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를 마침내 다 보았습니다. 저는 원래 드라마를 잘 안 봅니다. 특히 넷플릭스 시리즈가 아닌 한국 드라마 같은 경우는, 일 년에 1~2편을 볼까 말까 하는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드라마를 보는 것이냐, 그 한 편은 어떻게 고르는 거냐, 하신다면 일단 저는 기본적으로 일년 내내 레이더를 켜놓은 상태로 공개되는 모든 작품을 지켜보는 편입니다. 그중 배우나 제작진의 이름에 따라 조금 호기심이 생기는 작품이 나타났다면, 이제 숨을 죽인 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핍니다. 왜 숨까지 죽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관례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NO.15]

 

포기의 포기 : <나의 해방일지> 후기

 

2022 6 11



원래 뭔가 기다릴 때는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적에게 알리지 않아야 하는 법… 뭐 이렇게 상상의 적을 만들면서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니구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을 들락날락하다 보면 자연스레 반응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반응을 보고 땡기면 봅니다. 반응이 많다고 무조건 다 보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의 세계>나 <갯마을 차차차> 같은 작품은 정말 반응이 뜨거웠지만 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 같은 작품’ 같은 표현을 썼지만 수준이 낮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두 작품을 못 봤기 때문에 수준의 높낮음을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보는 반응 중 늘 참고하는 사람이 한 명이 있습니다. 엄청난 팔로워 수를 보유한 유명한 인플루언서는 아닙니다만, 제가 아는 한 그분은 꽤 많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바로 엄마입니다. 엄마는 안 그래도 드라마를 많이 봤었던 사람인데, 집 티비로 넷플릭스를 시청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는 정말 많은 드라마를 정주행해버리는 저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자주 엄마에게 반응을 묻습니다. 이건 사실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숨을 죽인 채 밥만 먹는 식탁이 조금 어색할 때, 대화가 그리 많지 않은 모자 관계를 약간이나마 회복하기 위해 제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거 요즘 인기던데 이거 봤어? 어때? 재밌어? 왜 재밌어? 왜 재미없어? 다 먹었어. 저녁은 밖에서 먹고 올게, 합니다.


<나의 해방일지>에 관한 엄마의 첫 반응은 시큰둥이었습니다. 조금 지루하다, 별로 사건이 없다. 엄마는 사람들이(특히 내가 말하는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니까 억지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드라마가 종영되지 않은 어느 날부터 다시 1화를 정주행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나의 해방일지>를 정말 봐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을 먹.. 지는 않았습니다. 실은 엄마의 반응과 상관없이 볼 생각이었습니다. 요즘 대세 배우인 손석구의 퍼포먼스가 보고 싶었고, <나의 아저씨>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엄마 때문에 <나의 해방일지>를 봤다고 적으면 뭔가 기승전결이 좋은 드라마 같은 글을 완성시킬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드라마 같지 않은 것이니까요. <철홍 일지>의 철홍은 그냥 자신이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는 캐릭터이고, 밥 먹고 바로 외출을 할 것이고, 그러면서 저녁에 또 집에 없을 것이고, 그래서 오후 내내 집에서 혼자 드라마를 보고 있을 엄마에게 말 한마디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는 그날 서울에 갔습니다. 홍대/합정은 40분, 종로 쪽은 50분, 강남은 거의 한 시간, 저는 <나의 해방일지>의 염 씨 남매처럼 경기도민입니다. 경기도민 감성은 이 드라마의 주요한 포인트인데, 경기도-서울을 오랜 기간 왔다 갔다 해보지 않으신 분들은 드라마에서 반복되는 경기도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그리 와닿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저렇게 열등감에 쩔어 있어,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이런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 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삶에 꽤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하루에 24시간을 살아가는데, 나 혼자 이동 시간 때문에 2시간을 차감 받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삶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가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건 자신의 경제적인 능력 차이, 돈 많이 벌어서 서울에 살 거나 자취하면 해결되는 문제, 그래서 네 잘못이니까 찡찡대지말고 너가 해결해, 라고 말할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누군간 이것을 부모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왜 나의 선조는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터전을 잡아서 나에게 불공평한 삶을 준 것인지, <나의 해방일지>의 예를 들어 얘기하자면, 왜 아빠는 공장/농장을 그만두지 않고 산포시에 살고 있는 건지, 왜 차를 못 사게 하는 건지, 주말에 쉬고 싶은데 왜 농장일 도와야 해, 내가 경기도에서 태어나겠다고 선택한 것도 아닌데, 내 부모를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태어난 것도 내 선택이 아닌데 왜 내가 힘들어야 하는 건지, 이렇게까지 나쁜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늘 불만족스러운 삶, 열등감을 가진 삶을 살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창희의 투정이 저는 엄살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세 남매는 매일 그렇게 출퇴근을 합니다. 매일 출퇴근을 한다는 것, 그 전철(지하철)에 몸을 싣는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불공평한 -2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랜 시간 반복되면 포기가 몸에 배고, 마침내 이것이 포기라는 사실도 잊게 됩니다. 저는 이 드라마가 무엇보다 MZ 세대를 잘 그려낸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뭐만 하면 MZ, 또 MZ, 그래서 대체 MZ가 뭔데 하시면 저는 먼저 포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MZ 세대 이전에 ‘요즘 것들’을 지칭했던 단어로 유행했던 말 중에 ‘N포 세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N포 세대라고 말하니까 벌써 되게 옛날 말 같은데요. 제가 좀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구요.


아무튼 N포는 삶에서 필수라고 여겨지던 것들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3포가 연애, 결혼, 출산이고 그 뒤로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심지어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는 7포까지 확장됐었습니다. 저는 이 말이 ‘N포’로 종결된 건, 이러다 삶까지 포기해버리는 세대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인 것 같다는 심증을 갖고 있습니다. N포 얘기를 꺼낸 건 MZ는 포기를 포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말하자면 ‘포포 세대’.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떤 정해져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인데, ‘포포’는 애초에 그 패배감의 원인을 제거하는 겁니다. 연애? 결혼? 출산? ‘원래’ 안 해도 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 포기로 인해 받게 되는 패배감까지도 없앨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MZ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분방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그래서 뭔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패배할 필요도 없고,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이 MZ가 비MZ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것이 드라마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표현이 ‘추앙’입니다. 이는 <나의 해방일지>에서 가장 언급이 많이 된 대사이기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이뤄지지 않을 이 난생처음 보는 개념을 듣고 구씨가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웃음 포인트였습니다. 분명 추앙의 뜻을 진짜로 몰라서 검색해 본 것은 아닐 겁니다. 대체 이걸 하자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던 추앙이 추앙이 맞는지, 다른 뜻이 있는 건지 확인해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의 해방일지>가 정말 완전 뛰어난 ‘난생처음’ 보는 걸작 드라마인 것은 아닙니다. 이 드라마가 아직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MZ 세대의 정서를 꽤 밀도 있게 그려낸 것은 높이 평가 받을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약간의 구멍도 있는 작품인 것도 사실이니까요. 특히 구씨 캐릭터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구씨는 우리가 살면서 한 번 만날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캐릭터이고, 알코홀릭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은 그의 진짜 속마음과 행동의 동기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구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해도, 내가 이 사람의 인생의 근처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얹기가 어려운데, 문제는 드라마에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 꽤 여러 번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게 큰 흠결인 것까지는 아니니 더 적지는 않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그런 것보다는 열등감에 절어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내는지, 그 ‘해방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인물들이 16화의 끝에서 자신만의 해방의 방법을 찾습니다. 한 명 한 명 짚어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인물에 대해 적고 싶습니다. 염창희입니다. 그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자주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봅니다. 누군가가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자리에 창희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창희는 자신의 능력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그래서 지긋지긋한 산포시를, 평생 일만 하는 아버지를 아니 어쩌면 가족을, 그럼으로써 이 불공평한 인생을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습니다. 이제 그냥 약속 장소에 걸어가 계약서에 싸인만 하면 되는 바로 그 순간, 또다시 운명의 장난처럼 누군가가 숨이 넘어가려는 순간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자신과 큰 상관이 없는 내 가족도 아닌 누군가이지만, 이렇게 혼자 세상을 떠나게 둘 수는 없는, 외면할 수 없는 누군가입니다. 그러나 이때 창희는 무언가 깨달은 듯,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아줍니다. 그렇게 그 기회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포기일까요? 저는 이것이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포기의 포기로 느껴졌습니다. 창희가 자유롭게 자신의 삶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린 것으로 보였거든요. 그러니까 큰 돈을 버는 것보다, 경기도를 떠나는 것보다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봐 주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그게 떳떳하다는 데, 자기가 자기가 선택한 삶이 좋다는데 이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걸 판단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거라고 항상 경계해 보지만, 또 누군가랑 얘기하다 보면 늘 꼰대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제가 꼽사리로 출연하고 있는 영화 팟캐스트의 진행자 이재익 PD님의 블로그엔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꼰대로 변하면 계단에서 밀어줘” 제가 자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p.s. 그렇지만 저는 일산에 사는 게 좋습니다. 엄마 땡큐! 내일 저녁은 집에서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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