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발행되는 씨네21 1364호에는 구미가 당기는 특집 기사들이 많습니다. 일단 ‘<헤어질 결심> 읽기’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 <헤어질 결심>에 관한 글들이 몇 개 담겨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에 관한 3인 3색 비평과 김혜리 기자님의 박찬욱 감독 인터뷰가 그것입니다. <헤어질 결심>을 재밌게 보신 분들이라면 이 글들 역시 흥미롭게 보실 것 같은데요. 그 영화를 사실 그다지 재밌게 보지 않은 제가 더 기대하는 특집은 바로 ‘제27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의 수상 결과입니다. 올해는 또 어떤 분들이 재밌는 글들을 써내셨을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얻은 글은 어떤 글인지, 이런 것들도 궁금하지만 제가 가장 먼저 펼치고 싶은 페이지는 수상자분들의 인터뷰가 실린 페이지입니다. 저는 2022년 현재에 아직도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대체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온 분들이고, 또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계획이신지가 너무 궁금합니다.



[NO.19]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2022년 7월 9일



제가 그것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도 제 미래를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매주 영화를 보고 그에 관한 글을 쓰면서 한 주 한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만, 이 한 주가 언제까지 영원할지, 5년 뒤에도 이런 한 주를 보낼 수 있을지, 아니 당장 내년의 일주일은 어떤 일주일일지도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마치 <헤어질 결심>에 나온 가상의 도시 이포처럼 안갯속에 있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와 비슷한 가상 도시에 있는 분들은 평소에 어떤 일상을 보내왔고 앞으로 어떻게 이 일상을 이어나갈 작정이신지가 궁금한 것입니다. 그 방법에 관한 아주 작은 디테일만 쓰여 있다 하더라도, 이번 주 씨네21은 제게 충분한 값어치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씨네21 인터넷 사이트에 먼저 공개된 이주현 편집장님의 오프닝 칼럼을 읽고, 제가 진짜 읽고 싶었던 것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건 피드백입니다. 이 칼럼의 마지막 부분에는 심사가 끝난 식사 자리에서 심사위원들끼리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심사가 끝난 뒤 식사 자리에서, 비평 지면 ‘프런트 라인’의 든든한 필자인 송형국, 김소희 평론가는 언제나 피드백에 목마르다고 말했다.” 저는 제 글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피드백이 고프다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피드백이 필요하다. 얼마나 필요하냐면 피드백이 없어서 글을 쓰기가 싫을 정도다. 내 글이 좋았다 싫었다는 반응을 떠나서, 내 글을 누가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냥 넓디넓은 태평양 한복판에 내가 쓴 글을 던지는 기분이다. 이럴 바엔 그냥 글을 쓰고 싶지 않다,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이유는, 그래도 글을 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실제로 평론상 수상 인터뷰를 했을 때 했던 말이기도 한데요. 지면에는 “이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쓴다.”라고 나갔는데, 송경원 기자님이 조금 드라마틱한 포장을 해주셨더라구요. 실제로 저렇게 말한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딱히 이유가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을 했다고 말했던 것 같기는 합니다. 아무튼 논점은 피드백이 없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으니 결국은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인 것이고, 그리고 칼럼을 읽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를 깨닫고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오래 쓴 사람들도 피드백을 원하고 있으니, 내가 피드백 받고 싶다고 징징대는 것도 나약한 게 아니구나, 계속 징징대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 더해 아직 영화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미약하지만) 작은 힘을 주기 위해서라도 더 큰 소리로 징징대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된 한 주였습니다. 여러분에게 답장을 달라고 매달리는 것은 아니니, 부담은 갖지 말아 주세요. ㅋ_ㅋ

  
<헤어질 결심>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박쥐>입니다. 참고로 송강호 배우의 베스트 연기 역시 이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최근에 <박쥐>를 다시 보고 나서 별다른 고민 없이 들어버린 생각인데요. 이 생각을 갖기까지 걸린 시간 또한 길지 않았습니다. 영화에 등장한 송강호 배우가 뱉은 첫 대사만으로 마음이 움직여버렸어요. 이제 곧 죽음을 앞둔 한 환자가 병상에 누워 신부(송강호)님에게 자신의 불안감을 털어놓습니다. 신부님, 저 비록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근데 그런 적이 있어요. 저도 정말 배고픈 상태였는데 저보다 더 굶주린 사람에게 맛있는 카스테라를 베푼 적이 있어요. 이거 하느님이 기억하실라나요? 30년 전 일인데. 그때 송강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근이죠. 기억은 그분 장기에요.”

어렸을 때부터 성당을 다닌 저는 나름 다양한 신부님들을 접했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신의 상사인 하느님을 이렇게 표현하는 신부님은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당근이죠’라는 표현과 익살스러운 송강호의 표정이 자칫 버릇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신자 입장에서는 마음에 쏙쏙 와닿는 현실 밀착형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이었지만 동시에 어딘가 있을 법한 신부님이라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고, 대사 한 마디로 이것을 해낸 송강호 배우에게 새삼 놀랐던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박쥐>를 좋아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인간 박찬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박쥐>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라는 일명 복수 3부작을 마친 박찬욱 감독의 ‘넥스트 챕터’격인 영화였는데요. 저는 3부작의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사적 복수를 저지르며 수많은 죄를 지었던 인물들이 이제 복수를 마치고 혼자 남은 폐허에서 무엇을 할까, 가 궁금했었고, <박쥐>의 송강호가 그 답처럼 느껴졌습니다. 치료제가 없는 불치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원치 않는 특별한 능력을 얻은 신부가 또다시 죄를 짓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명을 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 그러면서 박찬욱 특유의 미장센과 그로테스크한 연출이 ‘종교’와 ‘속죄’, ‘뱀파이어’ 등의 키워드와 잘 어우러졌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송강호, 김옥빈, 신하균, 그리고 김해숙 배우의 섬뜩한 눈알 연기까지 정말 압도적인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반면 <헤어질 결심>은 그 자체로 멋진 연출과 감동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감독 자신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것이 제게 아쉬운 포인트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야기 자체에도 설득이 되지 않았는데, 특히 서래(탕웨이)의 입장이 잘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해준(박해일)의 입장은 공감이 갔습니다. 특히 예고편에도 나오는 그 대사,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가 최고였습니다. 감정에 눈이 멀어 직업윤리를 어기게 된 자기 자신이 싫어 먼 곳으로 떠났는데, 그런 나를 여기까지 따라온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최상급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품위도 잃지 않으면서요.


그 대사를 받아치는 탕웨이의 대사 역시 좋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아니요, 완전 안 나빠요, 너무 좋아요, 라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 보면 해준의 입장에선 충분히 나쁜 사람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너가 먼저 나를 속였잖아, 너가 내 마음을 이용해 용의자에서 벗어나는 이득을 챙겼잖아, 너 때문에 내가 지금껏 지켜온 내 품위가 붕괴되었는데, 그리고 이 붕괴된 것에 대한 책임도 너에게 묻지 않고 나 혼자 짐을 싸서 다른 도시로 왔는데, 힘들지만 코에 보조 호흡기를 대면서까지 다시 살아보려고 하는데 왜 다시 내게로 온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 가 된 것이지요.


이런 해준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는 것은 서래의 마음입니다. 서래의 해준을 향한 마음을 정말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해준을 사랑하기 마음에 스스로를 해변에 묻는 서래의 선택을 어찌어찌 숭고한 리얼 사랑으로 포장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함께 어떻게 해보자는 상의도 없이 혼자 세상을 떠날 것이었으면, 애초에 이포에 찾아오지 않는 것이 더 해준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해준도 이젠 ‘미결 사건’에서 벗어나 새 인생을 살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인데, 이렇게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 해준을 영원한 파도 속에 남겨 두었다는 것이 정말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해준이 불쌍하게 느껴진 것은 이것입니다. 이제 해준은 더 이상 서래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셜록 홈즈에 빙의해 서래가 남겨둔 단서들을 몽땅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 끝에서 서래의 답을 결코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비극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런 해준에 비하면 저의 징징댐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직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품위를 잃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계속 써보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이번 주 개봉작 <토르 : 러브 앤 썬더>  
<토르 : 러브 앤 썬더>는 대체적으로 망작이라고 평가받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참 재밌게 봤는데 말입니다.. 무엇보다 타이카 와이티티의 연출관이 느껴졌던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감독에게 영화란 '스토리&텔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스토리)를 어떻게 얘기할까(텔링)를 비쥬얼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 감독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면 참 기본적인 것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기본 뼈대를 투명하게 드러낸 것이 특징입니다.

일단 영화 자체가 감독이 직접 목소리를 연기한 분신 캐릭터 코르그가 푸는 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과정에서 상당한 미화와 과장이 곁들여집니다. 마치 할머니가 옛날 얘기를 할 때처럼요. 할머니가 그 신은 원래 나태해서 뚱뚱했지만 어느 날 결심을 해서 근육질이 됐단다, 고 얘기하면 우리의 머릿속엔 이미 멋진 신이 상상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관련해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코르그가 온몸이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입만 산 채로' 살아남아 계속해서 입을 터는 모습이었습니다. 난 '입'만 있으면 충분해, 입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라고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감독의 입으로 진행되는 '구전 신화'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입만 있는 코르그의 모습이 조금 상징적으로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그래도 영화 자체가 별로였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감독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기 힘든 마블 영화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인장을 남기는데 성공하고 있는 이 수다쟁이 감독의 성취만큼은 인정해 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sti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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