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대단한 조종사인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세월이라는 위기입니다. 나이도 나이지만 그것보다 더 거스를 수 것은 기술의 발전입니다. 카페에 자주 가는 저는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키오스크를 볼 때 그 세월의 흐름을 절감하게 되는데요. 키오스크가 사람 대신 주문을 받는 무인기기인 것처럼, 조종사 씬에서도 점점 무인기가 도입되어 매버릭 같은 조종사들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매버릭이 현재 현장이 아닌 모하비 사막에서 맡고 있는 주요 임무는 전투기의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테스트를 하는 것인데, 이 역시 사람이 직접 전투기에 탑승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따른 위험이 동반됩니다. 무인기를 도입하는 것은 그 리스크를 없애려는 매우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심지어 무인기는 ‘누구처럼’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장점까지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직도 대령인 매버릭이 명령을 어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상부의 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매버릭이 제멋대로 테스트를 거행한 것입니다. ‘인간이 아직 할 수 있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싶어 하는 매버릭은, 인간보단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때 이 시험을 끝내러 온 상관의 머리 위로 매버릭이 조종하는 전투기가 쌩 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정말 압도적입니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부대를 둘러싸고 있던 펜스와 주위 사물들이 휘청거리지만, 에드 해리스가 연기한 해군 소장은 스크린을 뚫고 나올 정도의 진동을 몸으로 받고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매버릭에게 찾아온 위기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매버릭은 자신이 제멋대로 거행한 테스트에서 또 다시 자기 자신을 증명해냅니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소장이 매버릭에게 말합니다. 네가 이번에 나름 시간을 벌긴 했지만 어차피 이 흐름을 막지는 못 할 거라고. 파일럿은 곧 사라지게 될 거고, 해군에 너의 자리는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때 톰 크루즈가 한 대답이 기억에 남습니다. “Not today.” 언젠가 없어질 수는 있지만, 오늘은 아니라는 말. 이 말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이 말에서 톰 크루즈가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오늘은 아니다’라는 말은 정말로 무언가가 사라질 ‘시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인지 미래인지, 오늘인지 내일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한다’라는 것에 대한 의지 표명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