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에 5박6일 워케이션을 다녀왔습니다. 자세한 후기 글은 따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클릭). 워케이션은 휴가지에서 일을 하는 개념입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 ‘워라밸’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것이 대세가 된 건, 이제는 꽤 오래된 흐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워케이션은 그 밸런스가 거의 50대 50으로 맞춰진 일상을 보내는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하는 동안 잠시 산책만 해도 곧바로 휴가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업무량만 적당히 조절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확실히 노는 스타일이신 분들 입장에서는 별로 끌리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처럼 일할 때 열심히 일 안 하고, 놀 때도 미처 마무리 못한 일이 신경 쓰여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예 휴가지로 떠나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O.25]


워케이션 가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2022년 8월 20일



이번 주 추천해 드릴 영화는 8월 18일에 개봉한 영화 <풀타임>입니다. 프랑스 감독 에리크 그라벨 감독의 영화이며, 작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오리종티 감독상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풀타임’은 외국에서 정규직이라는 의미로 통하는 ‘full-time job’의 그 풀타임입니다. 새로운 워라밸의 경험을 하고 온 저의 이번 주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제가 양양에서 설렁 설렁 일하며 ‘라이프’의 비중이 높은 워라밸을 살았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 쥘리는 일이 99%인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 ‘풀타임’은, 정규직의 의미인 ‘풀타임’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일주일을 꽉 채운 ‘풀 타임 노동’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쥘리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 일주일 내내 노동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쥘리의 사연은 일단 어린 두 아이를 아빠 없이 홀로 키우고 있다는 것인데, 생계를 위해 한 5성급 호텔에서 파트타임으로 메이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쥘리는 틈을 내 다른 직장으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 아이를 낳기 전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갔던 업계의 일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는 셋 중에 하나만 해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데, 쥘리는 그 셋을 동시에 해내느라 노동이 99%인 일주일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풀타임>은 그런 쥘리의 정신없는 일상을 쉴 틈 없이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쥘리가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일어난 쥘리는 먼저 아이들을 깨우고 아이들의 아침 식사와 목욕 물을 준비합니다. 그러다 온수가 말썽이라는 것을 깨닫고 배관을 손봅니다. 아침을 먹는 아이들은 잠시도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엄마 파리에 있는 놀이공원 알아?” “엄마도 가 봤어?” “나중에 우리도 가자” “엄마 내 생일 파티에 준수 초대해도 돼?” “현지도?” “그럼 한별이는?” 쥘리는 아이들이 만족할 만한 적당한 대답을 한 뒤 이웃 집에 두 아이를 맡기고 서둘러 출근길에 나섭니다. 아직 주위가 어두운 걸 보니, 이른 새벽 시간인 것으로 보입니다. 벌써 이렇게 수많은 일들을 마쳤는데 아직도 새벽인 것입니다.


그리고 쥘리의 출근길이 이어집니다. 쥘리의 출근도 그렇게 순조롭지만은 않습니다. 파리 전역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 대중교통 파업으로 인해 쥘리는 평소보다 더 복잡한 방식으로 출근을 해야 합니다. 쥘리는 간신히 전철과 대체 버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도착한 호텔에서도 쥘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5성급 호텔이라는 환경이, 직원들에게 좀 더 높은 강도의 노동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마친 쥘리는 이제 다시 가정을 신경 써야 합니다. 오늘은 아들의 생일이기 때문에 쥘리는 장난감 가게에 들러 아들의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파업으로 인해 와야 할 버스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쥘리는 급히 아들에게 전화해 아들을 달래보지만, 어린 아들은 이미 토라진 상태입니다. 그렇게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쥘리는 꾸역꾸역 동네에 도착해 아이를 맡긴 집에 도착합니다. 날은 이미 많이 어두워진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이를 맡아줬던 동네 이웃이 쥘리에게 한 마디를 합니다. “저녁 시간에 아이를 맡아줄 다른 사람은 없나요?” 쥘리는 알겠다고 말하며 며칠 동안은 좀 부탁한다는 말을 하지만, 파업이 며칠 안에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집의 온수는 여전히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이고, 아이들은 또다시 집을 어지럽히며 장난을 칩니다. 겨우 아이들을 재운 쥘리는 내일 입을 옷을 다림질하고, 이제 곧 있을 면접 준비를 합니다. 그러다 책상에서 잠시 눈을 감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립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쥘리는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이제 또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몸을 일으켜야 하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영화의 러닝타임은, 겨우 15분이 지났습니다.

  


저는 영화 초반부 설명을 하며, 의도적으로 일어난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결을 다소 거칠게 적었습니다. 이건 귀찮아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그렇게 편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풀타임>은 88분 동안 ‘쉬지 않고’ 노동하는 쥘리의 일상을 ‘쉬지 않고’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쉬지 않는다’는 것은, 사건과 다음 사건이 벌어지는 사이의 공백이 전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마치 쥘리처럼 숨이 차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싱글 워킹 맘의 24시간을 여백 없이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긴박한 배경음악이 끊이지 않는 이 영화는 사프디 형제 감독의 영화 <굿타임>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굿타임>은 은행털이범의 긴박한 ‘타임’들을 보여주는 영화인데요. <풀타임>을 보고 범죄 장르의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범죄 스릴러 영화 급의 긴장감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풀타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쥘리가 직장에 늦지 않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장면입니다. 교통 파업으로 인해 직장에서 잦은 지각을 하게 된 쥘리는 결국 ‘마지막 경고’를 받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예측 불가능한 교통 문제로 인해 쥘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히치하이킹을 통해 출근을 하던 쥘리는 운전자에게 차에서 내리겠다는 말을 한 뒤 파리 한복판을 달리고, 영화는 여기에 여지없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음악을 재생합니다. 쥘리가 마치 엄청난 악행을 저지른 다음, 자신을 쫓는 경찰로부터 도망치는 범죄자인 것처럼 말입니다.


대체 쥘리는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기에, 이렇게 누군가로부터 쫓기는 것처럼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했던 것일까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일을 하는 것이 욕심이었을까요. 그러면서 다른 직장에 면접을 본 것이 죄였을까요. 좋은 부모임과 동시에 좋은 사회인이 되고 싶은 마음을 먹은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었던 것일까요. 쥘리가 문제일까요, 아니면 쥘리가 달리고 있는 세계를 스릴러 장르로 만들어버린 세상의 잘못인 것일까요.


양양에 다녀온 저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워케이션의 매력을 알리며 이를 적극 장려하는 중입니다. 블로그에 쓴 후기 또한 그러한 의도로 적은 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풀타임>을 보고, 그 누구보다 쥘리에게 워케이션의 여유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워케이션은 저 같은 한량이 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 풀-타임 노동을 한 사람들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주어져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쥘리 같은 사람들의 하루가 스릴러가 아닌 워케이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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