 혹이 악성종양이라는 것이 확인되어 암 판정을 받았었습니다. 아직도 그때가 기억이 나네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너 이제 암 환자임’이 적힌 증명서 같은 것을 받았는데, 웃긴 건 그걸 제가 직접 원무과에 제출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이걸 제 손으로 내밀어야 된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더라구요. 접수 받으시는 분께서 저를 딱하게 보실 것 같기도 했구요, 그래서 뭔가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사실 정말로 그렇게 딱한 상황은 아니었기는 했습니다. 암은 암이었는데, 다행히도 생명이나 장기에 직접적인 데미지를 주는 위치에 있던 것이 아니었거든요. 몇 개월 잘 못 걷기는 했지만 비교적 간단한 외과 수술을 통해 잘라내는 것만으로 깔끔한 치료를 할 수 있었고, 정말 운이 좋게도 다른 곳으로의 전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완치 판정을 받고, 암환자’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근데 암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암 세포가 몸에 한 번 생겼다는 것은, 제가 언제 또 암이 될 수 있는 세포나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라서요. 그건 그 이후로도 꾸준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그래서 가끔 병원을 찾고는 합니다.

그렇게 찾게 된 병원에서, 아직까진 다른 안 좋은 것들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아 이번에 하나 찾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광명이랄까요..? 어떤 종교적인 사인을 말한 건 아니구요. 진짜 말 그대로 밝은 빛을 봤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니까 빛이 보이더라구요. 순간 빛처럼 뇌를 스치고 간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프로 게이머에게 바치는 헌정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선수의 이름은 김’경보’이고, 그래서 그 선수의 영어 닉네임은 ‘alarm’입니다. 혹시 너무 유치한 작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끔 철 철, 붉을 홍 해서 RED IRON이 아니냐고 놀림을 받았던 입장에서, 개인적으론 정말 멋있는 이름이라는 생각하는데요.. 아무튼 알람 선수는 ‘오버워치’라는 게임의 프로 게이머이고, 이 게임은 총 상금이 400만 달러가 넘을 정도로 큰 규모의 리그를 보유한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리그에서 알람 선수는 2020년 데뷔 첫 해에 올해의 신인상(Rookie of the Year Award)을 받았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같은 ‘였습니다’인데, 이번의 ‘였’은 조금 슬픕니다. 2001년 출생해 만 20세가 되기도 전에 이름을 알린, 정말 말 그대로 장래가 촉망되는 신성 알람 선수는 2021년 11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가족 분들의 뜻에 따라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 헌정 영상은 오버워치 리그 공식 유튜브에 업로드 된 영상이었는데요. 무엇보다 그 영상의 설명글에 적힌 내용이 정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거기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알람 선수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오버워치 리그는
"올해의 신인상 (Rookie of the Year Award)"의 명칭을
"알람 올해의 신인상(Alarm Rookie of the Year Award)"으로 개칭합니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Cleo From 5 To 7)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감독 아녜스 바르다가 1962년에 발표한 영화입니다. 클레오라는 한 인물의 하루, 특히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만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제목과 달리 90분짜리 영화입니다. 마치 '하루에 영화 한 편’이라면서 일주일에 한 번만 글을 보내는 원데이원무비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좋아해서 이런 부분까지 귀엽게 느끼나봅니다.

영화는 클레오가 타로 카드를 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클레오는 무엇보다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얼마 전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받았는데, 아직 그 결과를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클레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이 암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카드에 어쩐지 죽음과 관련이 있는 듯한 그림이 나오자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이 병원에서 이미 눈치를 챘다는 말을 하는데요. 그러면서 “결과는 보나마나”라고 하며 카드를 뒤섞어버리고 맙니다.

타로 집을 나오면서 클레오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영화는 계속해서 나쁜 일을 상상하는 클레오의 방황을 보여줍니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오랫동안 ‘파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던 영화라고 하는데요. 클레오의 방황이 꽤 깊었기에, 우리는 더 다양한 파리의 풍경을 영화를 통해 구경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클레오가 들르는 카페와 옷 가게, 지나다니는 길거리와 공원까지. 클레오의 상황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클레오가 휘젓고 다니는 파리만큼은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수긍이 갔습니다.

알람 선수 얘기를 하다가 이 영화 얘기를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실은 침대에 누워 검사를 받을 때 제가 먼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이 영화였습니다. 제가 받던 검사는 초음파 검사였습니다. 담당자 두 분이 제 혹이 있었던 자리에 젤을 바르고 기구를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초음파가 제 몸을 관통함으로써 얻어내는 화면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는데요. 그때 두 분이 무언가 대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대화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의학 드라마에 나올법한, 그래서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의 대화였지만, 저는 슬기롭게도 이런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이거 A 맞아? 아니 B인 거 같은데? 다시 올려봐. B 맞네. 한 번 더 봐보자. 아니 아니 더 왼쪽에.

그 대화를 듣던 저는 마치 클레오가 그랬듯,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한참 제 허벅지 내부를 관찰하시던 두 분이 끝내 저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를 알려주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나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제 주치의 분께 먼저 전달된 후,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저에게 올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그 날이 화요일이었고 다시 병원에 가는 날은 목요일. 그러니까 저는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철홍>을 찍게 된 것입니다.
  
다음 주에 계속.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네이버 영화 시리즈온에서 구매/시청이 가능합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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