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에게 고개를 들자.
 
Newsletter Issue 104

31 Dec, 2021  1447 Subscribers
 
 
 

숫자 '12'는 달력에서만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12월은 20대의 끝을 의미한다. 서른이 된다. 서른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막상 앞자리가 3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이 뒷자리는 매년 바뀌다 보니 무덤덤 해졌지만, 앞자리가 바뀌는 건 10년 만이라 그런가 보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드디어 이해할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지만 서른은 생각보다는 무겁다.

20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면 행복한지 찾기 위해 경험하는 시기라 생각했다. 실마리라도 찾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만한 것이 20대라 여겼다. 30대는 20대 때 느꼈던 것들을 하나둘 해보는 시간이라 막연히 희망하고 있다. 그 시도를 헤쳐나가는 데 있어서 타인의 시선과 생각은 의미 없다. 삶의 본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볼 수 없으므로. 그러니까 나부터 겉에 드러난 모습만 보고 나의 남루한 눈과 귀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정의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 왔다. 허름한 행색이 누군가의 그윽한 깊이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12월 너머 서른의 내가 20대의 이런 나를 조금씩 외면한다. ‘온전한 밥벌이’를 못하면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현실은 더 현실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들은 지금 뭐 해요?”, “그래서 걔는 지금 뭐한데?” 이런 질문들을 듣게 되면, 난 12월 너머에 있는 그의 말에 흔들린다. 아직 타인의 시선에 초연하지 못하는 내면 성숙의 한계를 느끼며 불안해진다. 현실 속에 살아가며 타인의 왈가왈부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건 산속의 스님이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비록 사회에 뛰어들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을 살더라도, 20대에 쌓아왔던 가치가 나를 잠시나마 쳇바퀴 속에서 꺼내어 멈추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20대의 고민이 사회라는 굴뚝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뿌리가 되어줄 거라 소망한다. 아직 12월이 끝나기 전까지 한 달 반 정도 남았다. 뿌리에 물을 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이제 막 3을 앞자리로 가져가는 12월 너머의 나와 타협하면, 지난 내 10년의 20대에 고개를 들 수 없다.

29살 12월에 서른을 맞이하며 썼던 글이다. 몇 년이 지나고 다시 12월이다. 멈춰야겠다. 시도하기 위해서. 지난 내 10년의 20대에 고개를 들려면.

+하루에 50번씩 피드백을 확인합니다. 동물은 음식을 먹고 살지만 저는 피드백을 먹고 삽니다. 그렇습니다. (피드백은 뉴스레터 하단에 위치)
도큐 season & work
 
 
 

1. Music by 을지로 도시음악
Lovers After All by Melissa Manchester & Peabo Bryson
2. Movie by 단편극장
The Horribly Slow Murderer with the Extremely Inefficient Weapon
3. Novel by 단편서점
킬러, 조 기자(1부, 11/16회)
4. Event by season & work
창업자 인터뷰, <상인의 시간>
청년 경제 강연, <나는 왜 돈이 없을까>
 
 

Lovers After All
by Melissa Manchester & Peabo Bryson
양의 2022연하장 비스무리한 것
나는 꾸준히 무언가를 성실히 반복하는 것을 극도로 어려워하는 타입이다. 이 불성실함 덕에 학창시절엔 매를 달고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주 큰 단점이 되어 매번 일을 그르쳐왔다. 나도 이런 내가 싫어서 열심히 발버둥을 쳐 보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의 2021년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루틴 만들기였던 것 같다. 대다수의 루틴이 처참히 파괴되었다. 하지만 극소수의 몇몇 루틴은 성공했고, 아주 큰 성과를 달성했다. (여러분이 들으면 기절할 만한 그런 미세먼지 수준의 루틴임 ㅇㅇ)

2019년 성북에서 시작된 이 메일은 (행운의 편지 아님) 내 가장 소중한 루틴이자 성공적인 루틴이다. 여러분들이 나의 한 주에 한 편 글 배설하기루틴을 읽어 주어서 너무나 영광이다. 2022년은 또 어떤 루틴을 만들어내고, 또 어떤 루틴을 파괴하게 될지 기대 된다.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명확하지 않음이다. 가능하다면, 언제나 이렇게 흐리멍텅하게 살고 싶다. 오늘은 2021의 마지막 날. (저번주부터 뉴스레터 날짜가 계속 기가막힌데?) 무튼 간에 다들 한 해 정말 고생 많았다.

양의 아주 아주 주관적인 감상
따듯한 인트로부터 사람을 확 사로잡는 예쁜 기타 리프가 흐른다. 마치 요즘 나오는 멜로우한 인디밴드의 곡 같다. 근데 1980년대에 발표한 곡인 게 참확실히 보컬을 들어보면 조금 올드한 느낌이 나지만 악기는 요즘 유행하는 사운드들도 많고 정말 다 세련 됐다.

듀엣은 처음 올려보는 것 같다. 멜리사 누나의 9집 앨범 [For The Working Girl]에 수록된 곡인데, 피보 브라이슨이 피처링 해준 곡이다. 이 피보형도 꽤 유명한데, 여성 가수와 듀엣곡을 많이 부르는 발라드가수로 유명하다.

김동률이 생각보다 여성 보컬과 듀엣곡이 많다. 그 중 올타임 레전드는 역시 <기적> 이소은과 함께 불렀다. 소은이 누나는 요즘 뭐하나..?


양의 아주 아주 짧은 인스턴트 지식
멜리사는 51년생 뉴욕 출신이다. 그녀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뉴욕에서 바순연주자로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다. 맨체스터는 어린 나이에 가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맨하탄 음대에서 피아노를 배웠고 15살부터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버는 상업 가수였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작곡에도 관심이 많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멜리사는 Simon & Garfunkel로 유명한 사이먼 형이랑 뉴욕대 작곡과 동창이다.

그렇게 멜리사는 노래도 잘하고 작곡도 잘해서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한다. 1집 앨범인 [Home to Myself] 1973년에 발매되었고, 유명 싱어송라이터 Carole Bayer Sager 와 함께 많은 곡을 공동 작곡했다. 2년 후 75년에 발표한 3[Melissa]에서 대박이 터졌는데 빌보드에 17주 동안 올랐고, 그 히트곡은 <Midnight Blue>라는 곡이다.

당시 히트했던 <Midnight Blue> 지금 갬성으로는 잘 모르겠다..?

+<Almost Everything> by Melissa Manchester
멜리사 누나의 구성진 작곡력이 돋보이는 7[Don't Cry Out Loud]에 수록된 <Almost Everything> 이 노래가 위에 노래 보다 훨 좋다.

season & work

 

The Horribly Slow Murderer with the Extremely Inefficient Weapon

감독  Richard Gale
출연  Paul Clemens, Brian Rohan  
개봉  2009
길이  10분
관람  유튜브
에이비의 감상 노트
2021년 마지막 날에 선사하는 뉴스레터! 뭔가 굉장히 의미가 있다. 처음에 단순히 5부작으로 계획한 뉴스레터였는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고정으로 자리잡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여러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까지 30편의 단편영화를 여러분에게 소개를 했는데, 나는 아직도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싶은 단편영화들이 많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오늘은 2021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멋진 영화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법의학 병리학자 잭 차일은 어느 날 갑자기 검은 후드티에 얼굴이 창백한 사내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잭은 어이없어하며 넘기는데, 그 이유는 후드티의 사내가 숟가락으로 잭을 공격했기 때문! 단순한 장난이라 넘겼던 잭은 후드티의 사내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잡아먹을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숟가락으로 본인을 공격하는 나날들이 이어지자 점차 고통스러워한다. 잭은 주변에 도움을 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잭을 공격하는 사내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체 이 사내는 왜 잭을 공격하는 것일까?

대체 뭘까 싶은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황당하고 웃긴 영화 속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숟가락으로 잭을 공격하는 사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과 시련, 후회, 걱정 등의 감정으로 볼 수 있다. 주변에서는 알 수 없지만 늘 내 주변에 존재하면서 나에게 큰 공격도 아닌 작고 하찮은 공격을 한다. 이러한 공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데미지들이 내 몸 안에 쌓여가면 끝내 작은 숟가락으로의 공격이 점차 크게 느껴지고 버거워 진다.

이런 B급 코믹 호러 영화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이 영화를 해석한 것처럼 그렇게 큰 의미는 아니라도 코로나 사태로 웃을 일이 별로 없는 2021년 마지막 날에 여러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볍게 웃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2022년에는 조금 더 웃을 일이 많기를!)

에이비의 영화 포스트잇
공식적으로는 국내 미개봉 작품이지만, 감독인 리차드 게일(Richard Gale)이 유튜브에 이 영화를 공개하면서 국내에서도 큰 화재를 일으켰던 작품이다. 당시 2009년에 유튜브는 막 서비스를 시작하는 단계의 플랫폼이었기에 개봉이 아니라 유튜브 공개를 선택한 감독의 결정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본 단편 시놉을 보고 장편 제작 연락을 했지만, 영화는 관객들이 바로 봐야한다고 감독이 바로 유튜브에 업로드 했다고 한다.)

본 제목보다 국내에서는 숟가락 살인마로 더 알려져 있는데, 국내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2009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선정되어 리차드 게일 감독이 내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공항 엑스레이 검색대에 감독의 가방에서 수 백개의 숟가락이 검색되어(팬들 선물로 줄거라고 챙겨왔다고 한다) 공항 관계자가 이게 뭐냐?’ 라고 물었을 때, 리차드 게일 감독이 나는 영화 감독이다라고 말해서 몇 시간 동안 공항 구치소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회자가 되고 있다.

이후로 여러 숟가락 살인마시리즈들을 낸 뒤로 2011년부터 작품 활동이 없다. 2022년에는 그의 똘기 넘치는 작품을 다시 볼 수 있기를!

에이비

 

킬러, 조 기자
prologue: '킬러 조의 탄생'
1부: 12/16회

“자, 여기에요.”

계단의 끝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에는 ‘907호’라고 적혀있었다.

“여기요? 다른 호실은 없고요?”
“네, 여기 9층에는 7호 밖에 없어요.”

남자가 자기 이름을 말하듯,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제게 몇 호가냐고 물었잖아요.”
“일종의 테스트? 자, 들어가세요.”

남자는 손으로 문고리를 가리키고는 혼자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내가 문을 열든지, 열지 않든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동그란 손잡이의 차가운 금속 촉감은 나를 다시 긴장시켰다. 나는 ‘그래, 뭔 일이 있겠냐.’ 하는 마음으로 손잡이를 돌리고, 당겼다. 문이 열렸다. 넓은 공간이 있었다.

서울극장 9층에 숨겨져 있던 넓은 공간은 도배나 마감 작업이 하나도 안 된, 건물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상영관 하나가 들어갈 만한, 단면의 공간은 긴 카운터 하나가 둘로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카운터 저편에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듯, 젊어 보였고, 슬랙스에 면티, 얇은 면 블레이저로 깔끔한 옷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카운터 너머에서 남자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의 말투는 잘 교육받은 호텔의 직원처럼 친절했고, 능숙했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말투와 그가 하는 일의 성격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가 그... 선물을 받았는데, 거기에 이곳 주소가 적힌 쪽지가 있어서 한번 호기심에 찾아온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당장 문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행동이 남자를 자극할 것 같아서, 이곳에 온 이유를 말했다.

 “그렇다면, 선물을 주신 분은 누구시죠?”
 “할, 할아버지요.”

 내 대답을 들은 남자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게 할아버지께서 주셨다는 선물이죠? 한번 보여주실까요?”

나는 카운터 위에 비단 보자기에 싸인 상자를 올려놓았다. 남자는 상자를 풀어 안에 담긴 내용물을 살펴봤다. 그리고 내게 내용물을 만져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남자는 권총을 꺼내 살펴보더니, 옆에 놓여있던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검색했다.

+글소개: 29살 조 기자의 성장형 액-숀 활극.


최현승
첫 연재: <카페, 커피그림> wrriten by 최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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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작은 조약돌과 같은 글을 꿈꾸는 최현승입니다.
+글소개: 29살 정민과 27살의 상민의 여름 날. 그리고 카페 ‘커피그림’의 이야기입니다.
 
 

LIVE 청년 경제 강연
<나는 왜 돈이 없을까>

01 - 이선호 과학커뮤니케이터 / 6.28(월)
"4차 산업혁명이 온다는데 온 거야 만거야"

02 - 김얀 작가 / 7.1(목)
"사회초년생! 오늘부터 '돈'독하게 모아보자!"

03 - 김찬호 교수 / 7.5(월)
"나는 왜 돈이 없다고 생각할까?"


창업자 인터뷰
<상인의 시간>

01 - 유형곤(우리동네세탁소) / 7.8(목)

02 - 조수형(싸군마켓) / 7.12(월)
"파도가 칠 때는 업종변경을, 유통의 힘"

03 - 홍미선(땡스롤리) / 7.1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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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 장건희(육곳간) / 7.2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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