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이거 A 맞아? 아니 B인 거 같은데? 다시 올려봐. B 맞네. 한 번 더 봐보자. 아니 아니 더 왼쪽에.

 

그 대화를 듣던 저는 마치 클레오가 그랬듯,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한참 제 허벅지 내부를 관찰하시던 두 분이 끝내 저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를 알려주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나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제 주치의 분께 먼저 전달된 후,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저에게 올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그 날이 화요일이었고 다시 병원에 가는 날은 목요일. 그러니까 저는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철홍>을 찍게 된 것입니다.

 

 

[NO.13]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철홍 (2)

 

2022년 5월 28일

 

 

병원에서 나온 저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봤습니다. 캬 역시 영화 평론가는 그 상황에서도 영화를 봐, 심지어 뭔가 비슷한 분위기의 <드라이브 마이 카>야, 라고 생각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일 때문에 본 거였습니다. 무슨 일이었냐면 그날이 바로 제가 원데이원무비에서도 홍보를 했었던 [김철홍 vs 아카데미 영화모임]의 세 번째 모임날이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네 번째 모임까지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무튼 그 모임을 준비하느라 영화를 본 것이었구요. 원래는 그 영화와 억지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뭔가 써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차라리 최근 개봉한 같은 감독의 영화 <우연과 상상>이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단순히 <우연과 상상>이 저를 더 웃게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며 웃는 경험이 우울한 상태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한 대학의 연구 결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엔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클레오는 친구를 만나 차를 타고 파리 한 바퀴를 합니다. 그러다 함께 영화관의 영사실에서 일을 하는친구의 애인 라울을 만나러 갑니다. 영사실에 도착한 친구는 라울에게 클레오의 몸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때 라울이 마침 코믹 영화를 틀 참이었다는 말을 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웃고 나면 조금 기분이 좋아질 거야.”

  


저는 이 말이 다른 어디도 아닌 영사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 말이었기 때문에, 대학 연구 결과 급의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사실에서 마치 현미경을 내려다보듯 객석을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어떤 장면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또 그걸 매일하니 꽤 많은 데이터가 쌓였을 것이니까요. 그래서 어디 가서 “웃고 나면 조금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는 말을 할 때만큼은, 굳이 유명 대학교나 교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클레오의 친구가 하는 한 마디가 깨알 포인트입니다. “클레오는 지금 아프니까, 짧은 걸로 틀어.”라는 말을 하는데, 아무리 재밌는 영화여도 몸이 아프면 긴 영화를 보기 힘든 게 맞긴 하잖아요. 1960년대 프랑스에서도 긴 영화는 힘들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조금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도 가끔 긴 영화를 보며 잘 집중하지 못하거든요. 화요일에 본 3시간짜리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의 고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기 하루 전인 수요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저는 그때 시사회로 <범죄도시2>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요. 신나게 재밌는 영화 보면서 웃고 기분 좋은 상태가 되었는데, 나와서 핸드폰을 보니 그 번호로부터 이런 문자가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아뿔싸’라는 말을 적고 나니 이 표현이 별로 맛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신 쓸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네요. 혹시 좀 더 세련된 표현을 알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제보바랍니다. 그런데 아무튼 그때는 아뿔싸였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지금 당장 병원 오라는 것일 수도 있구나. 마동석 5:5 애드립 보면서 낄낄거릴 때가 아니었구나. 내 생과 사가 5:5였구나,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는데 그냥 괜찮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뭔가 글에 극적인 장치를 넣어보려 했는데 조금 귀찮아서 그냥 씁니다. 그때 나눈 통화에서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아무 것도 없다고, 그래서 심지어 목요일에 병원을 올 필요도 없다고, 그래서 전화를 한 거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 통화를 메가박스 코엑스점 앞에서 한 것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져서 바로 쇼핑을 해버렸던 기억이 있는데요. 정신을 차린 다음 결제 내역을 보고 다시 아뿔싸를 외쳤던 것은 비밀입니다.

 

이렇게 허무한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를 왜 글로 썼냐구요? 그건 제가 아니라 아녜스 바르다 감독에게 따지는 게 더 먼저일 수도 있습니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도 결국엔 클레오가 의사의 괜찮다는 말을 듣고 끝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와 제 이야기의 절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번 글이 탄생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데요.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가 ‘5시부터 7시까지’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6시 반’에 괜찮다는 말을 들으며 90분 만에 끝나는 것처럼, 제 이야기 역시 목요일까지인 줄 알았지만 수요일에 예고 없이 전화를 받으며 끝나니까요. 거기에 더해 결말의 내용은 극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 결말, 그 과정이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한 번 적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철홍>은 막을 내리고..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가 한 편 더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프로게이머 알람 선수의 영화입니다. 침대에 누워 죽음을 생각했을 때, 저는 알람 선수를 떠올렸습니다. 알람 선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어워드의 이름 앞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지금 죽으면 내 이름이 어디에 남게 될 것인가 상상해보았습니다. 혹시 ‘김철홍-씨네21 영화평론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여태껏 받은 상이 이것밖에 없어서 한 번 적어 보았습니다. 상을 더 받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고, 기분이 한결 더 나아졌습니다.

 

클레오는 친구의 차를 타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닙니다. 클레오가 얘기합니다. “거리엔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야 해. 삐아프 가, 아즈나부르 거리(Piaf Street, Aznavour Avenue). 그 사람이 죽으면 다시 이름을 바꾸고.” 클레오가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붙이고 싶었는지, 어딘가에 붙이고 싶기는 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독 바르다는 그 이름을 영화의 제목에 붙여 주었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누군가가 내 이름을 써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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