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탑건>에 관해 적은 부분과 약간 이어집니다.)


전투기 조종사로서 역사에 남을만한 업적을 쌓은 파일럿 매버릭은 지금 모하비 사막에 있습니다. 계급은 아직도 캡틴(대령)입니다. 영화에 나열되는 그의 업적을 생각하면 별 몇 개를 달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탑건> 1편에서 그의 라이벌이었던 동기 아이스맨이 별 넷을 단 해군 제독이 된 채로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확실히 특별한 결과인 것은 분명합니다.



[NO.17]

 

not today, today

 

2022년 6월 25일



매버릭의 계급은, 매버릭의 업적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매버릭이라는 캐릭터와는 어울립니다. 매버릭은 계급이나 지위 같은 것보단 파일럿의 역할 그 본질에 인생을 바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보통 높은 계급을 단 사람들이 직접 전투기를 조종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매버릭처럼 조종에만 모든 신경을 쏟고 있는 사람은 진급에 필요한 다른 것들, 예를 들어 윗분들에게 싸바싸바 하는 것 따위엔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매버릭은 일은 정말 잘하지만 사회성은 부족한 인물입니다. 그 결과로 진급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명령도 잘 듣지 않고 제멋대로인 나이 든 조종사가 아직 비행할 수 있는 건, 그만큼 그의 능력이 월등하다는 것으로 생각해 보는 겁니다.



이렇게 대단한 조종사인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세월이라는 위기입니다. 나이도 나이지만 그것보다 더 거스를 수 것은 기술의 발전입니다. 카페에 자주 가는 저는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키오스크를 볼 때 그 세월의 흐름을 절감하게 되는데요. 키오스크가 사람 대신 주문을 받는 무인기기인 것처럼, 조종사 씬에서도 점점 무인기가 도입되어 매버릭 같은 조종사들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매버릭이 현재 현장이 아닌 모하비 사막에서 맡고 있는 주요 임무는 전투기의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테스트를 하는 것인데, 이 역시 사람이 직접 전투기에 탑승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따른 위험이 동반됩니다. 무인기를 도입하는 것은 그 리스크를 없애려는 매우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심지어 무인기는 ‘누구처럼’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장점까지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직도 대령인 매버릭이 명령을 어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상부의 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매버릭이 제멋대로 테스트를 거행한 것입니다. ‘인간이 아직 할 수 있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싶어 하는 매버릭은, 인간보단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때 이 시험을 끝내러 온 상관의 머리 위로 매버릭이 조종하는 전투기가 쌩 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정말 압도적입니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부대를 둘러싸고 있던 펜스와 주위 사물들이 휘청거리지만, 에드 해리스가 연기한 해군 소장은 스크린을 뚫고 나올 정도의 진동을 몸으로 받고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매버릭에게 찾아온 위기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매버릭은 자신이 제멋대로 거행한 테스트에서 또 다시 자기 자신을 증명해냅니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소장이 매버릭에게 말합니다. 네가 이번에 나름 시간을 벌긴 했지만 어차피 이 흐름을 막지는 못 할 거라고. 파일럿은 곧 사라지게 될 거고, 해군에 너의 자리는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때 톰 크루즈가 한 대답이 기억에 남습니다. “Not today.” 언젠가 없어질 수는 있지만, 오늘은 아니라는 말. 이 말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이 말에서 톰 크루즈가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오늘은 아니다’라는 말은 정말로 무언가가 사라질 ‘시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인지 미래인지, 오늘인지 내일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한다’라는 것에 대한 의지 표명인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뱉어진 한 대사를 매버릭의 것이 아닌 톰 크루즈의 것이라고 적은 이유가 있습니다. 매버릭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있는 배우 톰 크루즈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매버릭의 모습에서 톰 크루즈가 겹쳐 보였던 것입니다. 톰 크루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없지만 그래도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커리어를 이어 온 한 배우의 저물어가는 신체를 보며 복잡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영화가 끝날 때 든 생각은 매버릭의 은퇴는 not today이지만, 톰 크루즈의 전성기는 TODAY인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이제는 예전의 매버릭처럼 극한의 신체 능력을 요구하는 액션을 수행할 수는 없겠지만, 그 모든 일들을 거쳐 지금에 이른 톰 크루즈의 멋진 모습을 보며, 앞으로 그가 선보일 다른 연기들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끔 이제 너무 늦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겨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1986년 <탑건>을 거쳐 거의 40년 만에 다시 또 새로운 전성기를 스스로 만들어낸 톰 크루즈를 보며 그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호에 말씀드렸던 그 엄청난 박수는 아직 오지 않은 전성기를 꿈꾸고 있는 자기 자신들을 위한 박수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드리는 말씀

1. 톰 크루즈 배우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만 '신세대' 역할로 나오는 마일즈 텔러 배우가 정말 매력적으로 보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마일즈 텔러는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스파이더헤드>라는 영화에도 주연으로 등장하는데요. 신기하게도 이 영화는 <탑건 : 매버릭>을 연출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신작입니다. (영화 자체는 살짝 아쉽기는 합니다.)

2. <마녀2>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너무 아쉬웠던 와중에 영화 후반부 아주 짧게 특별출연하는 김다미 배우가 정말 대배우가 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잠깐 등장하는데도 구세주가 나타난 것처럼 영화가 갑자기 흥미로워지더라구요. 존재감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헤어질 결심>을 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극찬을 마다하지 않으시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전 조금 아쉬웠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 문제인 것 같긴 합니다. 씨네21 기준 별점 3.5개를 매겼는데 평균 이상의 작품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다음 호 언젠가에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적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sti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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